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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자신도 잠들어 있었는지, 재석은 다희에게 흔들려 눈을 떴다. "재석씨, 미안. 잠시 눈을 붙일 생각이었는데…." 시계 바늘은 자정을 조금 넘어 있었다. "지금 돌아갈게. 오늘은 정말 맛있었어. 고마워." "아니요…." 헤어져 버리는 것이 싫다고 생각했다. "자고 가셔도 괜찮습니다." 떨어지고 싶지 않으니까 무의식중에 그런, 자신으로써는 대담한 말이...
3월로 접어든지 벌써 1주일이 지나려 하고 있었다. 외근을 돌다 보면, 봄방학도 아닌데 학생 같아 보이는 젊은이가 평소보다 많이 거리에 모여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낮은 따뜻하지만, 해가 저물게 되면 찬 바람이 불어대, 겨울의 여운을 느껴버린다. '벌써 3월이니 필요없겠지' 하며 장갑을 집에 두고 와버린 것을 후회하면서, 코트에 손끝을 찔러넣은채 가방을 ...
송다희는 평소대로의 시각에 아파트를 나와, 8시반 전에 회사에 도착했다. 영업부 사무실에 들어가서, 자신의 옆자리가 공백인 것에 처음으로 위화감을 느꼈다. 옆자리의 동료는, 언제나 8시 지나서 출근해, 컴퓨터로 그 자신이 담당한 회사의 동향을 체크하고 있을…터였다. 윤재석은 오늘부터 총무부를 도우러 가고 없음을 떠올린다. 송다희는, 그 무뚝뚝한 얼굴이 없으...
내 등에는 날개가 있다. 컴퓨터 모니터의 화면을 너무 오래 바라보고 있던 탓인가, 눈 속이 꺼끌하니 무겁고 뻑뻑했다. 기분 탓인지 어깨도 쑤신 것 같아, 다희는 의자 등받이에 체중을 싣고 기지개를 켰다. 등뒤에 있는 벽시계가 오후 7시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좀 더 일을 처리해 버리고 싶었지만, 바쁜 연말연시의 시기를 빼고 잔업은 하지 않도록 하는게...
시선을 느끼고 돌아보면 반드시 그곳엔 박지연의 모습이 있었다. 재석과 눈길이 마주치면 그녀는 생긋 미소를 지었다. 뭔가 용건이 있는 건가 생각하기도 했었지만, 회식자리에서 그런 일이 있는 뒤이니 만큼 섣불리 관여하고 싶지 않아서 재석은 슬며시 무시하고 있었다. 시계 바늘이 12의 숫자에 겹치기가 무섭게, 박지연이 생글거리면서 다가왔다,. “좋은 거 보여 줄...
잠시 후 무릎 위의 머리가 꼼지락거리는 기척이 나서 치워주려나 싶어 쳐다보니, 재석이 머리를 위로 향하고 다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단정한 얼굴에 시원스러운 눈매, 전근 온 처음 무렵, 여자애들이 시끄럽게 법석을 떨고 있던 이유를 새삼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재석이 입을 다문채 다희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의 노려보는 눈초리가 아니라...
대체 중세 맥주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그날 외근이 끝나고 곧장 귀가하겠다는 전화를 한 뒤, 회사에 들르지 않고 퇴근했다. 송다희의 얼굴이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집에서 혼자가 된 순간, 김지훈의 얘기와 낮의 송다희에 대한 자신의 언동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화를 걸어 ‘아까 낮에 죄송했습니다’하고 사과할 수도 없었다. 또 전화를 했다가, 괜히 긴장해서 자신도 모르게 삐딱한...
11월 중순, 퇴직한 사람 대신 타부서에서 새로 사람이 배치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다희는 내심 뛸 듯이 기뻤다. 다희는 영업부 일을 모두 한 차례씩은 해냈고, 부서 내에서도 교육계적인 입장에 있기 때문에, 신입이 오면 사무직이든 뭐든 익숙해질 때까지 2~3개월은 같이 행동했다. 이번에도 분명 그렇게 될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 돌아이 문제아 ‘윤재석’에게...
일요일, 역 앞에서 조금 서쪽으로 들어간 뒷골목에 있는 오픈 카페는 20대 전반의 젊은 커플들로 붐비고 있었다. 음력 10월의 따뜻한 날씨, 밖에서 차를 마시기에는 절호의 오후, 재석과 현경은 나무 그늘 구석 자리엔 앉아 길 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흑백색 바둑판 무늬의 인도, 그리고 맞은편 벽돌집 가게 벽에는 담쟁이 덩굴이 휘감겨 있었다. ...
송다희는 볕이 드는 사무실 한켠에서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10월도 다 지나가서 햇살은 그리 강하지 않은데, 움켜진 손바닥은 땀으로 흥건했다. 주위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무관심한 듯 이쪽을 살피고 있는 기색도 견딜 수 없이 거북했다. “이번 일은 정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윤재석씨는 이 쪽 부서로 배속된 지 며칠 되지 않아, 아직 유통 ...
처음으로 구경한 송다희의 방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여러 가지가 넘쳐나고 있었다. 「지저분하지? 짐이 좀 많아서」 재석이 방에 들어오기 전에, 다희는 몇 번이나 ‘방이 무지 지저분해’라는 말을 했다. 그러고 들어온 송다희의 방은, 그렇게 산만하진 않았지만, 잡다한 물건들이 많이 있었다. 「일단 잘 버리질 않는 성격이라서」 뭔가 신기해 하는 재석의 시선에,...
「바빠?」 그리 물었다. 가게에 들어와 제일 첫마디. 전국 체인인 술집의 구석 자리. 적당히 안주거리를 주문하고, 물을 한모금 마신 다음 송다희가 그렇게 물었다. 「이벤트가 있다보니, 조금씩 어수선해지고 있습니다」 흐응 하고 중얼거리며, 송다희는 다리를 내렸다. 「아까 그 여자분은, 이름이 뭐야?」 블라우스 윗단추를 손가락으로 풀러, 목부분을 느슨하게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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