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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성훈아 문 좀 열어봐! 내가 잘못했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잖아. 됐어!" 1시간, 내가 저 문을 째려보고 있는 것도 벌써 1시간 째다. 저 문 너머에는 내가 누구보다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만 지금 순간만큼은 세상 밉다. 시간을 확인하려 핸드폰 화면을 보았다가 같이 보이는 날짜에 기분이 확 나빠져 다시 엎어놓았다. "일단 얼굴 보고 이야기하자. ...
지원은 한참 성훈의 등을 두드려주다 품에서 조심스럽게 놓고 성훈을 봤다. 성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지원을 하염없이 봤다. 어렸을 적 아무 것도 모를 때 했던 착각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냥 이렇게 도망가지 않고, 밀어 내지도 않은 채 가까이에서 자신을 바라봐주는 지원을 바라보고 있는 이 순간이 행복했다. 형, 나는 그냥 이거면 되는 거였는데… 그랬는데...
무료하게 흘러가던 하와이의 어느날 지원이 성훈에게 처음 친구사이가 되자고 손을 내밀었을 때, 누가 먼저라고 할 필요도 없이 둘은 금세 가까워졌다. 지원에게 성훈은 하와이 그 자체였고, 음악이었다. 눈떠서부터 눈감을 때까지 항상 성훈과 함께였고, 새차를 사서 함께 드라이브를 가던 순간, 와이키키 비치의 분홍빛 노을을 보던 시간, 고픈배를 움켜쥐고 크리스마스의...
훈세자는 제멋대로 어린 아이처럼 굴었다. 누가 봐도 한 나라의 왕위를 이어받을 세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왕실의 법도에 따라 세자수업을 착실히 받아 왕위에 올라야 할 세자이지만, 왕위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음악과 쾌락에 빠져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훈세자가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훈세자의 탄생은 온 나라의 축복이었다. 아름다운 미모에 우아한 자태의 중...
"어디 사니?" 사소한 한마디로 시작된 둘의 첫만남. 한국에서 지독한 사춘기를 보내던 중 자의반 타의반으로 하와이로 추방(?) 당한 지원이 누나 집에서 하루하루 답답한 나날을 보내며 하와이가 슬슬 지겨워지던 즈음에, 동그란 머리통에 커다란 눈이 인상적인 못보던 동양인 꼬맹이가 눈에 들어왔다. "쟤도 한국인이라는데?" 지원이 한국인임을 알고있던클래스메이트가 ...
목이 너무 말라 눈을 떴다. 눈을 떴지만 방안이 너무 어두워 어딘지 파악하는 데 한참이나 걸렸다. 침대 옆을 더듬다가 조명등을 터치하자 은은한 조명이 켜졌다. 눈이 부셔 잠시 눈을 찌푸렸다가 손등으로 눈을 비벼 억지로 눈을 떴다. 성훈의 방이었다. 지원은 어떻게 된 건지 기억을 더듬었다. 아…. 성훈이랑 술 마시다가 뻗어버렸구나… 언제 왔는지 모르겠지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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삑삑삑삑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와 함께 철컥하며 현관문이 열렸다. 성훈은 그 소리가 들리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모자만 쓰고 급하게 온 듯한 수원의 얼굴이 보였다. 순간 안도감을 느꼈다. 늘 이럴 때만 부르는 내 친구. 툴툴대지만 늘 너는 아무 이유도 묻지 않고, 나를 찾아와줬지. 구치소에서 나오던 그날까지도. 넌 내가 힘들 때 항상 함께 였었다. 네가 ...
소주를 두 병쯤 마셨다. 정신을 차려보니 식탁 앞이었고, 식탁에는 식어버린 라면 국물이 담긴 냄비와 소주병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반쯤 풀린 눈을 억지로 부릅떠서 초점을 맞춰보니 성훈의 앞에 익숙한 정수리가 보인다. 오른손을 뻗어 그 정수리에 손을 올려보았다. 손길이 닿자, 으음 이란 소리를 내며 한 번 미세하게 위치를 바꿔 엎드린다. 성훈은 잠깐 손을 ...
그늘진 평상에 미동도 없이 앉아 있으니 구슬땀이 조금씩 마르는 듯했다. 온몸이 눅진했지만 곁을 쓸고 지나가는 간들바람에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부근엔 천리향이 퍼트리는 달큰한 향이 넘실거렸다. 유난히 맑게 갠 하늘에 성훈은 한 순간 넋을 빼앗겼다. 누군가의 깊고 진한 눈동자 같아서. 어깨를 툭툭 치는 느낌에 돌아보니,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수원이 진홍색 주...
"같이 갈래..?" "같이..? 가도 돼?" "어 가자" 성훈은 지원의 제안을 몇 번이고 확인했다. 10년 넘게 연예계를 떠나있었던 성훈은 다른 연예인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한다는 게 너무 어색했고 힘들었다. 어렸을 때는 이렇게까지 낯을 가리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인맥을 크게 넓히고 싶지도, 새로운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말을 많이 하고 싶지도 않았다...
오래 신어 길들여졌던 구두가 왜인지 생경했다. 아스팔트를 디디는 느낌이 익숙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집에 들어와 살펴보니 뒷굽이 새로 갈아 끼워져 있었다. 어젯밤 술에 취해 들어와 기절하듯 잠자리에 든 뒤, 오늘 아침엔 출근시간에 쫓겨나듯 집을 나섰다. 내내 일에 시달리다 보니 퇴근길이 되어서야 그것을 눈치 챈 지원이었다. 언제 또 다녀간 것인지 어질러져 ...
하늘이 노하기라도 한 듯이 하루종일 세차게 비가 내리고, 천둥 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조금만 나가 있어도 흠뻑 젖을 정도로 내리는 비 탓에 거리는 온통 한산했지만 딱 한 곳, 명월관만은 기녀들과 이름 좀 내노라하는 이들로 온통 붐볐다. 경성에 머물러 있는 유명인사들이 모두 명월관으로 온 듯 보일 정도였다. "도련님, 연홍이가 비단이 사라졌다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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