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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카 님, UPGRADE 님
1. 빌어먹을 만웨, 비 한 번 끝내주게 오네요 — 라며 부관이 불평했을 때, 에갈모스는 그걸 꾸짖을 기력마저 없어 한숨을 쉬었고, 대신 옆에서 레골라스가 비식거리며 웃음을 참았다. 기름먹인 가죽 망토는 어지간한 빗물을 막는 데는 제격일지 몰라도, 정말이지 ‘끝내주게’ 무거웠고, 어차피 그는 속옷까지 쫄딱 젖은 후였으니까. 빌어먹을 만웨. 그래, 뭐, 이 ...
“엘론드, 이리 좀 와 볼까?” 답이 없었다. 길갈라드는 책상 끝 태엽 시계가 한참을 더 째깍이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다. 엘론……드. 에아렌딜과 엘윙의 아들은 함부로 사라지는 일은 없었지만, 그 발소리를 듣는 일은 이상하리만치 쉽지 않았다. 이젠 둘이 아니라 다행이라 해야 하나, 하고 얼핏 실없는 생각을 떠올렸다가, 길갈라드는 곧 엘론드의 먼 조카들을 떠올...
얘 노랑머리야, 라는 핀골핀의 부름을 핀데카노 왕자는 반쯤 재미있어하고 반쯤 못마땅해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을 금동이 은동이 따위로 부르는 게 말이 됩니까 강아지도 아니고, 하도르 이 녀석아 너는 또 왜 부른다고 냉큼 달려오고 그래, 그 말에 로린돌은 웃었고 핀골핀은 시큰둥했다. 검은 머리였으면 거두지도 않았을 테니 그렇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
우린 한 번도 산맥을 넘은 적이 없었지요, 적어도 우리 놀도르는. 세상의 검은 적이 산맥 서편에 있는 한. 왜냐하면 우린 그저 모르고스의 심장에 겨누어진 검에 불과했기 때문이에요. 종국에는 파멸을 선택하기란 어렵지 않았고요. 할레스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변명 아닌 변명을 이어 가려다 말고, 카란시르는 무심코 할레스를 바라보았다가, 콧잔등의 주근깨에 시...
휴르르 님, 요정 님
"네가, 어떻게 네가!" 쿠루핀이 짓씹듯 뱉어낸 단어들은 마디마디 동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핀로드는 입술을 비틀었다. "내가? 내가 뭘 말야, 쿠루핀웨?" "순진한 척하지 말라고, '폐하'. 그 회색망토 버러지가 한 요구가 무슨 의미인지 뻔히 알면서!" ”엿듣고 있었나? 아무리 너라 해도, 좀 유치한데.” 빛나다 못해 희게 번쩍이는 두 눈을 핀로드는 ...
검 같다고 생각했었다. 놀랄 일인가? 아니, 그는 그리 여기지 않았다. 어렴풋이, 왕족이 아니고서야,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상대가 핀웨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도. 핀웨 놀도란은 완전한 놀도였으나, 미리엘도, 인디스도 그런 전형적인 놀도르의 미감과는 거리가 멀었으니. 그리고 왕족의 아름다움은 말하자면, 힘과, '노래'에서의 '위치'와...
그렇게 천천히 잊히는 것이라고 했다. "투람바르!" 니니엘은 크게 외치고 웃었다. 햇살같은 맑은 얼굴을 잔뜩 찡그려 가며, 무엇이 그렇게나 유쾌한지. 웃음을 터뜨리는 그녀에게 마주 미소를 지어주며 투린은, 아니, 투람바르는 목탄을 내려놓았다. 브레실에서는 질좋은 종이는커녕 피지 한 장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자작나무 껍질은 꽤 괜찮은 대용품이었다. 그리고 그...
"우르웬!" 다급한 외침이 방 안에 울리기 무섭게 그녀는 벌떡 일어섰다. 나동그라진 수틀이 저만치 굴러가다 벽에 부딪혀 쓰러졌다. 잘못 가눈 바늘에 가운뎃손가락에 피가 맺혔다. 그러나 그녀는 상처를 살필 새도 없이, 허겁지겁 방으로 달려든 형제의 어깨를 붙잡고 간신히 눈을 맞추었다. 검은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오빠! 오라버니, 이게 무슨 일...
초여름 도시는 흰빛에 젖어 있고, 하짓날 시답잖은 업무를 맡길 만큼 그들의 왕은 잔인하지 않아, 샘물의 영주는 날이 완연히 새기가 무섭게 제 집을 나섰다. 몇 안 되는 층계를 밟아 거리에 닿으니 지나는 문간마다 연한 빛깔 화환이 내걸려 있어 그는 저 혼자, 햇살에 바랜 것인가, 당치 않은 생각을 떠올려 보았다. 일러야 전날 저녁에 엮인 꽃들일 터였다. 그러...
"부모가 죽는 걸 느낀 적 있습니까?" 켈레브림보르는 만지작거리던 은사 뭉치에서 시선을 떼어 왕을 바라보았다. 얄궂다면 얄궂은 질문이었기에 그는 함부로 답할 수 없었고, 하기야 길갈라드 역시 흔치 않게 긴장한 기색을 보이고 있기는 했다. 한 손에는 왕관을, 다른 한 손에는 빈 잔을 들고서 젊은 왕은 아무 말 없이 대답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고심 끝에 켈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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