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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 <백수가 되어 그리운 것> 편이 이어집니다.
“나한테서 장미 냄새가 났다고요?” 그가 장미를 들고 한참을 보다가 한 말이었다. 희한했다. 내가 미니장미를 사 가지고 가다가 차에 치이긴 했지만 그 정도로 향기가 남을 리도 없고, 그를 만난 것도 여기로 떨어진 지 꽤 지난 시점인데다, 목욕도 몇 번을 했는데 말이다. 평소 내 드레스에 뿌리는 향수는 아마 마리차 향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 우리가 심고...
꿈 일을 할 때 명심해야 할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꿈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꿈에서 아무에게도 속지 않고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꿈을 이용하지 못하면 꿈을 영원히 두려워하고 도망치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영리하게 꿈을 이용해서 원하는 걸 이루는 게 가장 중요하다. 예전에 재경이 전해준 말을 떠올리며 점원에게 핫도그를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
. 제욱이 환복을 하자, 의료진이 서태령의 이마에 붙인 것과 똑같이 제욱의 이마에 전극을 덕지덕지 붙여대었다. 이런 검사가 아프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서 걱정되지 않았다. 대신, 팔뚝 위로 고무줄을 질끈 묶으며 의료진이 미리 경고했다. “피 뽑겠습니다. 따끔할 거예요.” “해야 해요? 안 하면 안 돼요?” “해.” 센터장이 엄하게 말하자, 제욱은 아랫입술을...
. “부부야. 부녀가 아니라.” 남지웅이 별거중인 부부-라는 건 입모양으로 벙긋대어 덧붙이며 웃음 끝에 말해주었다. 제욱은 크게 실례를 한 것 같아, 센터장을 쳐다보며 “아, 죄송합니다.” 하고 재빨리 사과했다. 센터장은 그런 말에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됐어“하고 대꾸했지만, 눈치 없는 제욱의 눈에도 입술 끄트머리가 한참 내려가 보였다....
. 말이 그렇지, 뜻이 그렇냐고 제욱은 구두 협상으로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서태령의 변호사, 이혜인은 얇은 서류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어 몇 가지 사항을 덧붙여 기입하고 서류에 적힌 말들이 대략적으로 무슨 뜻인지 쉬운 말로 조항마다 구구절절 설명하더니 제욱에게 인적 사항을 쓰고 서명하라고 했다. 제욱이 서태령에게 잡힌 두 손을 들어보이자, 혜인은 제욱이 ...
. 환자의 정체를 알고 제욱은 대뜸 “헉!” 소리를 내며 놀랐다. 반쯤 미친 것처럼 보이는 센터장에게 크게 호통을 듣지 않았다면 서태령이 잡고 있던 손을 어떻게든 뿌리치려고 들었을 지도 몰랐다. 와씨! 대박! 미친! 씨바! 어떤 감탄사도 현재 상황에 알맞지 않았다. AI 연예인 중에 서태령을 꽤 닮게 만든 미카엘이 있었다. 일부러 가브리엘처럼 천사계열 이름...
“권…제욱인데요.” 제욱은 얼떨결에 대답해놓고는, 일견 미치광이 과학자처럼 생긴 남자가 질문을 한 게 아니라는 걸 한 박자 늦게 깨닫고 황급히 변명했다. “아, 죄송합니다. 저기서 보니까 이 분 팔이 떨어져서요. 손만 올려놓고 가겠습니다. 진짜 저는 아무 짓도 안 했습니다. 그냥 손만 이렇게 올렸습니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니가 지금 무슨 짓을 한 ...
환자가 말한 튕긴다는 게 그것이었는지, 제욱의 손 앞에서 멈췄던 오토바이가 뒤로 왈칵 밀리며 뒤집어졌다. 타고 있던 세 사람이 한꺼번에 땅에 우르르 넘어지며 비명을 질렀다. 좀 안 됐긴 했지만, 한편 고소했다. 그대로 처박혔으면 제욱은 날아가고 환자는 더 다쳤을 것이다. 앰뷸런스 뒤에 있던 구조대원이 놀라 쩔뚝거리며 달려왔다. “센터 소속 응급차가 곧 올 ...
루비아는 내가 아는 사람 중 제일 특이하고, 밝고, 귀여운 사람이다. 루비아는 내게 천사라 했지만, 내 눈에는 루비아가 그랬다. 은혜 갚는 르베르셀이라며 슈인 보육원을 정기 후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매달 이곳에 찾아오겠다고 당당하게 약속했던 루비아에게 미안하지만, 듣기 좋고 허울 좋은 약속에 불과할 것이라 생각했다. 다들 처음엔, 그렇게 말했으니까. 어른들도...
“아버지를...안 사랑해요?” 장륜은 자신이 지나치게 집요하게 묻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령은 무례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장륜이 생각해도 그의 물음은 선을 넘었다. 타인의, 그것도 아버지와 가령 같은 사람의 연애 관계에 대해 자세하게 묻는 건 큰 결례였다. “그게....” 하지만 그는 알고 싶었다. 정확하게 하고 싶었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가령의...
어느새 오후 한 시였다. 장륜은 꿀꺽 침을 삼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천장에 조명부터 가구, 새하얀 블라인드와 탁자 위에 서류 한 장까지 완벽한 질서를 유지하는 가령의 사무실이 낯설었다. 생각해보면 아버지와 관계된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찾아오는 건 처음으로 겪는 일이었다. 하다못해 그의 외삼촌인 사명에게도 이런 식으로 방문했던 적은 없었다. 애초에 그의 전...
던지고 벽에 부딪히고 되돌아오는 공을 받아 던지는 규칙적인 소음이 사무실을 울리는 오후였다. 학산은 벌써 몇 시간째 애꿎은 텅 빈 벽만 때리고 있었다. 반복해서 되돌아오는 공의 궤적이 이제는 머릿속에 그려질 지경이었다. 다시 받은 공을 바닥에 튕겨 글러브에 받는 지루한 동작들 사이사이, 그는 오래된 기억들을 더듬어 확인하고 있었다. 처음 경찰이 되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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