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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착지할 만한 높이는 아니었다. 발목이 시큰거렸다. 몸의 감각을 해석하는 데 쓰일 시간도, 여유도 없다. 저릿한 아픔을 애써 무시하고 오랜 기다려온 모든 걸 쏟아냈다. 십년을 묵힌 구더기를 꺼내는 일은 절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기회가 오니 잘도 퍼부을 수 있었다. 황도진을 원수로 알고 헛짓거리를 했던 그 날보다 훨씬 더 절실했다. 이렇게 억울하고 ...
“널 보면…… 아주 진절머리가 나.” 차가운 바닥에 널브러져 올려다본 모습은 익히 알던 그와는 달랐다. 주머니 깊이 꽂은 두 손은 꼼짝하지 않고 입으로 명령하며 눈으론 몸을 묶어버리는 사람. 언제나 날카롭게 쏘아보며 끝없이 의심하고, 몇 수는 더 멀리 보자던 이가 배신감에 몸서리친다. 항시 바삐 움직이던 저 머릿속이 제 이름으로 한껏 어질러져 있을 걸 생각...
“너 비행기 타봤냐.” 김성식은 언제든 아무렇게나 말을 걸었다. 소파가 푹 꺼지는 소리가 났다. 김성식이 반대로 꼬았던 다리를 바꿔 앉아 한층 가벼운 투로 묻는다. 방금 말 안 듣는 조무래기 하나 털고 온 손에는 라이터가 몇 차례 굴려지고 있었다. “저번에 허탕 친 거래 때문에 협상이 좀 필요해졌어. 땅덩어리 믿고 뻗대는 걸 겨우 달래야 쓰겠더라고.” 중국...
포스트휴먼, 곰아내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저자가 ‘작자미상’이라면, 한국 연극사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처(妻)’일 것이다. 희곡의 등장인물란에 ‘누구의 처’ 또는 그냥 ‘처’라고만 쓰여 있는 존재들, 고유명을 가진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해온 어떤 여성들 말이다. 연극의 세계에도 대나무숲이 있다면 익명의 처들이 발화하는 모호한 소리들이...
몸이안좋아서 횡설수설 휴일은 달콤하고 휴식은 평화로웠다. 나는 비번이었고 은창은 무료했다. 성일 꽃집은 매주 일요일이 되면 문을 닫았다. 때 마침 냉장고가 텅텅 비었고, 때 마침 드라이브를 가고 싶어 하는 은창.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소파에서 떠나고 싶지 않았다. 금쪽같은 휴일. 삼일 밤낮을 철야로 문지방도 밟지 못하고 사무실에서 잠을 청했다. 조금은, ...
유상일언급있음(죽었음) / 언제나 욕설은 시도때도 없이 술잔이 비워진다. 맞은 편 소파에 앉은 사람의 기척은 남아있지 않았다. 허나 분명히 앉아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앉혀 놓은 것이다. 피부 아래는 아직 따뜻하다. 미동조차 없는 속눈썹. 나를 자상하게 내려다보던 그윽한 눈. 날 선 콧날. 혀끝에서 구르던 달콤한 감언이설. 형식적인 짓거리라는 건 진즉에 ...
내 나이 서른 넷, 문득 즐거운 일만 생각하기엔 너무 현실을 사는 게 아닌가 싶었다.
욕설, 학교폭력워딩 생활 반경이 넓어진다고 표현하기엔 애완동물 같았고, 영역을 넓혔다고 말하기엔 야생동물 같았다. 집, 가게, 집, 가게, 가게 뒷골목. 하나 정도는 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봐야 단지 걸어서 오 분 거리에 있는 편의점에 가는 것뿐이었다. 성식이 야근으로 새벽 늦게 돌아오는 날이었다. 달은 밝았고 밤공기가 쌀쌀했지만 그의 체취가 묻은...
새로 단 간판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꽃집에 대한 소문이 파다했다. 젊은 남자가 차린 가게치곤 번듯한 꽃집에 반가움을 담은 말들은 그친지 오래였다. 소문의 발단은, 목욕탕에서부터 시작했다. 은창은 결벽이 있었다. 그래서 밤늦은 시간, 하필 공중목욕탕에 간 것이 화근이었다. 하필 그 시간을 애용하는 다른 손님이 있었다. 그 손님이 하필, 하필이면, 꽃집 ...
2번째허물 간접적인 자살 묘사 “선진 꽃집.” “안 돼.” “그럼 성식 꽃집.” “그것도 안 돼.” “...” “정은창 꽃집?” “장난 하냐? 정은창 여기 있어요. 자랑을 해라 아주.” “염병..” 그는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는다. 삐죽 튀어나온 머리카락이 부슬거린다. 이불 속 먹먹한 중얼거림. 허공을 향한 발길질이 두어 번. 그러다 휙 뒤집히는 이불보. “...
욕설워딩, 약물소재 0번째 허물 남자는 두어 번 움찔거리다, 한기에 절로 떠지는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찌뿌둥한 몸 여기저기 관절 소리를 내며 일으킨다. 고요한 방. 노곤한 향기. 따뜻하고 노란 햇살이 창문을 타고 가볍게 내려앉는다. 남자가 이불을 걷자 드러난 맨 몸에 닭살이 돋았다. 동물처럼 부르르 떨었다. 이불을 옷 삼아 둘둘 만 남자가 몸을 아...
깡김x중딩정입니다 챕터1까진 미리 보실 수 있습니다. 01 “야, 성식아. 니가 내 밑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됐냐?“ 김성식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사무실의 푹신한 소파에 몸을 맡긴 그를 바라보았다. 머릿속으로 손가락을 네다섯 개 정도 접어 횟수를 세었다. 아무래도 한 손으론 모자란 모양이었다. 잠시 머뭇거리자 도진은 제 앞에 성의 없이 무언갈 툭 던져 놓는다...
교복도 입지 않은 어릴 때의 이야기였다. 초등학교 5학년, 식판을 바닥까지 긁어 밥을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우고 부랴부랴 뛰쳐나간 운동장에서 불행히도 발 바깥쪽에 맞은 공이 잘못 튀어 올라 땡볕 아래에서 머리 위로 넘어가는 공을 쫓는 순간에 성식의 눈엔 두 개의 공이 아른거렸다. 그림자 하나 없는 곳에서 일렁이는 태양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태양에 질식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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