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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가 세차게 내리는 속에 서 있다. 퍼붓는 비가 너를 지우고, 또 너를 내게 지운다. 억지로 지워낸 기억의 무게가 고스란히 얹힌 마음이 빗물을 머금으며 무겁게 가라앉는다. 차라리 쓸려가 버리면 좋으련만, 그러기에는 마음이 너무 커서 계속 부피를 더한다. 점점 더 버거워진다. 해마다 찾아오는 장마는 매년 그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너를, 비는...
동트기 전 푸른 빛이 창가 한쪽에 드리웠다. 푸르스름한 새벽녘의 한기가 서늘했다. 잠에 들어서도 울었는지 가경의 말간 뺨 위로 그어진 마르지 않은 궤적을 들여다보며 현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날렵하게 드러난 턱선과 이어진 뺨이 많이 야위었다. 한 손에 폭 가리는 하얀 얼굴에는 고단함이 가득했다. 늘 당당했고 빛났던 가경을 그저 제 옆에 두고 싶었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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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잠이 들었었나. 창문밖으로 어슴푸레 밝아오는 새벽하늘이 보였다. 지민은 팔베개를 베고 누웠던 몸을 일으켜 새근거리며 자고 있는 정국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뚝한 콧날과 둥그런 코끝. 긴 속눈썹. 남자다운 턱선. 입술 아래 작은 점. 볼에 난 흉터. 그가 숨을 쉴 때마다 오르내리는 넓은 가슴에 자리 잡은 단단한 근육. 눈을 감아도 그릴 수 있을 만큼 선...
다다다다다다. 온다. 도도도도도도. "굥수야아아아아." 다다다다다다. "굥수야아아아아아." "왜." 끈질기게 쫓아오는 통에 지친 경수는 결국 도망가기를 멈추었다. "한입만." "시져. 니꺼 머거." "배켜니꺼 없떠." "왜 없떠." 백현이가 통통한 배를 팡팡 치면서 베시시 웃었다. "배켜니꺼는 여기 이또. 다 머거쩌. 그러니까 한입만." "시져!!!!!!!...
-천천히 가. 집에 갈때면, 아니면 학교에 갈 때면, 종종거리는 걸음으로 너는 나를 쫓아왔어. 나는 너보다 훨씬 빨리 컸었고, 너는 그땐 아직도 중학생 같았으니까. 그렇게 나는 너에게 종종 배려심 없이 굴었지. 그러니까, 사실은 모두에게는 매사 거칠게 굴었고, 그래도 너에게는 덜 거칠게 굴려고 노력하긴 했는데. -담배 또 피는 거야? 너는 뽀얀 얼굴로 눈썹...
작품 설명(해석) 원작이 여러 버전이 있는 만큼 주인공이 처음에 빨간구두를 접하게 되는 계기도 매우 다양한데, 그 중 공주가 행차하며 신고 있던 구두에 주인공이 눈독을 들이는 전개
동그란 머리통이 뻥 뚫린 창을 통해 햇빛을 받아 반질반질 빛났다. 단정한 머리 위에 한 두 가닥 삐쭉 솟은 새싹이 에어컨 바람에 나풀거리는 별거 아닌 게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이목구비 한쪽 안 보이는데도 숙인 고개 사이 볼록 튀어나온 하얀 볼살이 손가락으로 누르면 푹 들어갈 것처럼 부드러워 보이는.. 그런 것만으로도 알 수 있는 사람. 최수빈이다. 연준은...
차 안에서부터, 식당에서까지. 그리고 또, 밥을 다 먹은 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까지. 찬열은 평소와 달랐다. 보통의 퇴근길이었다면 잔잔하고 낮게 이어졌을 목소리가 아주 필요한 때에만 내뱉어졌고, 질릴 만큼이나 자주 마주치던 시선 역시 짧게 닿았다가 떨어지기만을 반복했다. 그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은 그를 전혀 모르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도 쉽게 알...
(@Ayin_033 송현님 커미션입니다.) [외관] 두상을 따라 차분히 내려앉은 머리카락은 선명한 붉은 빛을 띠었다. 햇빛이라고는 한 줌도 받아보지 못했을 법한 창백한 피부 위에서 그것은 더욱 선명한 빛을 발했다. 아래로 내려간 눈꼬리에, 눈웃음을 짓는 눈 안에 담긴 눈동자는 머리카락에 이어 햇빛을 담뿍 담은 듯 노란빛이었다. 하얀 도화지 위에 마구 그린 ...
- "멍! 멍!" "기다려 꾸꾸야! 같이 가야지!" 장마 시작이라더니. 빗방울은 커녕 땅속 수분까지도 다 증발시켜 버릴 듯 태양이 강하게 내리쬐는 뜨거운 여름이었다. 평소 땀을 잘 흘리지 않는 지민이지만, 방심한 사이 제 손에서 놓쳐버린 꾸꾸의 목줄을 쫓아 열심히 달렸더니 등에서 땀이 슬슬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산책 나올 때마다 항상 과하게 신이 나버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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