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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는 괴물이다. 그것을 알기까지 삼 개월이 걸렸다. 내가 이 저택에 들어온 것은 비가 내리는 어느 겨울의 오후였다. 검은 안개가 흐르는 숲의 바로 옆에 지어진 저택은 어쩐지 을씨년스럽고 음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나를 태우고 온 마부는 시체처럼 창백한 얼굴을 하고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갔다. 나는 온몸이 젖은 채로 한낮 종달새처럼 덜덜 떨며 저택의 문 앞...
※약수위 있음 나는 불꽃, 공명하는 생기이자 꺼지지 않는 불씨. 영혼을 구원하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손에 쥔 숨의 정령. 운명에 맹세하고 이승의 불쌍한 숨결들을 어루만질지어니, 신께선 정령을 굽어살피시어 친히 작위를 내리시었다. 당신은 신, 죽음에서 태어나고 암흑으로 세상을 비추는 아름다운 기만이자 강인한 상흔. 한 줌의 재였으나 이내 하늘과 땅을 가르고 ...
※ 약수위, 폭력적 요소 있음 이름 따윈 없는 곳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름을 버렸다. 대신 새 호칭을 얻었다. 뭘로 불리고 싶느냐는 우두머리의 질문에 그녀는 시야 한켠으로 약물 제조실을 흘긋거렸다. 이름 모를 약품이 쓰여져 있는 갈색 병에 윤기가 돌았다. 얼마간 그 광경을 지켜보던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해독약. 그래서 그날부로 그녀는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
붉은 눈이 조용히 시선을 옮겼다. 그 뱀 같은 눈동자를 오래 보고 있으면 언제나 소름이 끼쳤다. 손, 허리, 목덜미와 입술, 그리고 눈까지. 그의 눈길이 여실히 느껴지는 순간, 채집가는 그것을 구태여 피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가만히 고개를 기울여 오는 걸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사이 속으로 스며드는 풀내음이 점차 짐승 냄새로 물들고, 날카로운 이빨이 입...
히포크라테스 선서 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겨우 의사 흉내 정도나 낼 수 있게 된 대학생들은, 학우들을 따라 구절을 읽으며 심장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강당 안에 선 한 무리의 학생들 근처에선 가족들이 더러 울먹이기도 했다. 존스 가문의 자제인 그녀, 리디아는 낭독하면서도 연거푸 눈을 돌려 일행을 찾았다. 눈길이 방황하길 몇 번, 점점 어두워지는 그녀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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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집행자가 여긴 웬일로," 그의 바이올린 소리가 지옥의 한가운데에 울려퍼졌다. 죽은 자들의 왕. 뮤즈의 화신. 악마들의 수장. 그는 신성한 자들 사이에서 그렇게 불렸다. 그는 홀의 가운데 앉아 있었다. 악마들의 집합소 안에서 가장 높은 곳이었다. 중앙의 식탁엔 인간들의 살점과 비명으로 간을 한 음식이 성대하게 차려져 있었고, 소란이 끊이지 않았다. ...
심장이 빨리 뛰어요. 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는 눈길을 돌렸다. 그렇습니까. 청진기를 그의 가슴에 가져다댄 그녀는 여전히 그의 심장소리를 청취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심장과 불과 몇 센티 떨어져 있지 않은 그녀의 손을 바라보았다. 제 심장소리를 듣고 있는 골똘한 그 얼굴을 보니 오히려 심장이 더 빨리 뛰는 것 같았다. 그는 황급히 청진기를 떼어내었다. 괜...
시녀는 천사에게 얼굴을 맞대었다. 시간이 지나자 새벽의 장막이 찬 공기를 남기고 지나갔다. 사방이 어두웠고, 자신을 바라보는 천사의 눈길, 그리고 거리가 가까운 둘의 숨소리마저 여과 없이 느껴지는 세상의 틈새 속이었다. 더는 말을 할 수 없게 된 입술과 날개가 떨어져나간 등뼈가 앙상해보이는 천사. 천사는 자신을 말없이 끌어안는 시녀의 어깻죽지에 얼굴을 파묻...
※일방적 사랑과 집착감금소재주의 그, 범무구는 자신의 침대에 누워 있는 천사를 바라보았다. 흰 피부에 창틈으로 들어온 달빛이 스며들었다. 해가 진 지 오래되어 파란 밤중에 그녀의 살결은 더욱 고와 보였다. 조용한 어스름 안에서 그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침대 옆에 걸터앉은 그는 잠들기 전까지 울어 부은 것이 분명한 눈가를 천천히 어루만졌다. 바스락거리는 침...
"선생님, 좋은 아침입니다." 방을 나서자마자 들리는 목소리에 그녀는 얼굴을 찌푸렸다. 또 그 남자다. 제법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그는 말쑥한 차림으로 그녀의 방 앞에 서 있었다. 무슨 일이세요? 그녀는 저도 모르게 날이 서는 목소리를 숨기려 해 보았지만 원인 모를 적의는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예의 그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뇨, 그저 지나가던 길에 ...
그녀는 처음 집안이 몰락했던 시절을 그려보았다. 경제적으로 남부러울 것 없는 집안에서 자라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기까지, 그녀는 단 한순간도 자신이 낡고 허름한 빌라에서 살게 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허세를 부리는 편도 돈에 집착하는 편도 아니었지만, 막상 가세가 기울자 자신의 부유함이 얼마나 컸던 것인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환자의 행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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