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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록."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물리적으로. 눈앞이 온통 뿌연 먼지로 가득해 헛숨을 들이켰다가 마른 기침을 몇번이나 토해낸 뒤에야 생리적으로 맺힌 눈물을 훔치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일이냐면- 굳이 이렇게 서두를 열 것도 없다. 외근 중 있었던 습격에 대응하다보니 이 난리가 난 것뿐인지라. 물론 습...
민혁은 기현의 집에서 자신의 집까지 눈을 감고도 걸어갈 수 있었다. 걸어가기에는 꽤 먼 거리지만, 민혁은 항상 걸었다. 기현이 태워다 준다고 하면 기꺼이 조수석에 오를 의사도 있었지만 기현 역시 차를 거의 몰지 않는 사람이라 그런 일은 없었다. 그래서 민혁은 좀 화가 났었다. 그 여자랑 만날 때는 늘 차를 모는 유기현에게. 걷는 걸 좋아해서 날씨만 좋으면 ...
아직 치우지 않은 크리스마스 조명이 점멸했다. 빨강, 파랑, 보라, 초록, 느릿느릿 바뀌는 싸구려 불빛 아래에 어울리지 않게도 그가 있었다. 유진은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연한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조명을 따라 색을 바꿨다. 붉은색, 푸른색, 마주 닿은 눈동자가 빛을 바꾸며 유진을 마주 응시했다. 그러나 한유진은 그 진짜 색을 알고 있다. 점멸하는 눈동자는...
홍콩의 밤은 피 냄새가 흥건하다는 걸, 해가 지고 낮게 깔리는 어둠에 발을 들여서야 자호는 깨달았다. 그 어둠에 빛나는 다채로운 네온 빛깔에 어째서 붉은색만이 그렇게 화려했는지. 네온은 아니었지만, 자호의 옆에서도 희미한 붉은 빛이 타올랐다. 그 빛에 이끌려 고개를 돌리자 숨을 내뱉는 소리와 함께 혼탁한 허연 연기가 사내의 입에서 뿜어 나왔다. 한숨과도 같...
1 중졸이었던 상혁의 마지막 이력인 ‘목포서과학고등학교 중퇴’는 상혁의 남은 인생을 끝까지 따라다녔다. 상혁이 중도 탈락한 고등학교는 전국의 영재들이 모두 모인 곳이었기 때문에 어쩌다 이런 영재가, 젊은 사람들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 이런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모두 궁금해 했기 때문이다. 상혁의 이력서를 본 사람들은 상혁 씨가 어릴 땐 공부를 잘했다던데-...
※공포요소, 불쾌 주의※
"···카카시 선생님, 좀 크게 말해보라니깐요." "너를 데려가겠다." 정적이 흘렀다. 시선은 여전히 시카마루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시카마루는 뒷머리를 긁어지며 귀찮다고 중얼거리면서 나루토에게 다가갔다. "너 말이야, 봉인술에 대해 조금이라도 공부했냐?" "보··· 봉인술?" "하아··· 너 계속 하급닌자라고. 아무리 세계를 구하면 뭐해, 승급을 위해 적어...
진정령(드라마)과 마도조사(소설/원작)는 아천의 사후 설정이 다릅니다. 이 글은 진정령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설양이 왜 자신을 방해하는 아천을 그냥 뒀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쓰는 짧은 글. 설양은 약양으로 떠나기 전 새 볏짚을 깔아두었던 관에 아천을 뉘였다. 아천은 체구가 자그마해서 비좁은 관도 넉넉히 공간이 남았다. 오늘 밤에도 의성엔 싸늘한 바람...
“실감이 안나요” “뭐가?” “에클라 씨가 없다는 사실 이요” “하루 못 본다고 죽니 얘는” 제가 그 최초가 될 수 있을 거 같아요. 힘없이 칭얼거린 샤론이 손에 든 찻잔의 가장자리를 매만졌다. 에클라는 결국 몇명 영웅들과 함께 오늘 아침 일찍 원정을 떠났다. 1박 2일이라는 짧으면 짧고 길면 긴 일정이었다. 그러나 같이 있던 시간이 컸던 탓인지 샤론에게는...
벌써 겨울. 그것도 이제 막 시작한 초겨울이 아니라 1월, 한겨울. 봄이 왔길래 겨울을 보내주고, 여름이 왔길래 봄을 보내주고, 가을이 왔길래 여름을 보내주고, 겨울이 왔길래 가을을 보내주었다. 그냥 의미 없이. 그렇게 흘러 흘러 보내주었더니 다시 겨울이 왔다. 겨울과 함께 너도 왔다. 너는 함께 온 겨울과 같이 무척이나 희고, 희고, 또 하얬다. 눈결정이...
그대의 실에 얽혀 운명의 실타래가 가로막힌다 하더라도 그대의 꼭두각시가 되어 원하는대로 재단된다 하더라도 상관치 않을테니 그대의 손 가는대로 나에게 꼭 맞는 아름다운 새 삶을 선물해 주시길
루이가 스튜디오에 틀어박힌 채 기타만 튕기며 스스로를 사회와 격리시킨지 거진 20시간 만에 침입자가 생겼다. “여기 있을 줄 알았다. 전화 좀 켜놔, 토모.” 루이는 침입자의 손에 피자로 추정되는 박스를 포착하곤 우선 듣기 싫은 잔소리를 좀 들어 주기로 결정했다. “나일러, 딱 2분 줄게. 잔소리는 2분 안에 끝내도록 해.” “이번엔 뭔데? C 감독이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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