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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방 안 구석에서 홀로 몽롱이 떠있었다. 그랬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오로지 관념, 느낌, 신앙 뿐의 모습으로, 지금과는 많이 달랐던 듯한, 희미한 감각만이 소유하고 있었으니 별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와 비슷한 존재가 눈을 뜬 순간부터 나를 따르고, 나와 시선-느낌을 맞추며, 인간이 말하는 소위 사랑과 애정을 전하는 것에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보리스는 풀 위에 떨어진 생명을 조심히 들어 보았다. 어린 보리스의 손바닥보다도 훨씬 작았다. 겨우 깃털이 난 새끼 새는 날개를 움찔거리며 바르르 떨었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울림이 적나라하게 느껴졌고 덩달아 보리스의 가슴 속 고동 또한 빨라졌다. 새의 한쪽 다리가 꺾인 꽃대처럼 부러진 모양을 본 눈동자가 휘둥그레 커졌다. 살아있는 것조차 신기할 정도로 ...
하늘이 사나운 개처럼 울부짖었다. 보리스는 누운 채로 작은 창 너머에 보이는 풍경을 응시했다. 먹구름과 빗물로 흐리게 얼룩져 따사로운 햇살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영영 밝아지지 않을 새벽처럼 어둑어둑한 채, 오로지 빗줄기가 시끄럽게 울어대는 소리만 따갑게 귀를 두드렸다. 쌀쌀한 기운이 방안까지 흘러들어왔다. 보리스는 이불을 더 당겨 턱 아래까지 단단히 덮...
슈라이크. 로즈. 아울. 레젠데스. 윅스. 슐츠. 토스키. 애봇. 딜런이 지금까지 써 온 이름만 해도 수 십 개다. 내킬 때마다 미들네임과 성과 직업을 바꿔가며 법망을 피해 숨어 지내는 일은 숨 쉬는 것보다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반드시 바꾸지 않는 게 있다면, 절대 ‘배너’라는 성씨를 쓰지 않는다는 원칙과 추적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딜런’이라는 원...
하나는 몸이 완치되는 동안 한조의 방에서 지냈다.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는 그날 밤 기억에 하나는 미간을 찡그렸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조의 손에 들린 녹색 도자기 컵 안에는 녹차가 담겨있었다. 하나는 그를 보고 살짝 웃어보였다."머리는 좀 괜찮아졌니?" "네. 아저씨 덕분에 나아진거 같아요. 고마워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다. 뜨거우니까 조심히 마셔...
일단 두일이랑 택이는 친형제인데 택이는 두일이 중학교 1학년 때 태어난 늦둥이겠지 그런데 부모님 두 분 바쁘셔서 택이는 외가서 외할머니 손에 컸고 두일이는 중학생이고 외가는 학교도 너무 멀고 그래서 그냥 본가서 지냈겠지 그덕에 형제 그렇게 살갑지 않았고 제대로 같은 집에서 크기 시작한 건 택이 초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일 듯 이미 두일이 22살이라 택이한텐 ...
한조가 떠나기 전, 그는 정원의 제일 구석으로 겐지를 조용히 불러냈다. 겐지가 갔을 때, 한조의 모습은 다른날과 다르게 사뭇 진지해보였다. 잔소리라도 할 셈인가. 자신의 앞에 선 겐지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그가 입을 열었다. "겐지. 너에게 딱 한가지 부탁을 하고 싶다." "뭔데?" "내가 집을 비운 사이에 하나에게 손을 대지않겠다고 약속해라." ".. 싫다...
하나의 놀란 표정을 보고서 씩 웃고는 무언가에 홀리듯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입술에 살짝 입을 맞췄다. 하나는 예상하지 못한 그의 행동에 놀랐지만 피하진 않았다. 한조는 가만히 있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고, 긴장한 하나는 어쩔 줄 몰라 그 상태에서 굳어 있었다. 그런 그녀가 사랑스러웠던 그는 조금씩 입술을 움직이며 안을 뜨겁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하나의 ...
재수없는 등신 새끼. 카오루가 보모로 추정되는 여자의 손에 이끌려 방으로 들어온 카나타를 봤을 때의 첫인상은 딱 그 정도뿐이었다. 대체 뭐 좋은 자리에 나왔다고 헤실헤실 웃는 얼굴인지.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기도 싫었다. 넌 배알도 없냐고 면전에 욕설을 던져주려는데 자신보다 더 못마땅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카나타를 훑어보는 모친이 눈에 띄었다. 그녀는...
"아! 겐지 오빠랑 게임하려고 왔어요! 진짜 게임만 하려고 왔어요!" "겐지? 아아. 요즘 안보인 이유가 있었군. 이름이 무엇인가?" "송하나라고 해요." "이름이.. 꽃인가? 신기하군." "그쪽도 알려줘야죠. 내 이름 말했으니깐." "아. 미안하다. 난 시마다 한조다." 시마다? 겐지오빠 형인가? 근데 진짜 잘생겼다. 하나는 뚫어지게 그를 쳐다보며 이리저...
옆에서 들린 소리에 깜짝 놀라 쳐다본 그녀의 눈동자에는 아까 그 초록색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가 서 있었다. 앉아 있어서 몰랐지만 키가 제법 컸다. 가까이서 보니 잘생긴거 같기도. "야." "어?" "너가 내앞에 있었어?" "응. 그래서 뭐? 뭐..뭔데?" "너 게임 진짜 잘한다!" 응? 의외의 답변에 어리둥절해진 하나는 그 남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초롱초롱...
*인물 나이는 하나-20살, 겐지-25살, 한조 28살 입니다.2040년 8월 1일. 하나는 일본의 하나무라라는 작은 동네의 친척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불과 3일 전만 해도 남들과 같이 평범하게 집에서 쉬고 있던 그녀였지만 불행한 일은 항상 예고없이 찾아왔다. 그날 밤, 교도소에서 탈옥한 범죄자가 하필이면 하나의 집에 침입해 그녀의 가족과 마주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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