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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서는 연일 속보가 빗발쳤다. - 성계 일가의 비극적인 죽음이 온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지 벌써 1년 6개월이 지났습니다. 짧은 머리를 한 여자 아나운서가 데스크 중앙에 앉아 원고를 읽었다. 요즘 흔하다는 LED 스크린도 아니고 작은 방에 어울리는 작은 텔레비전이었으나 세상의 소식을 전해 주기에는 충분했다. 그러나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입에 넣은...
기대했던 적이 있다. “살려 줘. 어? 제발 목숨만 살려 줘.” 어쩌면 나도 양지에서 살 수 있을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일주일만, 아니, 하루만 더 주면 갚을 수 있어. 호시 군, 아니, 선생님, 사장님. 딱 하루만요.” 내 구두 앞코를 붙잡고 질질 짜는 남자의 모습이 볼품없다. 다 벗어진 머리에서는 식은땀이 돼지 육수처럼 흐르고 눈물과 콧물로 엉망...
묵혔던 진실들이 권호시의 입을 통해 낱낱이 방출됐다. 권호시가 성계의 외동아들로 이야기가 돌 동안 굳이 해명하지 않은 이유, 그렇다고 차기 회장이라며 전적으로 내세우지 않았던 이유, 사람들 앞에서 죽음을 가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권호시는 자신의 아버지에 의해 철저하게 굴려졌다. 거기에 그 애의 의지는 단 하나도 개입되지 않았다. 권호시가 마른 입술을 핥...
십일 년 전이었다. 그 아이는 막 여덟 살이 되던 해였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시기였다. 아이는 또래보다 발육이 느렸기 때문에 여섯 살 정도로 보일 정도로 작았다. 이지훈이었다. “앞으로 여기가 네가 살 집이다.” 권 회장은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주워 호랑이 우리에 집어넣었다. 그 일에 주저함이 없었다. 그것의 부모는 없다. 자신이 하는 일에 방해가 되는 족...
나는 아직도 밤낮을 불문하고 그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린다. 호기심으로 몰려들어 웅성거리던 사람들, 요란하게 반복되는 사이렌, 사방으로 튀던 불똥, 인파를 통제하는 경찰들, 인명 구조에 힘쓰는 소방관들, 타닥타닥 앞으로 있을 불행을 예고하는 듯 귀에 거슬리는 불쏘시개 소리. “너 귀신이야?” 그러므로 겨우 정신을 차린 내 입에서 나온 질문이 영 해괴한 것...
졸업식은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했다. 있는 집 자식들의 졸업식이니 혹시 모를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혹은 이런 날마다 귀신같이 냄새를 맡고 숨어드는 기자들을 막기 위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오로지 혈연 혹은 지인만 출입이 허락된 이 졸업식은 다른 일반 학교와는 다르게 거의 축제와 다름없는 졸업식을 진행했다. 학우들은 3년 동안 개고생한 학교를 드디어 ...
'처음이 가장 중요해요.'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합니다. '석남항 수색시 주의사항', '아무도 믿지 말고, 아무도 의심하지 마.&
아무도 울지 않는 장례식이 열렸다. 검은 띠를 두른 영정 사진 앞에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들락거렸고 권 회장과 권순영이 그 옆에 서서 상주 완장을 차고 사람들을 맞이했다. 그들은 웃지도 않았으나 그렇다고 울지도 않았다. 몇 명은 영정 사진에 예를 갖추는 것보다 권 회장과 악수 한 번 나누는 게 더 중요한 일이라는 듯이 굴었다. 안타깝게도 그런 자들의 비율은 ...
돌아온 탕아가 파티를 망쳤다. 권호시는 쥐고 있는 망치를 위협적으로 바닥에 두드렸다. 규칙적으로 쿵쿵거리는 울림이 홀 구석구석을 휩쓸었고 참석자들 또한 그 소리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모두가 긴장한 눈으로 소란의 중심에 시선을 박았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화약고 옆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한 격이다. 두 눈을 새파랗게 뜨고 제 가족을 노려보는 저 무뢰배가 ...
권순영이 가고 난 뒤 나는 온전하게 혼자 남았다. 주변에는 의료진들이 쉴 새 없이 돌아다니고 있었으나 이미 처치를 끝낸 나에게 관심을 돌릴 사람은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9년 전에도 그랬다. 권순영이 유학을 간 직후부터 나는 외로움에 꽤 긴 시간을 앓았다. 누군가 옆에 있는 것이 익숙해진다는 것은 그런 식으로 생존을 위협하고는 한다. 홀로 있을 수 없는...
일어났을 때, 나는 내 방이었다. 사위가 깜깜했다. 꽉 닫힌 커튼 사이로는 빛 한 점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옆에 놓인 핸드폰을 통해 시간을 확인했다. 열 시가 넘었다. 대체 얼마나 잔 거야. 나는 헛웃음을 치다가 얕은 기침을 뱉었다. 감기는 아직 나한테 달라붙어 있었다. 이불을 품에 끌어안으면서 권호시를 생각했다. 걔가 나를 방으로 옮겼...
밤새 앓았다. 걔가 아니라 내가. 나는 아침에 눈을 뜨지도 못했다. 눈꺼풀이 무거워서 자꾸만 내려앉았다. 겨우 상체를 일으켜 오른쪽 발을 침대 밖으로 내밀었을 때 나는 깨달았다. 도저히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바닥에 발을 딛자마자 현기증이 일었다. 노출된 살갗에 공기가 닿을 때마다 쓰라렸다. 몸살이었다. 그것도 지독한. 나는 시야가 핑 도는 기분...
부모의 자살을 목도한 아이에게는 무엇이 남을까? 단언컨대, 아무것도 없다. 권호시는 책상에 고개를 처박고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옆에서 선생님의 따가운 눈총을 대신 받으며 꼿꼿이 앉아 있어야만 했다. 걔가 수업을 거부하는 행태가 한두 번 있는 일은 아니기는 했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권호시는 내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간혹 책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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