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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행보를 그대로 쫓는 듯한 기분은 단순한 기시감일까, 철저히 의도된 것일까. 검의 무게와 더불어 묵직하게 내리 꽂히는 검기를 받아내는 내내 어지러이 돌던 의중 하나가 쉬이 사라지지 않아 움찔. 도하의 눈가가 연신 가늘게 좁혀들었다. 뒤로, 또 앞으로. 그렇게 수십번 가까이를 딛었음에도 근처에서 느껴지는 기척이라고는 조금도 없다. 다들 약속한 듯 멀찍이...
때는 이혜 이선 쌍둥이가 6살 & 3황 예연의 등청 직전 추도제(追悼祭)* 10주기가 되던 해의 어느 날 *전사한 42대 황자들과 군병, 백성들의 넋을 기리는, 적연이 즉위 후 처음으로 주도한 큰 제사였다 태실(太室)*에 모셔진 위패며 어진들을 처음으로 함께 둘러보던 류씨 부자(父子)는 비교적 최근에 그려진 듯 보이는 어진(왼쪽)과 그 옆에 나란히 ...
3황녀 예연 - 열 다섯의 첫사랑 2황자 이선은 물론이고 같은 해 등청된 4, 5황자를 가뿐히 앞지르는 영력 수치(특히 목력) 그리고 그 잠재력으로 인해 기대를 한 몸에 받던 3황녀 류예연 하지만 본인은 아직 그런 것보다 다른 것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건 바로 같은 나한각 출신의 전 7황자, 현 영신군(이자 예부상서) 류하밀 이야기만 듣다 실제로 한 번 인...
2황자 이선 - (뒤늦게 깨달은) 열 둘의 첫사랑 도하의 (복원된) 옛 궁을 그대로 이어받아 쓰는 2황자 이선 도하가 쓸 적과 달리 높이가 꽤 되는 꽃나무들도 자라고 있고 감정의 폭이 1황녀에 비해 그리 크지 않아 궁의 날씨는 늘 잔잔한 봄같은 느낌인데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작은 동물들이 보금자리로 삼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커다란 나무 꼭대기엔 이미 몇...
- ㅎ,형니임... - 그래. 아홉째 아우로구나. 이름이, - 윤이에요..! 형님..! 혹여 실수 한 자락이라도 할까 얼른 내어주는 답이, 그 배려가 참으로 귀엽다. 이혜는 절로 배어나온 웃음을 참지 않으며 말했다. 알고 있었다. - 한데 예까진 어인 일로 온 것이냐? - 그것이... 필요 이상으로 말을 아껴왔던 저와 달리 서로 살갑게 말을 붙일 줄도 아는...
1황녀 이혜 - 열 두살의 첫사랑 때는 43대 황조 첫 무도제가 무르익어가던 밤. 태어나 처음으로 참석한 황궁의 큰 행사에 너무나 들떴던 나머지 공들여 치장한 옷에 잘 지워지지도 않는 얼룩을 묻혀버린 이혜 자기는 괜찮다, 괜찮다 했지만 속히 환복을 해야 한다는 궁인의 성화에 결국 제 궁으로 향하는데 - ...거기 누가 있느냐? 조용한 제 궁, 그것도 침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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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성정은 생각보다 사소한 것에서 엿볼 수 있다. 가령 눈 앞에 돌다리를 몇 개 놓아본다던가 하는 단순한 것으로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으니. 물에 긴 옷자락이 젖든 말든 그 위를 성큼성큼 뛰어다니던 1황녀에 비해 살금대느라 걸음 한번을 그냥 내딛지 않던 2황자가 황제부부, 군 내외를 비롯한 형제들의 눈에 어찌 보였을 지는 열 길 물 속 만큼이나 훤했다...
- 이리 앉거라. - 예... 환복하지 않은 그대로 상에 앉아 애체까지 쓴 채 서책을 읽던 도하 이혜가 제 근처에 조심스레 자리하는 사이 서책을 치우고 감잎차를 한 잔 내어주었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차를 앞에 두고도 연신 제 눈치를 살피는 이혜를 보다가 도하는 한숨과 함께 애체를 벗어두곤 물었다 - 흔은 어찌 되었느냐. - ...이제 조금도 아프지 않습...
황손들이 하나 둘씩 늘어가며 조금씩 시끌해지기 시작한 황궁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크고 작은 일들 중 적연과 도하가 지켜보고 있는 것들이 있다면 아직 성년도 채 되지 않은 어린 황손들이 어딜 크게 다치거나 병으로 앓아 눕는 것과 같은 특수한 상황이었다 계절마다 연례 행사 격으로 지나가는 풍한(風寒)* 이라든가 영력 수련 중 부상은 너무 심한 것만 아니면 ...
"...누나, 왜 이렇게 오랜만이에요" 오자마자 많은 인원에 1차로 흠칫하고 이미 적연의 옆자리가 모두 만석이자 2차로 흠칫, 백랑을 보고 3차로 흠칫한 비설이 애써 적연만 보며 주위에 신경을 껐음 "미안, 요새 이래저래 좀 바빴었어" "야, 나는 이제 보이지도 않냐?" "안녕하세요, 초란이 형" "야 비설아, 너도 이리로 와라! 친구 소개할게 여긴 적연이...
황손의 탄생은 곧 다음 세대의 시작이라. 전후 복구에 밀려 자연스레 등한시 되었던 열두 나한각의 움직임은 이혜와 이선이 각각 1황녀와 2황자에 봉해지고부터 눈에 띄게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전대와 달리 사내, 여인 할것 없이 황손될 자격이 생기니 42대 황조가 넘어가도록 사내 아이들로만 가득했던 한려원에는 연신 새 바람이 일었다. 이혜와 이선이 꼭 여섯 되...
"야, 류영경 온다던데" "왜?" "몰라, 엄마한테 전화 왔는데 3일 정도 있다 간대" 류영경으로 말하자면, 초란과 적연의 사촌 동생인데 적연과는 동갑임 적연보다 생일이 늦어서 족보로 따지면 적연이 누나지만, 영경은 어릴 때 틈만 나면 적연을 괴롭히려 들었음 어린 적연은 성질이 지랄 맞았기 때문에 족족 참교육을 시전했고 초란 역시 제 동생을 괴롭히는 영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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