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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뭘 원하는지 말해. 스파크를 내뿜는 머리의 회로가 뇌의 명령에 불복종하기 시작한다. 머릿 속에 떠오르는 말들이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더듬거리기를 반복했다. 말 안하냐고 노려보는 녀석의 눈빛에, 나도 모르게 중심을 잃은 채 당황을 머금고 말았다. “초록친구가.. 그러니까.. 빨간잔디가 바스락..” 어떻게든 목소리를 드러냈으나, 방금의 상황을...
#77. 불 시착 깊이 빠져드는 점심시간 속 어둠. 그 속에 숨어있는 지독한 냄새가 바닥을 통해 코 끝으로 스며 들어온다. 금 같은 반짝임을 머금던 여유로운 시간이 짙은 농도의 깊은 갈색빛으로 물들어져 가고, 지독한 냄새의 출처를 살피는 내 두 눈이 몇 가지 가능성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잔뜩 진지해진 내 눈빛이 추리기운을 가득 담아 주변을 훑는다. 공간을 ...
#76. 바보냐 (2) 한 발짝 뗀 무게가 내 조그만 눈물 방울을 발견하고 순간적으로 멍해져 버린다. 자신과 관련된 상황에 이런 표정을 보여주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던 건 걸까. 평소와 같이 욕을 하지도, 찡그린 표정을 짓지도 못하는 당황스러움이 고슴도치의 표정에 잔뜩 차올라 있었다. 각자 다른 감정을 머금고 있는 세 사람. 내 말에 다음을 잇지 못하는 선...
#75. 바보냐 (1) 분명 조그맣게 속삭였는데, 우리 대화의 일부분을 들으셨는지 선생님께서 진지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그림자를 뻗으셨다. 움직임을 예측할 수 없어 멍하니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림자의 주인인 선생님의 팔이 내 쪽 방향이 아닌 고슴도치 쪽으로 움직이더니 갑자기 녀석의 머리를 콩하고 한 대 때렸다. “..윽! 아C!” 꽤나 힘 실린 꿀...
#74. 역발상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어서 그런건지 몰라도, 적당한 민폐포지션이란 개념이 나쁜 쪽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밥 먹듯이 욕을 하는 상대방이라던가.. 가만히 있는 상대를 기분 나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녀석이라던가.. 이런 느낌의 사람이 눈 앞에 있다면, ‘가만히’라는 단어보다 잘못됨을 알려줄 수 있는 최소한의 반항정도는 패시브로 작용할 수 있는 부...
#73. 욕쟁이사자와 까마귀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솥, 내 몸뚱이만한 크기를 지닌 솥이 팔팔 끓어 넘친다. 불을 조절하고자 바람을 불어넣었지만.. 아뿔싸, 바람은 되려 불을 더욱 크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을 때 즈음, 힘 잃은 '감정솥'이 바깥으로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아니, 왜 자꾸 욕질이세요 신발아?! 난 욕 못하니 야발...
"여기 어디에 있다고 했는데, 어디 있다는 거지"널 처음 만난 곳은 도서관이었다.책을 찾는 널 먼저 발견한 건 나였다.단 한 발짝만 내딛으면네가 찾는 도서를 찾을 수 있었다.단 한 발짝만 내딛으면 네게 알려줄 수 있었다."무슨 책 찾아? 내가 같이 찾아줄게"용기가 없어 내딛지 못한 나와 다르게친구는 용기를 내어 네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네게 가지 못했던 나...
#72. 따뜻한 반창고 따뜻한 상대의 온기가 손가락에 닿아온다. 이런 요상한 상황 속에서 상대의 온기를 느끼고 있는 스스로가 뭐랄까.. 상당히 어이없었다. 뭐하고 있는거냐고 마음을 꾸짖었지만, 찾아오는 두려움에 차마 눈을 뜰 수 없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피를 온몸으로 보내기 시작한다. 굳어버린 몸을 삐걱이고 있는데, 따뜻한 손이 접착성있는 무언가를 내 손...
#71. 빨강이 사라진다면. 모든 사람에겐 색이 존재한다. 개성 강한 원색을 가진 사람도 있고, 물 흐르듯 여유로운 무채색을 가진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 모든 색이 모여 ‘반’이라는 하나의 물감을 이루어낸다. 싱긋 웃으며 붓을 이용해 물감의 색을 도화지에 그려냈는데.. [ 원래의 색이 아니야. ] 단호한 얼굴 빛을 띈 도화지가 기존의 네 색이 아니라며 물감...
#70. 자체 필터링. 이것은 마치 명상과도 같은 방법.. 몸의 진정한 안정을 취했을때에만 발휘될 수 있는, 모든 것을 투명한 물로 바꾸어버리는 나만의 필터링.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신 뒤, 마음 속에 굳은 다짐어린 맗 한마디를 불어넣어주었다. 작은 감정은 곧 싹을 틔워 나를 모든것에서 보호해 줄 것이다. ‘그래, 듣기 싫은 소리는 그냥 필터링 해서 들으...
#69. 빨간 고슴도치 “하루 이틀 아니니까. 너도 자리 바꾸라고.” 당당한 말투와 어조. 아무런 감정없이 들려오는 청각적 느낌에서는 녀석의 생각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녀석을 바라본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반대를 향한 고개 속,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흔들리는 눈동자가 스쳐지나가듯 내 시야에 닿아왔다. ..그 모습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낭...
#68. 알 수 없는 무언가. 여자아이의 식지않는 눈빛 열기. 재밌는건, 옆 통수의 따가움을 느낀 녀석이 눈동자를 살짝 움직이면, 부끄러움 잔뜩 머금은 여자애의 고개가 눈치 빠르게 반대로 움직인다는 것. 뭐랄까, 똑같은 움직임을 반복하는 자동화기계 같은 느낌이 든다. 그 우스꽝스러움이 조금 귀여워, 흐르는 웃음을 잠시 드러냈다. 난 아직 어른이 아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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