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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서른 넷, 문득 즐거운 일만 생각하기엔 너무 현실을 사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악기'라 하셨습니까?" 시온의 발언에 네키아와 유클리안이 자신들의 호위 및 일행과 함께 작게 웅성이는 가운데, 누구의 것인지 모를, 그들의 의문을 담은 목소리가 그 사이를 비집고 시온의 귀에 들어왔다. "네, 맞아요. 시메트리아의 상급 요괴에 대해서는 여러분도 들으신 바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들이 가진 힘을 응축시켜 만든 독성물질로 추정됩니다." ...
"헤니즈의 시온 루네아 히르스 전하 드십니다." 중앙 홀의 앞에서 문을 지키고 있던 시종이 시온의 입장을 알렸다. 곧이어 커다란 문이 열리고, 안에 모여있던 귀빈들의 시선이 쏠렸다. 물론, 귀빈이라고 하기에는 사안이 사안인지라 급히 대표자나 대리인만 부른, 많지 않은 인원이었지만. "헤니즈의 붉은 빛, 시온 왕 전하를 뵙습니다." 현재 대표자의 신변을 확보...
똑, 똑- 희미하게 들리는 노크소리에 여울이 침대에 어정쩡하게 기대어 있던 몸을 일으켰다. "어, 들어와... 서재로 갈게.." 생각지 못한 자괴감에 허우적대느라 늘어진 목소리로 방문을 허하고, 여울이 숙소에 오자마자 풀어헤친 머리카락을 대충 쓸어 넘긴 뒤 서재로 들어섰다. "단장... 꼴이 그게 뭡니까?" "왜, 뭐. 이 꼴이 어때서." 반쯤 넋을 놓은 ...
"이 사기꾼 새끼가...!!!!" 늘 그렇듯, 몸부터 나가려던 여울의 몸이 일순간 굳었다. "너, 너..! 나한테 무슨 짓을 한거야?" 몸이 움직이지 않자, 당황한 여울의 물음에 산이 담뱃대를 물고 깊이 들이쉰 숨을 여울의 방향으로 길게 내뱉어 은회색 연기를 만들며 말했다. "쓸데없이 감정적이고, 몸부터 나서는 버릇은 좀 고칠 필요가 있어 보이는데." "이...
시온의 신임을 통해 마음이 울렁거리던 밤을 지나, 여느때와 같은 하얀 빛의 햇볕이 대륙을 환히 비추는 아침이 밝았다. 여울은 제대로 잠들지 못 한 얼굴이었지만, 마른 세수를 하며 피로를 씻어냈다. 의뢰를 한 장본인인 마탑주에게 보고를 하러 가야했으므로. 지난 밤에 대충 풀어 헤친 머리를 가볍게 하나로 질끈 묶어 올린 뒤, 제복을 입고 침실을 나섰다. 마탑주...
달이 휘영청 밝게 마탑의 꼭대기에 걸쳐진 야심한 밤. 최소한의 시녀와 시종, 바론의 호위들만이 왕의 곁을 지키고 있는 시각이었다. 얇은 겉옷과 부드러운 천으로 만들어진 잠옷을 입은 시온이 침실 곁에 딸린 간이 응접실에서 여울을 맞이했다. "그래, 이 시간에 급한 보고라니, 무슨 일이죠?" 은은한 촛불만이 일렁이는 응접실에서 시온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태어나자마자 시한 폭탄을 선물 받은 로봇 반. 박사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폭발하고 만다.
아들러에 도착한 이후로는 순조롭게 순찰이 이어졌다. 전서구를 통해 여울의 명령을 하달받은 아일기사단이 북쪽의 해안가를 수색하고, 여울과 바론의 단원들은 남쪽의 산과 농지를 수색했다. 남쪽에서는 아무런 일도 없었으나, 북쪽에서는 작은 마물이 나타났다고 한다. 다행히 쉬르테에서 만난 마물만큼 지능을 사용하는 것 같지는 않았고, 아일 기사단만으로도 충분히 제압하...
여울을 뒤쫓아 온 단원들은 반 쯤 어둠에 먹힌 커다란 늑대를 보며 놀란 것도 잠시, 여울이 넋을 놓고 있기에 혹시 저 늑대같은 것에게 정신계 마법이라도 당했나 싶어 여울의 몸을 흔들었다. "단장!!!" "아... 아! 쟤한테 치유마법 좀 써줘. 얼른." 정신을 차린 여울이 마법사 단원에게 말해, 펠을 치유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여울의 말에 마지못해 ...
"너... 아니, 너 뭐야?" 자신의 입으로 이름을 부르기는 했지만, 도무지 자기가 알던 그 양아치 정령같은 모습이 아닌 지라 여울이 황당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눈 앞에 있는 것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서 있으면 자신의 키만할 것 같은 크기의 커다란 늑대. 짙은 회색부터 은회색까지 회색빛의 털을 가진 늑대는, 원래라면 윤기가 흘렀을 것...
여울과 단원들은 데어기사단의 협력으로 산에서의 일은 전부 처리하고, 의복도 갈아입고, 기사단 건물에서 씻고난 뒤, 입고왔던 옷은 깔끔하게 정리해서 이동하였다. "그럼 이제 서쪽과 북쪽만 남았나?" "예, 맞습니다.""아니이, 단장! 우리도 그냥 마법써서 휘리릭하고 집에 가면 안돼요?" "쉬고 싶은데..." 여울이 투정부리는 두 단원의 목소리에 돌아보자, 믿...
날이 밝고, 여울이 물약의 효과를 본 덕인지 몸을 금방 가눌 수 있게 되어, 바로 데어기사단에 전서구로 연락을 취했다. "이쪽이야." 산 밑에서부터 쿵-쿵-, 발소리를 울리며 올라오는 데어기사단의 부단장과 단원들을 보며 여울이 손짓했다. 그들은 위에서 손짓하는 여울을 바라보다가, 이내 여울의 옷이며 몸이 흙인지 피인지 모를 것이 엉겨붙은 걸 보며 걸음을 빨...
기싸움이라도 하는 듯, 말없이 여울과 마물의 눈이 잠시 마주쳤다. 그 찰나에, 여울은 생각했다. 포효하며 기선을 제압한다. 몸을 비틀어 피한다. 그리고 사각에 놓인 꼬리로 공격한다. 이게 과연 그 동안의 마물에게서 보이던 패턴인가? 정답은 '아니'였다. 마물이란 무엇인가. 눈 앞에 보이는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부수고 집어삼키는 것들이었다. '인지'와 '통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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