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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물어가는 시간. 이 맘 때쯤 음식점이 즐비한 거리는 하루 중 가장 활기차다. 평소 같았으면 시끄러운 건배 소리와 아저씨들의 술에 취한 욕설이 듣기가 싫어 재빨리 걸었을 텐데 오늘따라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오랜만이라는 말은 그 따뜻함 안에 엄청난 긴장감을 품고 있었다. 오랜만에 모이게 된 부원들. 후타쿠치는 오바라가 일러준 고깃집 앞에서 심...
그녀의 청첩장이 도착한 건, 기나긴 회식이 끝나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오던 평범한 어느 날 밤이었다. 편의점에 들러 숙취 해소용 음료가 담긴 봉지를 들고 집으로 향한 나는 습관적으로 우편함에 눈을 두었고, 새하얀 카드가 툭 튀어나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말았다. 신부 시미즈 키요코. 너의 이름 네 글자가 반듯하게 박혀 있는 카드를 들고서 한동안 그 자...
동전 하나 없는 빈손구두도 벗어 내버린 맨발마지막 모자도 주어버렸어아무것도 필요 없지그를 살게 하는 건 하나뿐 종달새가 지저귀듯이 낭랑한 음성이 뜰에 번진다. 노래의 주인공은 창턱에 비스듬히 걸터앉은 채, 늘어뜨린 한쪽 다리를 까딱였다. 흔들흔들. 언뜻 노래 박자에 맞춘 동작처럼 보이기도 했다. 따뜻하게 데워진 바람이 입김을 내뿜어 머리칼을 사르르 쓸고 지...
샤워기를 뚫고 나와 욕실 바닥으로 추락하며 부서지는 물줄기는 어딘가 눈물 겹다. 산산조각이 난 채 배수구로 힘없이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후타쿠치는 그 모습을 빤히 들여다 보다 끝끝내 작은 한숨을 터뜨렸다. 하루에 두 번 아침, 저녁으로 저 물줄기를 가르고 들어가는 일이 그에게는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평소와 같이 물을 틀어 놓은 채 몇 분 동안...
조슈아는 늘 관찰을 했다. 미술학도인 까닭이다. 아니, 관찰 없이 상상만으로도 완벽한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재능을 타고났으니 그건 그저 핑계일 뿐이다. 조슈아가 무언가를 관찰하는 것은 평범한 체하기 위함이었다. 조슈아는 늘 평범한 체를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관찰하고 싶은 대상이 생겼다. “보리스!” 조슈아가 보리스를 불렀다. 보리스가 조슈...
“지금, 당장. 만날 수 있슴까...?” 오후 3시 특유의 나른함에 늘어져 있을 때였다. 방 안을 가득 채우는 현악기의 음률 사이에서 벨 소리를 구별한 것도, 쌓여있는 파일 사이 어딘가에 파묻힌 휴대폰을 찾아낸 것도, 화면에 뜬 이름이 가장 싫어하는 녀석의 것이라는 걸 확인하고도 통화 버튼을 누른 것도. 모두 오후 3시의 변덕이었다. 다리를 꼬고 앉은 로한...
제 2회 대운동회에 나오는 동서 단편집에 엮여 들어갈 내용입니다. ※제 2회 대운동회 이후 유료화됩니다. 연리지(@yeonrigi1031)님의 트윗 소원의 조건. 일생에 단 한 번, 무슨 소원이든 빌면 이뤄질 수 있지만, 조건이 있음. 일생에서 가장 끔찍했던 순간을 10년간, 매일밤마다 꿈으로 겪게 됨. 꿈이긴 한데 꼭, 현실인 것처럼 감각이 생생함. #연...
산소님 달성표 보상 - 쿠로츠키 “이거, 케이가 예전에 되게 맛있게 먹었던 집 케이크. 가져가.” 츠키시마가 눈앞에 불쑥 내밀어진 하얀 상자와 그 상자를 잡은 손의 주인인 자신의 형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키테루가 떠넘기다시피 츠키시마의 손에 쥐여 준 새하얀 상자는 은은한 펄감이 드는 고급스러운 코팅 위로 물기를 머금은 싱싱한 딸기 그림과 함께 츠키시마가 ...
01카라스노 남자배구부의 주장 사와무라 다이치에게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외모에서부터 드러나는 성실한 성격의 사와무라와 잘 어울리는 귀엽고 발랄한 여학생이었다. 공개적으로 연애를 하는 두 사람은 선생님들도 "참 예쁘게도 사귄다"고 말할 만큼 건전하고 아름다운 커플이었다. 사와무라의 여자친구와 같은 교실에서 고교 이학년을 보내던 엔노시타는 부실에서 사와무라가 ...
“아사히상, 좋아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눈부시게 올곧은 눈동자가 똑바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히끅- 볼썽사납게 딸꾹질을 해버리고 말았다. 니시노야다운 당당한 고백이었다. 언제나 남자답고 믿음직스러운, 든든한 카라스노의 수호신. 고민이라는 단어가 니시노야의 사전에 존재하는지 의문일 정도로 명쾌한, 아니, 존재하더라도 아마 너는 평생토록 ...
아즈마네 아사히에게는 너무나 힘든 하루였다.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 니시노야의 얼굴을 보고싶었다. 활짝 웃으며 ‘아사히상!!’이라고 이름을 부르는 니시노야를 보면 이 피로가 씻은듯 풀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니시노야의 모습에 살짝 마음이 풀어지는 걸 느끼며 아즈마네의 얼굴에도 부드러운 웃음이 떠올랐다. 문득 아즈마네 자신은 한 번도 니...
너무 단순해서 노야 1인칭 시점으로 쓰기를 방해하는 노야가 너무 귀여워서 크으ㅋㅋㅋ 단순한 노야 보고싶은데 당장 생각나는 건 없으니 전에 썼던 썰로 써보았습니다. 저는 왜 이렇게 노야-소년, 아사히-남자의 표기가 좋을까요 철컥. 문고리를 돌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양이와 같이 쭉 뻗어올라간 눈매를 가진 소년이 정말 고양이인 양 귀를 쫑긋 세웠다. 소파에 누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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