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한 기본 포스트
한 컷씩 넘겨보는 카툰 포스트
직접 만든 영상을 올리는 동영상 포스트
소장본, 굿즈 등 실물 상품을 판매하는 스토어
“쯧, 그런 거면 좀 미리 말하던가.” 미간을 찌푸리며 화한 액체로 입안을 헹궈내는 폼이 퍽 바빴다. 죽음에 무던한 것이 소현인이라지만 어린아이라는 말이 걸렸다. 어쩌면 내 어린 시절 탓인지도 모르지. 나의 탄생은 어머니를 죽였고, 나의 기질은 할머니에게서 하나뿐인 손주를 앗아갔다. 전부가 핏줄 때문이었다. 무가의 피는 속일 수 없다던가. 팔목의 안쪽으로 ...
차르륵, 알약들이 손바닥 위로 떨어져 내렸다. 알약은 전부 각성제였다. 부족한 체력으로나마 깨어있는 게 나았으니까. 어디까지가 치사량이더라. 거미는 가물가물한 머릿속을 헤집어 알약 두 개를 물과 함께 삼켰다. 아직은 죽어선 안 된다. 약하다면, 강하게 만들어주면 된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사람. 기현은 자신이 남겨둘 단 하나의 비수가 될 것이다. 거미...
거미는 천천히 죽어갔다. 그것이 진정 죽음이었는지 쇠약이었는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 스스로가 나을 가망 없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졌다는 것이다. 거미는 지나온 모든 꿈들을 기억했다. 이번만은 그 잘난 뇌의 망각마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광경들은 너무나 선명하고 또 괴로워서, 도무지 잊을 수 없었다. 거미는 기를 쓰고 의식을 붙들었다. 깨어 ...
뱀은 초점 잡히지 않는 눈을 들어 애써 그들을 눈에 담았다. 핏기가 사라진 피부는 산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혼은 이미 육신을 떠나 저승으로 향했고, 아마도 지금쯤 저승 시왕의 재판들을 받고 있겠지. 뱀은 눈물로 짓무른 붉은 눈으로 다시 눈물을 쏟았다. 이젠 절 부르는 목소리도 그들이 제게 거는 장난마저도 느낄 수 없다. 그저 싸늘하게 식어 부패해 썩어갈 ...
뱀은 종종 꿈에 대해 생각했다. 그가 살아오며 인간의 태를 취하고 겪었던 일들. 뱀은 가끔씩 그것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렇게 쌓인 것이 동굴 안쪽에 있는 서가였다. 책으로 묶인, 두서없는 연대기들. 그것들은 제목 하나 붙여지지 못한 채 책장의 가장 맨 윗칸에 차곡차곡 놓였다. 그것들은 종종 뱀의 무의식에서 기억을 끄집어내는 역할을 하곤 했다. 그의 망각은...
밤. 지친 몸을 누이고 잠에 드는 시간. 어둠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휴식의 시간이었다. 그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밤은 이곳에서만큼은 그렇지 못했다. 서란동의 밤은 화려했다. 누군가가 죽어나가기도 하고, 쾌락에 몸부림치기도 했다. 누군가는 정보를 사고, 누군가는 또 정보를 팔았다. 그들이 잠드는 시간은 대부분 이른 새벽이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 민호가 ...
창 밖이 소란스러웠다. 소음은 다툼의 빛을 담뿍 머금어 날카롭게 고막을 찔렀다. 저 소음이 사랑싸움이든, 살인이든 승윤 자신과는 하등 관계 없는 일이다. 다만 제 잠에 방해가 될 뿐이지. 승윤은 이내 협탁 위로 손을 뻗어 휘적거렸다. 손에 잡힌 것은 제 귓구멍 모양을 본뜬 귀마개였다. 이 동네가 조용해지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내가 피하는...
