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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앤 님, 사주보는 라뽀 님
연주가 끝난다. 연습실 안쪽에 가장 낮은 음들만 천천히 고여 흐르다 멈춘다. 가만히 연주를 떠올린다. “…한 번 말씀 드려봐야지.” 연습곡 연주를 끝마친 나는 혼잣말을 하고선 친구들보다 먼저 조금 의아해한다. 함께 연주를 해본 적이 없어서 그랬을까. “같이~?” 앞자리에 있던 모카가 되물을 정도로 컸던 속마음의 크기. 나에게도 조금 당황스러워 마지않을 일이...
“그 날 밤 말이야.” 소파의 중앙에서 대본을 읽고 있던 치사토가 돌연 운을 떼었다. 카오루는 한 뼘 정도 떨어져 앉아있었고 치사토는 고개는 그대로 둔 채 눈만을 굴려 그를 바라보았다. 마치 말의 뒤를 재촉하는 듯한 눈빛으로. 카오루는 이 뜻을 알고 있었다. 그는 소파 위 거리를 좁혀 치사토의 옆으로 가까이 붙는다. 그래, 다음 대사는. “그 날 밤?” “...
“있지, 사요.” “네.” 리사의 나지막한 부름에도 사요는 손에 든 크레이프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건성으로 답했다. 야외 테라스의 햇빛 때문인지 어떻게 먹어야 할까 하는 고민 때문인지 인중이 구겨져 있는 사요를 보고 있자니, 리사는 괜히 웃음이 났다. “저 부르지 않았나요?” “응? 아, 뭐 물어볼 게 있어서.” 사요는 의외로 여러 가지를 한 번에 해낼 수 ...
지휘실 내부는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비해 너무나 조용했다. 일제히 서서 초조하게 보고를 기다리는 부관들과는 달리 오로지 유키나만이 의자에 의연히 앉아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유키나의 자리에서 가장 먼 문에서 노크소리가 들리더니, 익숙한 부하들 사이에 그렇게나 보고 싶었던 얼굴이 끼어 있었다. “소장님, 석양대대-” “보고는 됐어.” 굳이 신원보...
오늘은 굉장히 이상한 날이었다. 아니, 고등학교를 올라와서 지금까지 지내 온 날들을 비교해보면 그렇게 이상하지도 않으려나. 그래도 코코로를 만나기 전의 십여년의 평생과 코코로를 만나고 일년 남짓한 순간을 통틀어도 오늘은 역시 위화감이 있었다. 정확히는 어제부터였을까. 평소라면 탈을 벗고 있는 미-군에게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코코였지만- “미-군! 우리...
“있잖아, 사요.” “네.” 리사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사요는 차례대로 옷을 꿰어가며 건조하게 답했다. 언제나처럼, 리사는 침대에 엎드려 누워있는 채로. 그리고 사요는 등을 돌린 채로. 방금 전까지 서로 껴안거나, 쓰다듬거나, 숨을 섞거나 하는 일은 모두 없었던 일로 하듯이. “왜 이름으로 불러주지 않는 거야?” “이마이씨, 계약 위반인 거 알고 계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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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모에, 이거 어때?” 부끄럽게도 히마리는 속옷 세트를 토모에의 눈 앞에 들이밀고 있었다. “귀, 귀엽네.” “정말이지 진지하게 골라달라고!” 히마리는 뭔가 불만인지 볼을 부풀리고 있었지만, 정말로 삐죽대고 싶은 건 토모에였다. 선물을 사주고 싶다는 말에 선약도 취소하고 왔건만, 콧노래까지 부르며 자기 속옷을 고르는 히마리를 보고 있자니 아무리 토모에라도...
“여기 좀 어렵네~” 둘 밖에 남지 않은 스튜디오 안에서, 기타의 울림에 리사의 목소리가 섞여들었다. “미안, 사요. 연습중이었는데 이상한 소리 내서.” 끊겨버린 선율에 리사가 사과해버린다. “아뇨. 괜찮습니다. 저도 마침 잘 안되던 부분이었으니까.” 하지만 사요의 말에는 아무런 감정이 섞여 있지 않았다. “사요도 안 되는 부분이 있구나.” “저도 사람이니...
이제 정말 끝났네. 조금 전까지 만해도 라이브의 열기로 가득했던 스테이지. 손님들은 열기를 가라앉히지 못한 채 돌아갔고, 멤버들 역시 평소보다 들뜬 채 남은 뒷정리를 하겠다며 분주하게 움직이더니 스테이지를 나간 건지 더이상 어떠한 소리도 들여오지 않았다. 조금 진정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몇 곡이나 불렀는지조차 모르겠고, 리스트에 적혀 있던 것 마저도 이제는 ...
그러고보면 슬슬 꽃이 필때가 되었네. 아니, 이미 피어있던가. 최근이라고 하기 뭐하지만 항상 곁에 너무도 화사한 꽃을 두다 보니 늘 지나는 거리에 성큼 다가온 봄을 알리기라도 하듯 매년 아름답게 흐드러지던 꽃이 피었는지 혹은 그렇지 않았는지 기억은 커녕 보았는지 조차 잘 모르게 되어버린 것 같아.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추웠다고 생각하는...
시라사기 치사토는 가끔 궁금할 때가 있었다. 무대 위의 마루야마 아야는 어떻게 보일까. 곁눈이 아난 두 눈으로 바로 보는 모든 것은. 수없이 연습실 거울 너머로 보았지만 그건 의상도 스포트라이트가 없는 광경, 스테이지에서 보는 건 멀찍이서 바라보는 옆모습. 아야가 정말로 빛나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공연장에서, 인터넷 여기저기서 아야의...
애초부터 사람을 사귀는 데에는 소질이 없었다. 그건 아마도 독선적인 성격 탓이겠지. 그녀의 결점에 대해서는 그녀 스스로도 충분히 인정하고 있었다. 고쳐야 할 부분이라는 것도 알았다. 피하기만 해서는, 안되겠지. 그것을 자꾸 되뇌이게 되는 것은 어쨌거나 자꾸 피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피하다니, 무엇을? 그거야 당연히…. "…히나." 즐거워보이네, 역시.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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