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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선호가 강녕전을 나와 태원전으로 향하는 길목에 들어서자마자 궁인들이 얇은 속곳만 제외하고 옷을 전부 벗긴 뒤 선호를 끌고 간다. 이제는 별다른 저항도 없이 순순히 끌려간 *중궁전(왕비가 거처하는 곳)에 무릎을 꿇고 앉혀지자 중전이 그새 전하께 일러바친거냐며 고함을 친다. 영문도 모른 채 고개를 숙이고 그 화를 다 받아내던 선호에게 옆에 있던...
"오늘 경전회의에 드시지 않았다고?" "예. 마마. 금일 조례에도 나타나지 않으셨다 하옵니다" '아직까지 그 놈이랑 있는게지...' 예상은 했으나 현실을 마주하는 것은 생각보다 속이 쓰렸다. 그리 당당하더니 정신을 잃은 그 놈의 나머지 눈도 기어이 찌르고 나서야 만족스럽게 뒤돌았는데 그깟 얼자 놈이 뭐라고. "전하께서 오시면 아뢸까요?" "아니다. 나가보거...
*주의 : 시력을 잃는 장면이 묘사됩니다. "전하와 네 눈을 바꾸는 건 어떠냐. 어차피 이미 돌아올수 없는 강을 건넌 너희들 사이에 내가 그거라도 가져야 마음이 좀 풀릴 것 같은데..." 순간 선호의 눈에 두려움이 깃든다. 멀리서라도 방원을 보는 삶을 택할 것이냐. 볼 수 없더라도 만질 수 있는 삶을 택할 것이냐. 제가 찾을 수 없게 숨어버리면 언젠간 방원...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방원이 왕위에 즉위하는 과정을 방원의 난으로 담았습니다. 1398년 방원의 난, 아비인 태조를 폐하고 그 아들이 기어코 왕위에 오른 날, 그 날은 남가의 얼자 남선호의 중전 책봉식이 거행될 예정이었다. "네 아들을 중전에 앉힐까 하는데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해야할 답은 정해져 있는데 옆에 서 있는 선호는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곁...
"그 자가 등걸음쳐 나간 문이 바로 저 문입니다." 뭉툭한 손끝이 대강 가리키는 끝에 볼품없이 허름하고 작은 쪽문 하나 있을 뿐이다. 께름칙한 기색 숨길 줄 모르던 길잡이는 부정한 것을 떼듯 제 옷깃을 털며 오도카니 서 있는 사내의 눈치를 살폈다. 이 후미진 촌에 불쑥 나타난 사내는 번듯하고 때깔 좋은 비단옷을 입고, 그의 갓끈에 알알이 달린 자색 수정이 ...
그토록 오래 기다리던 재회의 순간이었으나 궐 안에는 보는 눈이 많았다. 지금은 궐 밖으로 나가는 길, 딱 그만큼의 시간만 허락되었다. 나란히 걷는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떤 말도 오가지 않았다. 그저 조금 느린 걸음으로 함께 걸을 뿐이었다. 선호의 걸음에 방원도 보폭을 맞추었다. 본래 조금 빨랐던 걸음이 느릿한 것은 조금 더 오래 함께 걷기 위함도 있지만, 방...
내 나이 서른 넷, 문득 즐거운 일만 생각하기엔 너무 현실을 사는 게 아닌가 싶었다.
느티나무 아래에 방원이 서 있었다. 온화한 풍경 아래 선 방원의 표정이 어두워 선호의 발이 잠시 멈칫, 다가가기를 망설였다. 이내 가까이 다가서자 두 사람의 사이에 서늘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처음으로 함께 밤을 보낸 연인답지 않은 기운이 돌았다. 방원이 입을 열기 전 선호가 먼저 말을 꺼냈다. "다 알고 있었소? 내가 남전의 얼자 남선호라는 걸. 그래서...
방원선호 + 네임버스 트위터에 업로드한 썰을 조금 다듬었습니다. 세계관은 원작을 많이 따왔으나, 실존 인물로 이러쿵저러쿵 한다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려서.... 이성계인데 이성계가 아니고, 이방원이지만 이방원이 아니고, 조선이지만 조선이 아닌.....그런 마음으로 씁니다. 방원이 적서를 차별하지 않았다면, 선호가 제 마음에 좀 더 솔직했더라면, 뭐 이런 저...
어쩌다가 이리 된걸까. 오늘의 자리는 선호의 패배를 지켜보기 위해 생겨난 자리였다. 방원은 성록을 인질로 잡아 선호를 불러내었다. 다른 병사는 모두 도륙을 내고 성록만큼만 산채로 잡아 목숨만 붙여놓은 상태였다. “고작 이 여진족 하나 때문에 오겠습니까.” “분명 올 것이다.” 방원은 부채로 턱을 긁으며 단언했다. 하지만 휘는 선호가 오지 않길 바랬다. 고작...
“서검의 나라로 가서 수호신을 베어라. 그것이 내가 너에게 내리는 마지막 명이다.” 머리 위로 낙하하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바짝 엎드렸다. 오랜만에 보는 성록의 주군은 전과는 달랐다. 전과는 달리 여유가 없었으며, 다급함이 넘쳤다. 바짝 엎드린 성록의 앞에 바닥과 날카로운 물건이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하지만 성록은 놀라지 않고, 엎드린 자세로 ...
陳弘之國 03 산세가 험하고, 차가운 기운이 몰아닥치는 북쪽에 비해 남쪽은 평야가 많아서 평탄하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그만큼 지괴가 넓어 쉼 없이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꼬박 5일을 말을 타고 달려야지 도착할 수 있는 이목국 근처에 닿기에는 어려움이 가득했다. 해가 떨어지고, 달이 뜨면 땅 아래에 숨어있던 괴들이 물을 머금지 못해 쩍쩍 갈라진 땅을 ...
陳弘之國 02 방원은 제 사병과 저를 따르는 사람들을 이끌고 아버지인 이성계의 나라인 이목국을 떠났다. 기어코 어린 이복동생인 방석을 세자 자리에 앉히는 것을 보아 결국 아버지의 나라와 제 나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꼭 저를 세자로 택하지 않아도 좋았다. 그저 저와 동복형제가 세자 자리에 앉았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말았을 것이다. 방석이 세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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