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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 꽃대가 올라온 화단에는 염치없이 뿌리를 걸친 민들레가 잔뜩 피어 있었다. 거름을 뿌려 시꺼매야 할 바닥이 노란 비단을 깐 것처럼 번쩍거렸다. 머리 위에서 따갑게 쏟아지는 햇빛이 더해져서 눈이 다 아플 지경이었다. 나비가 날아갔다. ‘흐.’ 승협은 눈이 부셔서 팔을 들어 햇빛을 가리면서도 얼굴 가득 슬금슬금 번지는 미소를 어쩌지는 못 했다. 옆에는 정신...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갈까 말까 고민했다. 하지만 도저히 이대로 지나칠 수 없음을, 정호는 밤을 새우며 깨달았다. 언젠가는 제가 부담스러워서, 싫어서 내치더라도 김솔을 도와줄 수 있는 일은 모두 해주고 싶었다. “대표님! 이게….” 벌컥 열리는 녹슨 초록색 대문 안에서 복숭아 같은 얼굴이 나타났다. 정호는 순간적으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떠야 했다. 막 자...
:: 오리모토 리카(祈本 里香) 귀하. 갑작스러운 편지라서 엄청 놀랐을까? 그래도 리카는 옛날부터 내가 적어온 편지는 누구보다도 아끼고 좋아했으니까, 괜찮을거라 생각해. ...사실은 그래줬으면 좋겠지만. 주술사들은 언제든 예상치 못한 죽음들과 마주해야 한다나 봐. 모처럼 고죠 선생님께서 드물게 조금 무거운 주제를 섬짓 꺼내신게 신기했지만. 아, 나도 주술사...
에필로그 벨벳 룸 꿈을 꿨다.. 파란색의 천체투영관.. 플라네타리움에 서있는 나는 한 가운데에 있는 거대 투영기 앞의 고급진 의자에 앉아있는... “벨벳 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고르를 다시 봤다. “후후후..! 멋졌습니다. 슈퍼전대와 같이 ‘장인’ 타노스를 무찌른 그 모습이 강렬했습니다.” “게다가 아카식 레코드들을 원래대로 되돌려냈고.” “이걸로...
※공포요소, 불쾌 주의※
동현에게 이 이전의 기억이 있었던 것 같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장준이 외출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동현이 없었을 때였다. 종종 장준이 없을 때 우유, 계란 같은 걸 사러 요 앞에 장을 보러 가기도 했는데, 먼 거리가 아니라 코 앞이었다. 그 외에는 뭐 드라이 맡긴 세탁물 찾아오는 것들, 다 오래 걸릴 일들이 아니어서 동현을 잠시 기다렸는데 동현은 한시간 ...
영훈 오빠는 나 무서워하며 품에서 날 빼내고 내 등 뒤에 큰 몸을 숨겼다. 두 사람은 말없이 우리를 바라만 봤는데 그 분위기와 고요함에 왠지 숨이 막히는 듯 했다. 그것도 잠시 금새 표정을 풀고 평소처럼 돌아온 두 사람에 영훈 오빠가 자리에 앉으며 큰 쇼핑백 하나를 올려놓았다. 이게 뭐예요? 하며 들여다본 쇼핑백 안에는 백화점에서나 팔법한 비싼 디저트류가 ...
창가 자리에 앉아 턱을 괴고 번화가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여자들이 무리지어 지나가기도 하고, 커플이 팔짱을 끼고 지나간다. 커플은 스스럼없이 많은 사람들 틈에서 당당하게 입을 맞추었다. 간간히 지나가며 쳐다보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남자는 여자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다정하게. 불현듯 박지민이 ...
해는 느리게 뜨고, 이르게 졌다. 가만히 책장을 넘기던 태주는, 이제 익숙하게 닿아오는 시선을 받아들였다. 차마, 여전히 무시가 되지 않는 그 시선은. 단 한 순간도 태주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저, 어디 안 갑니다. 무진은 그래, 라며 고개를 끄덕였으나, 무진의 귀에 태주의 말은 정말로 '들리기만' 한 것 같았다. 무진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태주를 바...
[1편] - 시발점 2025.10.25.(토) - 21:44 "시발...ㅇ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시발!!!" 어둑어둑한 저녁 시간대, 한적한 길가에 한 사람이 비틀거리며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나한테... ㄴ나한테 ㄱ그럴수가 있어!!!" "어... 저기요?" "하... 하하ㅏ하하!" "괜찮으세요..?" 한 사람이 헐떡이는 사람 아래의 검붉은 액체 덩어리를...
w. 바다, 앙키, 온, 일구이언, 핀 띵동, 맑고 경쾌한 벨소리가 락스 냄새 가득한 복도를 울린다. 현구는 괜한 뻘쭘함에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어제 옆집에 이사 왔는데, 엄마가 가져다 드리래요. 아니 이게 아닌데. 떡 좀 드실래요? 이것도 좀 아니고. 본가에서 꾸역꾸역 2시간 거리의 고등학교를 통학하던 현구는 새 학년에 들어서며 자취를 시작했다. 공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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