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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스럽네.” 의외의 간결성에 이태용은 조금 놀라 다리를 반대쪽으로 바꿔 꼬았다. 스타벅스라서 그런가? 이태용은 주변을 둘러봤다. 사방에 사람이 가득했다. 그래, 여기는 좀 그렇지. 김도영과 이태용이 마주 보고 앉은 강남역 2번 출구 스타벅스 리저브는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엔 영 마뜩찮은 장소이긴 했다. 그렇지, 그렇지. 우리 도영이가 사회적 상식이 넘치는...
크리스마스엔 첫사랑을 하늘이 뿌옇게 흐렸다. 눈이라도 한바탕 쏟아질 것 같은 하늘 아래에 도영은 서 있었다.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는 번화가의 정 중앙에 위치해 있었다. 수 많은 사람들이 트리 밑을 지나다녔고, 사진을 찍었고, 팔짱을 끼고, 손을 잡고 겨울 바람에 벌게진 볼을 녹일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도영은 대답 없는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손끝이 시렸...
3. 잘생긴 얼굴은 경계심을 무너뜨린다. 기말이 끝나고도 쨍하게 내리쬐는 햇볕을 맞으며 학교를 계속 가는 건 김도영에게 있어 고문과도 같았다. 방학식 전까지 어영부영 떼우는 시간에 별 의미없이 지나가는 수업시간을 견디고 있노라면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렇게 축쳐져서 하루종일을 보내던 김도영은 하교시간 누구보다 빠르게 교문을 나섰다. 친구들의 ...
“팀장님, 팀장님? 팀장님! 정재현 팀장님!” 정우의 간절한 부름에도 돌아보지 않던 에이포지션 개발팀장 정재현은 끝내 정우가 어깨를 흔들고 나서야 반응을 보였다. 어, 김대리-. 무슨 일-? “아니, 제 목소리가 안 들리세요? 서류결재 해주셔야 한다니까요? 도대체 몇번을 불러야-” 재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입을 연 정우는 입을 열기가 무섭게 말을 쏟아내었...
누군가는 대자연을 신과 동일시 했다고 한다. 지금 당장이라도 인간을 잡아먹을 것만 같은 위협적인 존재, 혹은 감히 그 존재와 눈을 맞출 수 없는 위대한 그런. 나의 삶에 광활한 바다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없다고 믿었다. 당신을 처음 본 그 순간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단언했던 나의 세계가 흔들렸다. 석양의 빛을 받아일렁이는 파도는 온갖 수식어를...
정말 찜통 같은 한여름이였다. 기온이 무려 섭씨 40도에 달했으며 뉴스에서는 “연일 기록적인 폭염이 지속되고 있어...”와 같은 말이 매일 나오고 사람들은 수육 마냥 익어 갔다. 에어컨의 가호 없이는 버틸 수 없는 무더위였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땀이 나는 이런 여름에 고장 난 에어컨과 함께 생활해야 한다는 것은 삶을 포기하라는 것과 크게 다를바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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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위로 작은 상자가 반듯하게 얹어졌다. 앞뒤 맥락 없이 주어진 이 상자가 선물인지 깨닫는데도 시간이 좀 걸려서, 마크는 생각보다 오랫동안 의아한 표정을 얼굴에서 지우지 못했다. "올해 아니야?" "네?" "성년의 날." 마크는 여전히 그 표정 그대로 자기 나이를 손가락으로 세고 있었다. 그런가? 그럴 걸요? "맞으면서 왜 모르는 표정이야." 뒷머리를 멋...
*앤 카슨, 민승남 역, ⌈남편의 아름다움⌋, 한겨레출판, 2016, 75p. 생일 축하해요, 쟈니* 우리 돌아설 때는 인사를 나누기로 합시다 방을 치우고 향초를 켜 둘게요이 건물은 방음이 되질 않아서 커다란 성냥갑에 다 모여사는 것 같죠어제 건넛집은 사랑을 나누고뭐 그걸 사랑을 나눈다고 얘기하는 게 맞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이 복도에만 아홉개의 방이 있어요...
걔한테서는 항상 알싸한 향이 났다. 민트보다는 박하薄荷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향. 음식점 카운터 위 잼 병에 담겨 있는 박하 사탕 같은 향. 그러니 절대 싸구려 같지는 않은. 그런 향이 났다. 그러니까 나는 그런 향을 맡으면 걔 생각을 했고, 이따금 목 언저리나 허리께 쯤에 붙어 있던 파스의 촉감이 손 끝에 느껴질 때면 눈물이 쏟아지고는 했다. 어쩌면 박...
*앤 카슨, 민승남 역, ⌈남편의 아름다움⌋, 한겨레출판, 2016, 75p. 아름다움은 내려앉지 않는다 불신이 나의 종교였다. 산타를 믿어본 적 없는 게 나의 영특함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 단지 나에게는 신뢰라는 개념이 생길 겨를이 없었다. 한 자리에서 안정된 성장을 겪어본 적도 없었다. 끝없이 이사하고 배송지를 잃은 택배박스처럼 친척집...
*앤 카슨, 민승남 역, ⌈남편의 아름다움⌋, 한겨레출판, 2016, 75p. 아름다움은 내려앉지 않는다 춥기보다는 얼어있다. 이곳에서 맞는 두 번째 겨울이다. 사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머물려던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머물려던 것도 아니었다. 와야 할 것 같았고, 와보니 생각보다 좋았다. 세르미띠끄 산이 보이는 숙소가 우선 마음에 들었다. 해가 뜨면 창문을...
도영이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지도 어느새 3년을 가득 채우는 날이었다. 도영은 모 아이돌의 틀면 개갑분싸되는 노래의 가사처럼 2014년 6월 20일 (어쩌면 같은 팀의 다른 멤버일지도 모른다.) 엔셔 엔터테이먼트의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다. 데뷔조가 발표되고 나서는 일이 착착 진행되었다. 초록창 메인 기사로 엔셔 엔터테이먼트의 5인조 뉴 보이그룹 런칭...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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