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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은 학교 도서관 앞에서 공책을 줍는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깨끗한 붉은색의 양장 노트. 이름도 적혀 있지 않고, 아무런 문구도 없다. 마치 수작업으로 갓 만든 것처럼. 율은 공책의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 그래서 갖기로 한다. 어차피 주인을 찾아주고 싶어도 이름이 없어서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다. 마침 일기장을 새로 사고자 했던 율은 잘됐다고 생각하...
사진 속 열아홉의 후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교복을 입고 벚꽃을 보러 가서 내가 찍어준 사진이었다. 봄처럼 환하고 따뜻한 미소를 가진 후는 차디찬 겨울에 떠났다. 이제는 화가 나기보다는 나는 영영 모를 후만의 고통이 있었겠지, 생각한다. 나는 후의 사진을 한참 바라보다가 흐르는 눈물을 바람에 말리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바람이 날카롭게 뺨을 스쳤다....
현은 운동장을 달릴 때 이는 모래 먼지가 발바닥의 땀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누구보다 일찍 등교해 아침마다 운동장을 다섯 바퀴씩 도는 현에게는 전날의 흔적을 털어버리려 한 흔적이었다. 운동장 한쪽을 채우고 있는 스탠드에 앉아 물을 마시고는 자신이 달렸던 트랙을 유심히 보았다. 하얗게 그어진 선이 없어도 일정한 트랙을 달리는 자신의 발은 누가 훈련시켰을까. 현...
투두둑, 하고 내리는 비는 한없이 투명하다가도, 우산 위에선 무지개로 변한다. 뜨거 울 것 같은 빨강이었다가 온도가 뚝뚝 떨어지고, 마지막엔 독에 물든 것 같은 보라가 된다. 그러다가 우산 끝에서는 다시 모든 것을 빼앗긴 투명이 되어 온기를 잃고 바닥으 로 떨어진다. 나는 빗속을 뚫고 집으로 돌아왔다. 알록달록하게 젖은 우산을 현관에 아무렇게나 던 져놓고 ...
나무 속의 우울 커다란 나무 아래 단은 편지를 읽고 있다. 단이 졸업한 초등학교 앞에 있는 나무를 타고 조금만 올라가면 손을 넣을 수 있는 구멍이 있는데, 단과 후는 그것을 우체통처럼 사용했다. 아무도 둘의 편지를 훔쳐볼 수 없다는 점에서 그곳은 최적의 비밀 우체통이었다. 다람쥐나 청설모가 왔다 갈지는 모르겠지만. 단과 후는 초등학교 때 단짝이었는데 다른 ...
허공의 발 허공에 떠 있는 우리의 발, 저 밑이 어딘지도 모르고 내밀고 있던 우리의 발이 하늘이 아닌 땅을 밟았음을 나는 그 사진을 보고 나서야 실감할 수 있었다. 그 사진을 발견한 것은 이사하던 날 소파를 들어냈을 때였다. 언젠가 핸드폰의 사진을 모조리 인화한 적이 있는데, 이건 존재의 유무도 모르고 있었다. 딱 한 번 만난 이름 모를 너와 나란히 옥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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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조명 아래 오색 반짝이가 유영하는 푸른빛의 물이 고여있었다.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수면에 발이 닿자 물의 웅얼거림이 시작되었다. 조용한 가운데 카메라의 셔터 소리와 물이 욕조 벽면에 부딪히는 소리만이 울렸다. 단은 숨소리조차 아깝다는 듯이 숨을 죽인 채 고요하게 욕조에 나체의 몸을 담갔다. 차분해진 분위기 속에 오직 현만이 조바심이 났다. 혹여나 열심...
‘지나가는 조연’ 님이 게시글을 등록하였습니다. ‘지나가는 조연’ - 소현 고등학교 학생들만 모여라 12분 전 어디서 많이 본 선배님 같은데.... 예쁘시고 친절하셔서 빼빼로 데이에 빼빼로 드리고 그랬어서 기억하는데 혹시 소현 고등학교에 함단이 선배님 아니신가요...? 사진을 함부로 올리는 것은 죄송합니다! 아까부터 알바하는 것처럼 보이던 저 인형 탈들 사...
{외전 1 _ 영원히 사랑할 사람과 함께}“서현아!”밝게 웃으며 나를 부르는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내 여자 친구였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우리는 어느새 성인이 되었고, 고등학교 1학년부터 27살까지 사귀었으면........... 말 다 했나?난 단이에게 알겠다고 대답하고서 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우리 둘이 있는 곳은 장미원이었다. 어디선...
이 이야기는, 약 1일 전부터 시작되었다.“헐, 얘들아. 어떡하지? 지금 루다가 부르는데, 급한 일인가 봐. 가 봐야 할 것 같아.......”함단이와 반여령, 사대천왕이 다함께 시내에 나가 놀았던 하루. 그날 함단이는 오후 5시에 이루다의 부름을 받고 일찍 자리를 떠나야 했다.이에 사대천왕과 반여령이 미쳐 날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하, 이루다 저 새끼...
“뭐야, 어디 갔어?”나는 주위를 빠르게 두리번거렸다. 하하, 놓쳤다. 주인이가 5교시 시작 후 30분까지 데리고 있으랬는데!! 나는 5교시가 시작해 사람이 없는 조용한 학교를 샅샅이 뒤져 보았다. 와, 설마 여기서 숨었으면 반여령 진짜 쓰레기다. 만약에 숨은 거면 한 달 동안 아무 말도 안 하고 살 거야.그렇게 학교 전체를 뒤지다보니, 필연적으로 나는 2...
“그러니까, 네가 단이라고?”“어!! 제발 나 좀 믿어봐, 주인아.”“...........증거는?”“아들.......... 지금 엄마 의심하는 거야?”가관이었다. 아니 뭔, 의심이 저렇게 많아! 주인이는 좀처럼 내 말을 듣질 않았다. 내 몸을 한 반여령이 오면 믿으려나. 나도 충분히 이상하게 행동하는데 대체 왜 내가 반여령이 아닌 걸 모르지?뒤늦게 나온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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