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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파란빛 조명이 켜진다. 만도, 샤프를 만지작거리며 앉아있다. 만도 샤프...... 이 샤프...... 야, 진짜 오래됐어. 넌 진짜 고장 안 나는구나! 한 고등학교 몇 학년부터 쓴 것 같은데. 닦아줄까? 더럽다. 한번 닦아주면 더 깨끗해질까? 만도 정말? 암전. 밝은 노란빛 조명이 켜진다. 만도, 물병을 만지작거리며 앉아있다. 만도 얘도 참 오래 썼...
하늘에 아폴론의 미소가 반 즈음 돌아온 시간. 아담은 곁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하와가 깰까 노심초사하며 집을 나온다. 천상에서와 다른 잠자리에 찌뿌둥함을 느끼기도 잠시, 그는 서둘러 프로메테우스의 동굴로 향한다. 다만 문제라면, 그곳까지의 길을 전혀 알 길이 없다는 것이었다. “큰일이네, 이래선 하와가 일어나기 전까지 옷을 만들어오지 못할 텐데….” 에...
여인은 쉼 없이 궁을 가로지르고 있다. 어느새 그녀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고궁의 풍광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어지럽게 휘날리는 눈발이 무색하게 여인은 힘주어 달리니 수백 년 간 북풍을 견딘 박석의 엄숙함은 그녀의 거침없는 발음박질 아래에서는 어렴풋한 과거의 유물이 되는 듯했다.그러나 여인이 수 겹의 궁문을 통과할 적에 그녀의 머리 위, 아득히 먼 처...
시간이 흐른다. 유리문이 어둠과 빛을 반복해 비췄다. 세영이 비틀대며 몸을 일으켰다. 옆을 지키던 상체만 남은 시체의 후드집업을 입고 나뒹구는 시체 속 맞는 신발을 찾아 신었다. 빛을 향해 전진하며 필요해 보이는 물품을 챙겼다. 힙색, 모자, 선글라스, 책, 볼펜, 작동되는 핸드폰들, 향수 마지막으로 깨진 자판기에서 물을 챙겨 넣고 유리문으로 향했다. “그...
“..이게 뭐야?” 바둑돌처럼 검고 예쁜 홍채가 피처럼 붉고 선명하게 빛난다. 목소리가 볼품없이 갈라졌다. “하하! 안경을 안 써서 그런가. 이제 색도 구분 못 하네, 가까이 가면 다를 거야 그치?” 세영이 거울로 향했다. 처음에는 좀비를 피해 몸을 틀었지만. 거울에 가까워 질수록 세영은 좀비를 밀치며 미친 듯이 달라붙었다. 거울과 완전히 맞닿은 상태로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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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가 쓰러지고서 시어도어는 사람을 불러 침대에 눕혀두었다. 이름을 몇 번이나 불렀는데도 불구하고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는 의원을 데려와 자신의 사람을 진찰하게 두었다. 그래서 무엇이 문제지? 하고 묻자 안경을 쓰고 곤란한 낯을 하고 있는 이가 고개를 절레 저으며 몸을 일으켰다. "단순한 열병 같기는 하나... 면역력이 많이 약해졌군요. 인간의 ...
카르멘의 기분이 좋아보이자 그림자뱀은 한숨 돌렸다. 들켰을 땐 어느 쪽의 손이든 그대로 사라지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쪽도 그를 해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뱀은 카르멘의 생각이 바뀌기 전에 얼른 제 비늘을 하나 꺾어 건넸다. 카르멘은 그걸 받아 뱀이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를 생생하게 전달받을 수 있었다. "인어는....별론데." 제노가 바다로 들어가는...
건은 천랑의 침착한 태도에 더욱 애가 탔다. 그러나 이 용인이 알고 있는 사실을 빨리 듣고 싶어 겨우 자신의 초조함을 억눌렀다. 천랑은 잠시 단어를 고르고 남매에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소리로 말했다. “사형께서는 동면에 드신 것 같구나.” “…동면이요?” “…동면이요?” 두 남매는 덩달아 작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몰라서 묻는 게 아니었다. 동면이라...
"이거랑 똑같이 생겼다니까?" 종소리가 울리며 3교시가 끝난 쉬는 시간, 선생님 몰래 수업 시간 내내 그린 그림을 펼쳐 하현수에게 보여주었다. "다리가 10개인 벌레가 널 쫓아온다고?" "그래! 아니! 아니! 10개가 아니라 발이 이렇게 막 움직인다고. 그리고 벌레가 아니라 사람이야!" 나의 명화를 무시한 하현수가 문제집을 보며 설렁설렁 대꾸했다. 보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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