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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시작된 지도 열다섯 해였다. 사람들이 많은 것에 익숙해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누군가의 빈자리와 하나둘 배급제로 전환되는 물품들, 창마다 두터운 커튼이 내려오고 해가 진 뒤의 통행이 금지되는 모든 상황에 사람들은 불평했지만 금세 익숙해졌다. 도시에서 한참 떨어진 어촌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배급표의 수는 매달 줄었고 배급품의 품질도 계속 나빠지기...
엘더 로제. 엘더는 로제의 성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그의 의지가 아니었고, 하물며 그의 바람도 아니었다. 그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탑에 갇혀 살아도, 자신의 하나뿐인 가족과 함께라면 그래도 좋았던 평범한 소년. 그가 평범하지 않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3년 전의 일이었다. 엘더는 그 일을 살면서 가장 최악의 사건이었다고 생각했다. 모...
캄캄한 밤에는 코끝조차 제대로 보이질 않았는데 너는 한 번도 길을 헤매거나 발을 헛디디는 일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두껍게 얼어붙은 얼음을 깨뜨리고 헤쳐 나아가는 쇄빙선 같은 고요함이다. 멀리서 얼음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봐, 별 우는 소리가 들려. 밤새 우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너는 별이 운다고 했다. 노인은 혀를 찼다. 노인은 밤새 우는 소리는 저승...
처음부터 그렇게 되도록 결정된 일들이 있다. 그런 일의 예감은 아주 사소한 데서 찾아온다. 그날 아침에 토스트를 태웠다든지, 나서기 전 단단하게 묶었던 신발끈이 어느샌가 풀려 있었다든지, 그래서 타야할 버스를 놓치고 지각했다든지 하는 일들. 그래서 불행의 절정에 섰을 때, 그런 생각을 하는 거다. 아침에 버스를 탔다면, 신발끈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면, 토...
산 자는 닿을 수 없는 저편, 투명하고 차가운 벽의 너머에 너는 있다. 너를 처음 보았을 때 드디어 미친 거라고 생각했다. 홀로 끌어안고 감당해야 할 과거와 그리움과 애욕이 그렇게나 무거웠다. 닿을 수 없는 너를 이렇게라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어느 날은 감사했고 어느 날은 저주했다. 결코 닿지 못할 너는 무참히도 아름다웠다. 나는 오래도록 눈을 뗄 수 없...
당신 예 첨 오든 날에도 아카시아가 그래 폈제. 쌔고 쌘 나무 중에 왜 아카시아냐고 하든 거, 내 다 들었소. 그래 말하믄서 눈이 벌개져선, 참. 내 그래 누웠을 때두 병원엔 코빼기도 안 비치던 양반이 울기는 와 우나.근데 당신, 건 모르제? 내두 다아 들었소. 아침마다 내한테 말 걸어주고 약도 챙겨주고, 화병에 꽃도 갈아주고 하던 아가씨가 카드라. 내 자...
작품 설명(해석) 원작이 여러 버전이 있는 만큼 주인공이 처음에 빨간구두를 접하게 되는 계기도 매우 다양한데, 그 중 공주가 행차하며 신고 있던 구두에 주인공이 눈독을 들이는 전개
원작을 당시 한소장님 취임까지만 읽은 상태라 정말 한참 전 과거 기억에 의존, 웹스급 9화까지 본 상태로 쓰는 한유현 생일 축하 기념글. 데못죽 차유진이 크오로 등장합니다. 모두의 아픈 손가락인 회귀 전 한형제가 행복하길 바라며 썼지만 무지로 인한 설정오류가 더 있을 수 있음 내가 모를 수도 떠올리지 못했을 수도 내가 감히 내가 또 잘못을. 그저 적폐인 글...
"왜... 왜," 그런 표정인 거야.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 아니었어? "...허억"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 순간의 꿈을 꾸었다. 내가... 죽었던 날. 고개를 돌리면 거울 속 숨을 몰아쉬는 7살 아이가 있다. 내 어릴 적 모습이다. 그래, 나는 죽었다 깨어나보니 7살이 되어있었다. 미친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도 믿기지 않지만, 어쨌든 사...
*키워드는 겨울, 뜨개질, 그리고 눈. 보기 드문 포근포근한 일상 이야기. *썸네일은 무료 이미지를 사용했습니다(댓글 링크 참고) 이가라시네 장남, 이가라시 잇키는 집 앞에 소복하게 쌓인 눈을 치우고 있었다. 올해 다시 돌아온 겨울의 첫눈이었다. 밤새 한참 내렸는지 거리는 대부분이 눈에 파묻혀 있었다. 이른 시간이면서 주말이기에 지나가는 사람도 하나 없었다...
아슬란이 태어났을 때 일을 보다 자세히 알게 된 것은 내무보안국을 손에 넣은 이후였다. 그 조직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깨닫고 나서 멜키오르는 수전노가 돈을 모으듯이 정보를 모았다. 작은 것이거나 큰 것이거나, 중요한 것이거나 하찮은 것이거나 가리지 않았다. 그렇게 하고도 매번 놓치는 것이 있었으나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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