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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가을은 빠르게 깊어갔다. 겨울이 빨리 오려는지 아침저녁 기온이 예년에 비해 더 춥게 느껴졌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빈은 조금씩 예전의 활기를 회복하고, 선재는 조금씩 더 우울해졌다. 선재가 활기 넘치는 날은 금요일 하루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말이다. 금요일엔 언제나 평소보다 표정이 밝고 기분도 좋아 보였다. 반면 월요일의 선재는 뭐라...
17. 서두름 없이 한 걸음씩 다가가며 선재는 빈의 표정을 살폈다. 준연을 발견한 반가움에 무턱대고 앞으로 튀어나갈 때와 달리 이제야 곤란한 상황이란 사실을 깨달았는지 척 보기에도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무엇이 그렇게 걱정스러운 걸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지 마, 그러지 않아도 되잖아. 여긴 우리뿐이야. 정현성도 없는데 네가 왜 그렇게 불안해하는 거야...
16. 무서울 정도로 무거운 침묵이 계속됐다. 선재는 등을 돌린 채 꼼짝 않고 누워 짤막한 한숨을 몇 번인가 내쉬었다. 등을 돌린 선재가 낯설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죽여 버리겠다고 하던 그의 표정과 목소리가 뭔가 꽉 막혀 숨을 쉴 수 없게 하는 답답함을 지니고 있어서 빈은 덩달아 입을 다문 채 슬그머니 돌아누워 아직까지도 얼굴을 축축하게 만드는 눈...
15. 빈이 눈을 뜬 건 목이 말라서였는데, 깨고 나니 갈증보다 심각한 것이 두통이었다. 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양손으로 누르고 잠시 멍하니 누워있었다. 어제의 일을 기억나는 대로 대강 떠올려보았다. 승미와 잠깐 마주쳤고, 현성이 몹시 화가 났었다. 그다음엔 술을 마시러 가서 승미 때문에 괴로워했는데 준연이 위로해 주었다. 곧 자리를 비웠던 현성이...
14. “여기는 어떻게?” 현성은 낯가림이 심한 편인 듯, 불편하고 불안한 얼굴이었다. 모르는 사이나 친하지 않은 사람과 둘만 덜렁 남겨졌을 때 흔히 볼 수 있는 태도가, 누구에게나 거침없이 친밀하게 대하곤 하는 형준에게는 재미있었다. 이런 타입의 사람을 만나는 것은 꽤 오랜만이었다. 선재는 다른 사람의 기분에는 좀 무심한 편이고, 준연은 일단 자신과 연관...
13. 문이 열리는 소리에 안 그래도 당황했는데, 도대체 어쩌려는 건지 사람이 들어오는 기척을 느끼면서도 선재는 잡고 있는 손을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여전히 깍지 낀 손을 꽉 붙잡고서, 막 입술을 뗀 손가락을 유심히 바라보다 살짝 고개를 들어 빈을 응시했다. 깊고 잔잔한 눈빛이었다. 그 사이 서로 간에 스쳐 지나갔던 폭풍 같은 일련의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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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이어봅니다 임시 저장글에 작년 10월부터 있었네요 😅 # 그날 임신 사실을 거의 통보하듯이 알리고 석진이 울면서 태형의 집을 뛰쳐나간 이후로 연락이 안 됐다. 학교도 안 나오고 석진의 집에도 가봤지만 역시나 없어. 태형은 석진이 걱정 돼서 미칠 것 같았고 석진에게 많이 미안했음. 그날 석진은 제정신이 아니었는데 순간적인 감정에 판단력을 잃은 것도 ...
12. 안 그래도 마음 스산한 날,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마치 속을 헤아린 듯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에 원하는 대로 웃어주고 싶었지만, 웃기 위해서 억지로 입술을 움직이자 튀어나온 건 웃음 대신 울음이었다. 그것도 어린애처럼 잔뜩 일그러진 울음. 이렇게 갑자기 울어버리면 준연이 당황할까 봐 걱정했는데, 준연은 놀라거나 난처해하는 기색이 아...
11. 같은 공간 안에 있다는 걸 확인한 순간 바로 튀어나갔어야 했는데 잠깐 머뭇거리는 틈에 무슨 생각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승미가 말을 걸어왔다. “안녕? 반갑다.” 오랜만에 보는 듯 자연스럽게 인사하는 승미가 대단한 건지 어떤 건지, 좀 오싹하는 기분이 들어 빈은 대강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다. 언뜻 현성을 보니 셋까지 세고 난 다음에...
10. 선우빈이 윤승미를 처음 알았던 건 열여섯 살 때였다. 여름이었다. 친하게 지내던 형을 따라 극장에 갔었는데, 거기에 승미가 있었다. 승미는 형 여자친구의 동생이라고 했고, 형과 형의 여자친구, 빈, 승미 그리고 승미의 남자친구까지 다섯이 함께 영화를 보게 됐다. 굉장히 새침한 표정이 가지런한 앞머리와 유난히 잘 어울렸다. 첫눈에 반했다. 예쁜 얼굴,...
"...입니다. 이어서 오늘의 날씨입니다. 쌀쌀했던 어제와 다르게 오늘부터는 봄 평년 기온을 회복하며 나들이 가기 좋은 날씨가 예상될 전망입니다. 전국 아침기온 14도 안팍으로 나타나고, 낮기온 19도에 머물 예정입니다. 바람은 서쪽에 위치한 고기압의 영향으로 ..." 무섭고 이상한, 신비로운 계절이 돌아왔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거리를 감싸고 살랑살랑 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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