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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루먹은 개 한마리가 있었다. 동네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자그만 개 한마리를 보고 아이들이 잔혹한 장난기를 머금은 웃음을 보이고 어른들은 쯧, 하고 혹시 병이나 옮길까 혹시 이나 옮길까 눈썹을 찌푸렸다. 돌을 맞아가면서도 개는 어두운 저녁이면 몰래 동네 안으로 기어들어와 간혹 떨어져 있는 떡 한조각 밥 한덩이를 주워먹었고 새벽이면 누구에게 털 끝자락이라도 보...
고등학교 2학년 여름의 미유키 소년은 생각했다. 저 똥깡아지 녀석은 나중에 누구를 고생시킬까. 그리고 서른 중반의 미유키 카즈야는 생각한다. 그게 내가 될 거라고는 짐작도 못했지.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가 무색하게 목소리는 쩌렁쩌렁 돔구장을 울리고 땡그란 눈은 강아지같이-개도 아니다- 반짝이는, 그 굉장히 귀찮고 짜증나고 귀여운, 미유키의 사와무라 에이준....
처음부터 차이는 존재했다. 8cm 키차이. 고작 한 뼘 정도 높은 그 머리통. 그 머리통이 앞서기 시작한건 그 차이를 인식했을 때였다. 겨우 조금의 차이라고 생각한 것이 어느 사이 9개의 숫자를 만들었고 그것을 애써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면서도 따라잡겠다, 하고 달리고 달렸으나 차이는 벌어져서. 1번과 18번, 그 머나먼 거리를 보고서야 울음이 나왔다. 왜...
넌 내가 왜 화가 났는지 모르지. 이해도 못하지. 그 말에 사와무라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상냥한 하루이치, 웃으며 네 눈물을 닦아주는 그런 친구는 이제 그만두게 해줘, 하고 속으로 되뇌이며 웃었다. 사와무라가 한걸음 다가오려 하자 하루이치는 딱 그만큼 물러섰다. 미안, 오늘은 안되겠어. 하는 말과 함께 주저없이 돌아서는 작은 등에 사와무라가 얼굴을 일그러뜨...
열 발자국 앞, 허름한 옷차림을 한 소년이 입술을 살짝 벌리고 서 있었다. 창백한 얼굴에 올라간 작은 상처들이 도드라지게 붉어서 사와무라 에이준은 눈을 깜박였다. 주변에 서 있던 이들이 웅성거리며 다가오기 시작하자 사와무라의 그림자에 머무르고 있던 그의 여괴, 와카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소녀의 모습을 한 그것이 인간일 리 없어 다가오던 이들이 멈춘다. 소년...
"누가 네 형이야" 그 말에 사와무라가 안그래도 동그란 눈을 휘둥그레, 깜박이곤 웃는다. 하룻치 형님이시니까! 저에게도 형님 아니겠습니까! 하하 웃는 소리에 옆에 있던 이사시키가 슬쩍 친구의 표정을 넘겨보곤 괜시리 사와무라를 걷어찼다. 아얏, 하는 소리와 함께 오히려 이사시키에게 붙어 너무함다, 수염선배~ 하는 재롱을 떠는 사와무라였지만 그럼에도 코미나토 ...
앞선 글에 인프피의 가식에 대해서 좀 다뤘는데, 갑자기 “착하지 않은 인프피, 가식적 인프피”에 꽂혀서 돌아옴. 저번 글에 뭔가 인프피 관련 생산적인 글을 들고 온다고 했으나, 갑
비가 오는 날엔 전화가 온다. 사와무라는 오래도록 쓰고 있는 제 휴대폰을 내려보며 한참을 망설인다. 화면에 떠오른 그 이름을 차마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 잊지 못했고 잊으려 노력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잊을 수 없는 그 이름에 사와무라는, 진동하고 있는 휴대폰을 가만히 이불 아래에 숨겨놓았다. 이불 너머로도 들려오는 진동에 연신 손가락이 움찔움찔...
벚꽃이 피는 어느 학교를 뒤에 두고 친구들이 활짝 웃고 있었다. 사와무라는 사진이 첨부된 메시지를 받은 지 한참이 지난 후에나 그것을 보았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떠나온 고향의 모습은 그리웠고 태어난 지 십년 하고도 얼마. 내내 봐왔던 친구들의 다를 것 없는 모습은 생소하여. 찔끔 눈물이 샜다. 입고 싶어 했던 교복을 입은 와카나가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며...
여름은 이미 과거로 흘러 미래가 되었고, 가을이 끝난 것은 고작 몇 주 전이라 소년들의 몸에 기억이 되어 요동을 친다. 겨울이 곧 다가온다는 것은 함께 시합에 나섰던 선배들이 떠나갈 나날이 다가온다는 의미였고, 새로운 후배들이 들어올 날이 다가온다는 의미였고, 아직 빛을 보이지 못한 새로운 주역들이 등장을 할 것이라는 전초전이었고. 무엇보다. “겨울 합숙이...
창 밖 너머 빨간 불이 깜박깜박. 눈을 감듯 점멸한다. 비행기 날개 위로는 까만 하늘과 별빛이 가깝고, 아래로는 멀고 먼 땅의 별빛이 반짝이는 곳에서 사와무라는. 창문에 이마를 기댔다. 차가운 유리, 맘이 시려 눈을 감아도 까만 곳 빨간 불은 깜박, 깜박, 그 때 당신과 나의 사랑도 이만큼 빨갰지, 깜박, 언젠가 꺼질 저 불빛마냥, 깜박, 깜박, 깜박…. ...
학교에 들어가 첫 생일이라고 들떠있었던 어린아이는 생일이 고작 이틀 지난 뒤에, 엄마의 손을 잡고 큰 병원으로 들어갔다. 아픈 곳도 없고 살펴볼 곳도 없고, 쿠라모치는 엄마의 손에 잡힌 제 손을 꼼지락대며 어떻게든 빼보려고 했지만. 다른 손을 할아버지의 손에 잡혀버려서는. 소독약냄새가 살풋 풍기는 곳에서 만난 사람은 의사선생님이 아니라 몇 해 전 근처로 이...
얼굴을 보자마자 달려와서는 사탕을 달랬다. 알아듣질 못하고 멀뚱, 바라보고 있으면 머쓱한지 이게 아닌가, 하고. 다짜고짜 무슨 말이냐 물으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인간들이 과자랑 사탕을 주는 날이라 했다며, 제가 잘못 들은건지 물어본다. 그러고 보면 장을 보고 나오던 미유키에게 슈퍼의 아주머니가 사지도 않은 사탕을 주었더랬다. 드문드문 아이들이 자주 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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