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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월요일이면 방학식이다. 어떻게 해볼 틈도 없이 시간은 흘러왔고, 나는 방학 보충을 못 나가겠다는 말을 담임 선생님께 전해드렸다. “여주 너도 물론 잘 하겠지만….” “네?” “자꾸 성적이 떨어져서 걱정이네. 아르바이트도 적당히 하는 게 어떨까?” “아, 그게…제 생각인데, 다음 달 부터는 생활비가 안 나올 것 같아서요.” “…….” 담임인 민윤기 ...
“할머니를 뵙게 해주세요.” 난생 처음으로 반항을 했다. 나를 쫓아낸 할머니를 필사적으로 쫓아온 게 그 반항이었다. 집으로 가면 절대 문을 열어주지 않을 것이 너무도 뻔해서, 나는 악착같이 할머니의 회사로 찾아왔다. “죄송합니다. 이사님은 현재 출장 중이십니다.” 안내 데스크의 안내원 분은 무척이나 난처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모처럼 시간이 났었다. ...
“네가 그 김여주야?” “…네?” 쉬는 시간에 밖으로 나와 정수기에서 물을 뽑아 마시는데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고개를 돌리자 변백현 씨 또래의 남자 분이었다. 차분한 검은 코트에 삐딱하게 고개를 튼 그 분은 명백하게 나를 재보고 있었다. 저런 눈에는 익숙했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사람을 처음 볼 때 그 사람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재보곤 하니까. 그러니까,...
불완전하게 감지된 분노는 '죄책감'과 '자기세뇌'에 억눌려 있었고, 그대로 방치된 분노는 부패해 원환이 되었다. 분노와 원한은 다르다. 분노는 단순한 생리적 감정이지만 원한은 병리적 감정이다. 병적으로, 나는 내 친오빠를 증오한다. 잠깐 찾아왔던 분노는 오빠의 냉대와 질책에 원한으로 변질되어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중얼거리며 오만의 로미오 여자 주인공의 ...
혼자 우는 건 잘 한다. 소리를 내지 않고, 그냥 눈물만 흘려보내며 숨을 참는 거 말이다. 물론 그렇게 할 시 얼굴이 새빨간 홍시마냥 달아오르고 터질 것처럼 못생겨진다는 게 흠이긴 하지만, 그게 가장 소리가 안 나고 조용하게 감정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눈칫밥 먹고 자랐으니까 당연한 성장 결과일지도 몰랐다. 혼자 있으면 이렇게 눈물이 ...
중간고사 때문에 아르바이트고 강습이고 다 멈추고 공부만 파기로 했다. 그게 쉽지는 않았지만-특히나 우성 쌤의 설득이 마음에 걸렸다.-장학금을 생각하면 참아야 했다. 물론 고등학교 장학금이 크지는 않아도 그게 어디야, 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냥 포기하기는 싫었다. “…으.” 근데 집중이 안 돼. 머리를 부여잡고 쿵, 작은 접이식 탁자에 이마를 박았다. 이러고 ...
1. '나폴리탄 괴담'이란 '나폴리탄 괴담'은 인터넷 괴담의 일종으로 미스테리한 상황에서의 매뉴얼을 다루는 특징이 있습니다. 매뉴얼 속에 신뢰성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변백현 씨는 우리 편의점에 찾아와서 날 설득해댔다. 찝찝함과 별개로, 자꾸 마음이 약해지는 게 불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침울한 표정으로 일주일, 그렇게 지내다보니 석진 오빠가 걱정했던 모양인지 저녁을 같이 먹자는 제안을 했다. 종종 포장마차에서 저녁을 먹곤 했었기에 주말 피씨방 알바까지 끝내고서 집 근처 포장마차로 왔다. 벌써 석...
아무래도 어제 김태형이 족저근막염인가 하는 그 병이 의심스러워서 점심시간에 외출증을 끊어서 약국으로 향했다. 점심 때 쉬지 않을, 가장 확실한 곳이 약국이었으니까. 또…제일 중요한 거지만 진료비가 안 드니까. 내가 여태까지 알아낸 꿀팁 중 하나는 대부분 가벼운 감기나 식은땀 뻘뻘 흘리며 아플 정도가 아닌 것들은 약사 선생님한테 증세를 말하면 그에 맞는 약을...
생각할수록 어처구니가 없다. 난폭하게 책을 구겨 넣듯이 가방 안에 쑤셔 넣자 옆에 있던 혜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보았다. “…여주 너 뭐 화나는 거 있어?” “어?” “책 찢겠는데, 그러다가.” “아아…그냥. 화난 거 없어.” 괜찮아, 괜찮아, 짧게 대답 해주고 가방을 맸다. 이미 내가 야자 1교시만 하고 2교시 때부터는 알바 한다는 건 애들이 다...
“안녕하세요….” “왔니? 오늘도 잘 부탁…세상에, 얼굴이 왜 그러니?” “네? 저요?” 점장님의 부름에 멍하니 고개를 들자 점장님이 한껏 안쓰럽다는 얼굴로 따뜻한 캔 커피를 내밀었다. “이거 먹고 힘 좀 내. 공부하고 알바 하느라 많이 힘들지?” “아…하하. 감사합니다! 열심히 할게요!” “그래…너무 힘들면 말 하고. 간다?” “네, 안녕히 가세요!” 딸...
차라리 몰랐으면,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 천지였으면, 차라리 내가 뻔뻔하고 멍청한 인간이었다면, 차라리 그랬더라면 좋았을 텐데─까지는 생각해 본 적은 있어도, 나는 단 한번도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스스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태어나서는 안 되는 아이였다는 자각은 있었지만,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과 같은 생각을...
한동안 무슨 정신으로 지냈는지 모르겠다. 그냥 종일 멍해서…순간 정신 차려도 그 뿐이고 조금만 집중력을 날리면 생각이 아예 사라져 버린다. 더 이상 상처 받을 게 없다고 생각 했는데, 그냥 착각이었나 보다. 설마 할머니가 날 버릴 줄이야. 마른 세수를 하며 복도에 멍하니 서 있다가 종이 친 것을 깨닫고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어서 아르바이트 가야지…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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