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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교내 방송국이라고 얕잡아 보다가 큰 코 다쳤다. 아니, 다치는 걸 넘어서 코가 두동강 나서 사주팔자에도 없던 성형수술까지 해야할 판이었다. 방송제 무대에 잠깐 올라가 그저 황민현과 오해를 풀려고 했을 뿐인데. 10분도 채 되지 않던 그 순간, 특히 황민현과 나의 극적인 포옹은 목격자들의 성실한 제보를 통해 삽시간에 학교 페북, 인스타를 타고 퍼져 어...
24. 마치 몇 달 전으로 돌아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내 일상에서 황민현이 감쪽 같이 사라졌다. 한순간에 갈비뼈 하나가 빠진 것처럼 옆구리가 허해졌다. 분명 아침부터 자기 전까지 끊이지 않고 황민현이 있었는데 복작거리던 톡이 멈추고 전화목록을 가득 차지하던 황민현의 이름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스팸문자와 엄마, 그리고 최민기로만 이루어진 최근기록을...
20. 약 한 달을 통째로 중간고사에 쏟아 붓고 나니 어느덧 4월이 다 지나있었다. 뭘 했다고 벌써 5월이냐. 시험을 잘 친 것도 아닌데 덧없이 빠르게 흘러가버린 시간이 날 약올리는 것만 같았다, 넌 대체 그동안 뭐했냐고. 그리고 시간만큼이나 날 약올리는 게 하나 더 있었다. 얄궂은 내 마음이었다. 어느덧 꼬박꼬박 황민현과 연락을 주고 받는 게 습관이 되었...
16. 어느덧 3월의 막바지였다. 어두칙칙하던 날씨도, 우울하던 캠퍼스도 어느덧 점점 계절색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고동빛이었던 배경이 점점 맑은 푸른빛으로 변해가는 새학기. 물론, 그런 행복한 봄의 시작엔 항상 내가 끼지 못했다는 게 흠이지만. 갑자기 얼굴을 강타하는 쓸쓸한 바람에 지지 않겠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사람들은 이상해. 사시사철 꽃은 피는데 대...
11. 두 번째 과제는 [서로의 취미 공유하기] 였다. 취미라, 머릿속에 떠오르는 거라곤 게임과 만화뿐이었다. 그래도 저번보다 어색하진 않겠다. 황민현 신경 안 쓰고 내 할 일이나 하면 되니까. 근데 황민현 취미는 뭐지? 고지식하게 책 읽기 같은 거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턱을 괸 채 화면을 내리며 공지를 확인하다 마지막 한 줄을 읽자마자 난 팔에 힘이 빠...
9. 첫 과제는 [첫 데이트 하기♥] 였다. 존나 징그러우니까 저 하트는 좀 빼줬으면 좋겠는데. 공지에 올라온 과제 제목을 보고 한동안 서늘한 기운에 두 팔을 벅벅 긁어댔다. 그 순간 핸드폰이 울리며 황민현의 전화가 왔다. 뭐가 있을 리 없지만 그게 더욱 소름이 끼쳐 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황민현, 어디있니? 내 목소리 들리니? “여보세요.” [종현아, ...
팬·구독자와 소통하고 홍보하는 6가지 노하우
5. 왜 내가 황민현을 이렇게 싫어하냐고 물어본다면 그냥이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사실은 이유가 다 따로 있다. 내가 황민현을 싫어하는 이유는 바로 내가 황민현을 좋아했었기 때문이다. 존나 모순되는 이유이긴 하지만, 이것만큼 황민현이 싫은 이유를 잘 설명해주는 것이 없다. 때는 바야흐로 고3. 처음부터 황민현을 좋아했던 건 아니다. 학교 생활이나 인간관계에 정...
1. 의도치 않은 상황이었다.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페북 프로필마저도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바꾼 적이 없고 심지어 카톡 확인도 삼시세끼 먹듯 아침, 점심, 저녁, 하루에 딱 세 번 확인하는 나인데, 대체 내가 왜, 내가 왜! 너랑 지금 럽스타그램을 만들어야 하냐고. 앞에서 반딱거리는 새 아이폰으로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고 있는 밝은 갈색빛 뒷통수를 바라보...
저출산 고령화가 제일 큰 문제가 되는 점은 경제적으로 생산성이 높은 청년층 인구가 줄어드는거다. 이들의 경제활동이 사회 전반을 지탱하는건데 그게 안되니까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된다. 문제가 있으면 그걸 해결하는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문제의 근본을 파악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 그리고 대증요법이다. 저출산 고령화는 두 어절로 이뤄져 있지만 사실 한 어절로 ...
최태준의 생일 파티는 밤늦게 까지 진행되었다. 낯설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처음 보는 얼굴은 아닌 사람들. 교수는 이런 사람들과 함께 하는구나, 늘 놀랍다. 소파 끝에 앉아 게임을 하는 것도 지겨워졌다. 교수도 나와 비슷한 타이밍에 지친 기색을 보였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작게 웃고는 몸을 일으켰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귀가 아픈지 얼얼한 귀를 몇 번 만지...
최태준은 스물 일곱으로 나보다 다섯 살 어린 동생이었다. 녀석은 현장에서 분위기 메이커로 통했다. 모델 출신 답게 키도 훤칠해 어디를 가나 눈에 띄었고, 여배우들에게 대쉬를 자주 받곤 했다. 하지만 그 녀석은 그게 늘 귀찮은 듯 뒤로 빼며 숨었다. 여자와 연애하는 걸 원치 않는다 했다. 나와 같은 동성애자 였으니까."형. 아니지, 대표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도경수의 퇴원이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됐다. 아무 일도 안 하는 나는 서울에서 만나자는 도경수의 연락에 한껏 들떠 옷을 차려입었다. 물론 지금 머물고 있는 장소는 교수의 집이었다. 허벅지에 딱 달라붙는 청바지를 입고 전신거울을 바라보니 교수가 옆에 다가와 내 손목을 덥석 잡았다. 의아하게 바라보면 내 신경쓰지 말고 할 거 해-. 하며 웃는다. 이제 그의 스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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