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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얼모얼 님, 독사 님
퇴보하는 것과 진보하는 것. 그들은 절대적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상대적인 가치라서, 시대에 따라 어느 쪽이 퇴보하는 쪽이고 또 어느 쪽이 진보하는 쪽이느냐의 문제는 손바닥 뒤집듯 변하는 법이다. 이를테면, 지금 온 대륙을 지배하고 있는 제국의 경우에도 한때는 진보와 혁명의 상징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 이름이 가난한 민중들에게 희망이 되고 새로운 세상을...
"닉스." 연인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린다. 그는 내가 사랑스럽다는 듯 눈을 접어 웃는다. 새벽녘의 밝아오는 여명을 담은 자줏빛 눈동자. 그는 늘 자신의 눈동자의 빛깔을 싫어한다고 답했지만 나는 그 빛을 좋아한다. 나는 손에 넣을 수 없었던 새벽의 빛이 오롯이 나만을 바라보는 순간에 희열감을 느꼈다. 나의 연인. 나의 코라. 나의 유일한. "왜 그래?"...
아주 오래 전,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오직 혼돈만이 있었다. 그 혼돈 한가운데서 처음으로 눈을 뜬 것은 밤의 신이었다. 그 신은 아주 오래되고 강력한 신이었지만 다만 특별한 점이 있다면, 그 신의 팔다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다른 이들처럼 팔과 다리 대신 뭉툭한 살덩이가 달려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 살덩이들은 전혀 팔다리의 역할을 하지 못했고, 그랬기에...
막상 그렇게 다짐했지만, 그 인간에 대한 정보를 캐낼 방도가 없었다. 정말로 둘이 저 아래에서 하루종일 붙어 있는 것인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지하에서는 그 인간의 흔적조차도 보이지 않았고, 닉스도 마찬가지였다. 아쉬운 대로, 그 둘에게 캐물을 수 없다면 그 주변이라도. 페르세포네는 먼저 닉스의 주변인들, 즉 닉스의 자식들을 공략해 나가기로 결심했다. 첫 번...
그러니까, 시작은 헤르메스의 아주 단순한 말 한 마디에서부터였다. “그러고 보니 요즘 지하에 살아 있는 인간이 살고 있다는 소문이 돌던데요. 여왕님께서는 아시는 거 있으세요?” 그 말에 페르세포네는 몇 주 전 겁도 없이 단신으로-엄밀히 말하면 타나토스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카론의 배를 타고 케르베로스를 지나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를 마주한 것은 그 인간 혼자...
타나토스는 나의 손을 가볍게 쳐 들고 있던 창을 떨어뜨린다. 무기를 잃은 나는 그에게 전혀 위협적인 상대가 아니다. 나는 거리를 유지하려 뒷걸음질치지만 그는 몇 걸음만에 나를 따라잡고는 한 손으로 나의 두 손목을 틀어쥐고 벽에 몰아붙여 제압한다. 머리를 부딪치지 않도록 다른 한 손으로는 내 뒷머리를 감싸주고 있는 것이 그답다. "또 실패군." 타나토스는 그...
휴르르 님, 요정 님
한가로운 오후다. 아파테와 오이지스는 같이 쇼핑을 하러 나갔고, 필로테스와 리사는 얼마 전 사귄 인간 남자들과 더블 데이트-그들은 자신들 앞에 있는 두 여자가 신인데다 서로 자매이리라고는 꿈에도 모를 것이다-를 하러 갔으며. 모로스는 모이라이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나갔고 모모스는 독서 모임-원래 코라와 같이 갈 예정이었지만 닉스는 코라에게 할 말이 있으니 ...
"이게 뭐예요?" 코라는 눈앞에 놓인 카네이션 꽃다발을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싱그럽게 핀 카네이션들은 코라의 눈 색을 닮은 연보랏빛 포장지에 싸여 리본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 꽃다발을 건넨 당사자인 타나토스는 멍청이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기에, 코라는 어이없는 동시에 적잖이 기분이 나빠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카네이션이지, 그럼 ...
트리거 워닝: 자살 닉스는 어서 빨리 이 고통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생각해 보면, 그의 삶은 쭉 고통뿐이었다. 그가 타고난 것이라고는 얼굴 하나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그의 행복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는 항상 자유를 갈망했지만 그러나 그 어떤 자유도 그녀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강제로 한 결혼, 강제로 낳은 아이. 그마저도 사랑했지만, 증오스러운...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해?" 밤의 신은 망설였다. 그는 자신의 연인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몸에 걸친 검은 베일을 만지작거렸다. 검은 베일 안에는 닉스가 있다. 평소의 코라의 연인인 닉스가 아닌, 신으로서의 무장을 갖춘 밤의 신 닉스다. 그가 이렇게 차려입고 나타난 것은 다름아닌 그의 인간 연인, 코라의 요청에 의해서다. 그의 본모습을 아주 조금만이...
안드로이드와 인간이 공존하는 삶이라면 행복하기만 한 유토피아를 떠올릴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안드로이드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실업자들과 그들에 의한 안드로이드 혐오 범죄, 안드로이드의 권리를 논하는 사람들과 안드로이드의 노동이 가져다 주는 편리함 때문에 그들을 외면하는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들. 온갖 혼란이 뒤섞인...
“무도회?” “그래. 올림포스의 주신들에 의해 몇십 년에 한 번씩 하계에서 치러지는 무도회가 있어. 신, 괴물, 요정, 반인반신, 무엇이든 간에 신화의 존재들이 한데 모여 인간인 척 차려입고 당대 인간들의 사치스러운 문화를 즐기는 밤이지.” “당신이 그런 데 가고 싶어할 줄은 몰랐는데. 아랫 세대 신들과는 함께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 아니었어?” “글쎄,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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