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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엔은 사내의 눈치를 보며 주머니의 수첩을 확인했다. 스틸라움에 면접 갈 때 루델에게 선물 받은 작은 수첩. 시엔은 임무에 필요하리라 생각한 다양한 마법진을 그 수첩에 그려놓았다. 그리고 지금이 그 마법 중 하나를 사용할 때였다. "바람이여, 나의 몸을 그대에게 맡긴다.“ 시엔의 주머니에서부터 일어난 바람이 주변의 모래를 끌어들여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사내의...
이상하지. 이럴 리가 없는데. 본질을 꿰뚫어 보는 마녀의 눈을 가진 하이레인이 이럴 리가 없는데 상사병이 걸려도 이런 식으로 걸릴 수 있을까. 하이레인의 눈앞에 유안이 아른거렸다. 2년의 공백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유안은 많은 시간을 이 모래성에서 보냈다. 그것도 하이레인과 같이. 그 말인즉슨 하이레인이 유안과 함께 모래성에서 ...
바람이 지나간 뒤,그곳엔 먼지만이 자욱하게 남아있었다 * 보름달이 환하게 뜬 날이었다. 또한 환한 달빛에 별조차 찾기 힘든 밤이었다. 그 밝고 은은하게 떨어지는 달빛 아래 선 그녀의 머리칼은 별보다 반짝였고 희고 투명한 피부는 살짝 드리워진 나무의 그림자로는 가려지지 않았다. 짙고 깊은 밤 하늘이 담긴 그녀의 눈동자는 참으로 오묘한 색으로, 늘 보는 이의...
부여된 시간은 불가항력적이다. 그 안에서 구색을 갖추는 삶의 수레 또한 시간을 원동력으로 삼으며 부지런히 굴러간다. 그 삶을 둘러싼 껍데기가 어떠한 모양을 하고 있든, 가끔은 그게 한없이 볼품 없고 가여운 형태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오늘도 감히 누군가에겐 소외당하는 그곳에서도 낭만은 피어나고 있었다. 단델리온 로맨스 흔히 말하...
#34. W. Serendipity. "제가 전하께 한 번 넌지시 물어볼까요?" "아니다, 때가 되면 환이도 우리 사이를 알게 될 것이고 그럼 허락해주겠지." 한성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성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라버니께서는 내 연인이 한성이라는 것을 알게된다면 어떤 반응일까... 역정을 내실까... 이런저런 생각하는 나의 시야...
앞선 글에 인프피의 가식에 대해서 좀 다뤘는데, 갑자기 “착하지 않은 인프피, 가식적 인프피”에 꽂혀서 돌아옴. 저번 글에 뭔가 인프피 관련 생산적인 글을 들고 온다고 했으나, 갑
Ⅷ. 봄의 양면성 “봄은 왜 매년 돌아올 때마다 사람 마음을 이리 혼몽하게 만드는 건지, 집시 청년, 제가 봄을 좋아한다고 말했었죠, 정확히는 초봄을 참 좋아한답니다. 봄 안에 존재하는 겨울 한 자락이, 마치 겨울을 놓아주지 못한 봄이 짝사랑하는 것 같다고 생각해서요. 너무 제멋대로의 상상이죠? 참지 않고 웃으셔도 괜찮답니다.” “아닙니다, 제가 웃은 이유...
『 당신의 세계엔 수많은 이들이 있겠지만 』 『 나에겐 당신이 내 하나뿐인 세계에요. 』 어렸을 때 꿨던 꿈이 하나 있다. 꿈에서는 토종 한국인답게 검고 긴 생머리에 검은 눈을 가진 작은 여자아이가 나왔었다. 별로 관리하진 않은 듯 푸석푸석했고 얼굴도 그다지 예쁜 아이는 아니었지만 눈, 아이의 눈만은 밝게 빛났다. 어쨌든 나는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에밀리 하퍼 리가 하스 포뮬러 원 팀의 프린시펄—그래, 우리 모두가 아는 그 남자. 악명 높은 귄터 스테이너 말이다—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은 2020년 9월의 어느 날이었다. 에밀리는 그날을 선명하게 기억했다. 런던의 많은 날들이 그러하듯이 하늘이 흐렸다.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만 같았고, 언제 나쁜 소식이 날아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모르는 번...
평범한 이름 세 글자를 알리려면 얼마나 평범하지 않게 살아야 하는지 알아? 우풍이 심하게 방으로 새어들어오는 탓에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쓰고 라면 부스러기를 손 끝으로 꾹꾹 눌러 집어서 입안에 밀어 넣으며 그렇게 말을 했다. 이따금씩 지직거리는 소리가 나는 오래된 텔레비전은 어디선가 버려진 것을 주워서 들고온 것 같았다. 화면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때...
영녕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서운은 그것이 목숨을 다해 서로의 목적을 같이하는, 삶을 함께하는 약속이라고 요약했지만 영녕은 그렇게만 생각할 수 없었다. 수호의 약속이든 목숨의 약속이든 화인은 상당히 일방적인 형태를 띠고 있었다. 이를테면 수호의 화인을 맺은 두 사람의 신변에 각각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서운은 일영을 따라 숨을 거두게 되지만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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