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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의 집으로 나란히 걸어오는 길은 바람이 꽤 세게 불었다. 하얗게 내리던 눈이 뒷정리가 끝나고 나올 때쯤 그쳐 그나마 다행이었다. 평소라면 무엇이든 이야기를 했겠지만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앨런은 자꾸 뒤를 돌아보며 학교를 멍하니 바라보았고, 폴은 너무 낯 뜨거운 소리만을 한 건 아닐까 자신의 발언을 돌아보고 있었다. 다시는 이런 기회가 없을 거란 생각 ...
“창작 연극 <Imitation Game>, 시작하겠습니다. 서 계신 분들은 자리에 착석해주세요. 휴대폰은 가급적 꺼주시기 바랍니다.” 파피의 목소리가 체육관을 꽉 채워 울렸고 시끌시끌하던 분위기가 정리되었다. 까맣게 닫힌 장막을 바라보며 폴은 고개를 돌렸다. 급히 깔아놓은 의자의 마지막 줄 끝자리, 음향을 담당한 파피 바로 옆에서 내레이션을 위...
“앨런은요?” 아침부터 눈이 내려서 장비를 내부로 옮겼다. 익숙한 체육관 무대에 연극 장비들이 깔렸다. 마지막 씬을 점검하기 위해 무대에 오르기 전, 모인 출연진을 살펴본 칼리가 물었다. 폴은 앨런이 조금 늦을 거라고 했다며 말을 돌렸고 칼리는 아쉬운 얼굴로 마지막 리허설을 마쳤다. 외부 무대라 다들 벌벌 떨 거라고 생각했는데 화이트 크리스마스 덕인지 실내...
“다녀온 사이에 연습이 끝났네요.” “네, 그쵸.” “괜찮았나요? 내일 설치 기사님들이 아침 아홉 시에… 당신.” 고개를 돌린 교장 선생님의 시선이 앨런에게로 향했다. 폴이 슬그머니 앨런을 자신의 뒤로 숨겼지만 그다지 효과가 있진 않았다. 가만히 익숙한 얼굴을 바라보던 선생님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폴, “네.” “우리 할 이야기가 있는 것 같죠?” 서늘한...
“운동장에 무대를 꾸릴 거예요. 예산 편성은 예전에 끝났고, 규모가 엄청 큰 편이 아니라서 교장 선생님도 허락했으니까. 무대 설치 비용이랑 음향, 조명 조건만 괜찮으면 돼요. 조명은 제가 조절하면 되니까 따로 작업하는 인물이 필요할 것 같진 않고….” “음향은요?” “파피가 음향 조절에 일가견이 있다면 믿겠어요, 앨런?” 어깨를 으쓱하며 이야기하는 폴에 앨...
“쉿.” 벌써 다섯 번째 대본 연습이었다. 익숙한 대사였지만 시끌시끌한 분위기는 여전했다. 추수감사절을 앞둔 마지막 연습이었는데, 옹기종기 모여 시끄럽게 떠들던 아이들도 본격적인 연습이 시작되면 자신의 대사를 살피며 조용해졌다. 일주일 째 앨런은 저택에 틀어박혀 작은 버전의 크리스토퍼를 만드는 데에 열중하고 있었기에 폴은 수업이 끝나면 그의 저택으로 출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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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들어가요. 응?” “아….” 우산을 바닥에 떨어트린 탓에 어깨가 젖어가고 있는 앨런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폴이 허둥지둥 바닥에서 앨런의 우산을 주워 들었다. 허리를 숙인 앨런이 우산 밑으로 들어왔다. “제가 들까요, 폴?” “아뇨, 괜찮아요.” “그럼, 조금만 높이 들어줄래요?” “아, 미안해요.” “아뇨, 아니에요. 괜찮아요.” 제 어깨를 감싸...
“연극을 하려고 해요.” “음.” “역할은 다 정해졌구요, 러닝 타임은 저번과 비슷할 것 같아요.” “어떤 내용인데요?” “전쟁 영웅의 이야기를 각색했어요. 자세한 대본은 아이들에게 배포한 상태구요.” 폴은 당황하지 않고 말했고 교장 선생님은 한참 그런 폴의 얼굴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에도 잘해주셨으니까, 올해도 잘해주실 거라 믿어요, 폴. 부담...
요즘들어 과거 유물(...)의 귀중함을 깨달아서 올려봅니다. 저 탈덕한건 아니에요. 우리 화창한 여름날에 다시 만나기로 했잖아요! 호흡이 가빠왔다. 목끝까지 차오른 숨이 난폭하게 흩어지며 폐부 깊숙이 상흔을 긋고 더 이상 갈 곳을 잃은 다리는 점차 느려지기 시작했다. 근육이 터질 듯 부풀었다 가라앉는다. 아, 더도 덜도 말고 딱 죽겠네. 괴물들이 사는 세상...
“메리, 기계를 만드는 거예요. 당신만 이해할 수 있어요. 당신은 수수께끼를 아주 잘 푸니까. 하루가 지나면 사라질,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수수께끼를 푸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어요.”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죠?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데.” “내가, 그리고 당신이 가능하다고 말할 테니까.” “…….” “그럼, 적어도 두 사람은 확신할 수 있겠...
폴은 두근두근 떨리는 심장을 겨우 가라앉히고서 마지막 우체통에 완성된, 꽤 두꺼운 봉투를 밀어넣었다. 차임벨을 누르는 소리는 경쾌했고 폴은 어릴 적에나 해보았을 벨 누르고 도망가기를 이제 이십 번째 하고 있는 자신에 회의를 느꼈지만 코너를 돌아 안전한 곳으로 안착했다. 벨이 울리자마자 달려나온 페기가 우체통 속의 파란 봉투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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