겨울의 끝자락이었다. 문득 이질감에 소매를 걷었고, 이 긴 삶의 끝자락을 마주한 날은. 창을 타고 넘어온 볕에 바스러진 비늘이 창백하게 빛났다. 이무기는 얼굴 위로 희미한 미소를 걸었다. 당분간은 숨기는 게 좋겠구만. 그는 걷었던 소매를 조심스레 끌어내렸다. 검게 부스러지던 비늘은 흰 옷감 아래 곱게 감춰졌다. 명백한 사실이 빛나고 있었다. 제 삶은 끝나가...
나른한 새벽이었다. 곧 아침이 밝아오고, 가게 문을 닫아야 할 시간. 거미의 자리는 완전히 기현에게 넘어갔고, 승윤은 그 결정에 만족했다. 늘 바라 마지않던 평화였다. 물론 사창가의 포주라는 것은 여전했지만, 승윤에게는 더이상 위협도, 의뢰 요청도 들어오지 않았다. 승윤은 과거부터 늘 그래왔듯 가게의 문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송 실장." "아니, 민호 형." 승윤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저 모아 안은 제 무릎을 응시하며, 담아둔 말을 꺼냈다. 민호는 승윤의 어깨에 턱을 얹었다. 등 뒤를 온전히 안아오는 체온은 자신보다 조금 더 높았다. 승윤은 문득 자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민호는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그리고 그는, 흔쾌히 승낙할 것이 분...
폐부를 찌르는 듯한 한기, 허옇게 낀 서리. 그 가운데 홀로 열을 발산하는 것은 검푸른 창 하나였다. 뱀은 대지에 꽂힌 창을 뽑아내었다. 하늘은 검었고, 대지는 붉었다. 마치 뱀처럼 말이다. 뱀은 거대한 고개를 꼿꼿이 세워 들었다. 음습한 괴성이 흐릿하게 흘러 들었다. 지겹도록 익숙한 이 소음. 그래. 망령들이었다. 아주 먼 옛날 죽어 이지마저 잃은 혼백....
종종 생각나는 풍경이 있다. 낮에서 밤으로 바뀌던, 노을이 지기 전 어스름한 하늘. 방 한 켠에서 창문 밖의 그 하늘을 멍하니 보고 있던 때. 바람은 시원했고, 집안은 고요했다. 나는 얇은 옷을 입고, 마찬가지로 얇은 이불을 덮고 있었다. 그때 엄마는 어디 계셨더라. 할머니 집에 내려가셨던가? 아니면 다른 방에 계셨던가? 잘 모르겠다.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철이 들어서도, 철이 들기 전에도 나는 아름다운 것이 아니면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타고난 기질은 시간이 지나도 바뀔 틈 없이 견고했다. 세 살 버릇도 여든까지 간다고들 하잖아? 하물며 태어나고부터 줄곧 가지고 있던 기질이 어찌 바뀌겠어. 어릴 적과 현재의 차이는 그저 지독한 외모지상주의를 숨길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였다. 평생 얼굴 뜯어먹고 살 거냔 ...
흐린 구름 사이로 하늘하늘 눈송이가 떨어져 내렸다. 늦은 눈이었다. 포근해진 날의 마지막 눈. 눈송이들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겨울의 마지막을 배웅하기 위해 몸을 내던졌다. 나는 그들의 송별회를 그저 가만히 지켜볼 따름이었다. 시간은 얼마나 흘렀을까. 시간의 흐름에서도 비껴나는 이런 몸으론 대강의 가늠만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나는 질량이 느껴지지 않는 몸...
영원할 거라고 생각했다. 다디단 우리 사이의 공기가, 우리 사이의 관계가. 그러나 늘 그렇듯 영원은 어디에도 없었다. 시간이란 놈은 영원의 적이었고, 나에겐 그 시간을 피할 능력이 없었다. 우리의 관계는 서서히 엷어지고, 깨어졌으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너는 조금씩 날 멀리했으며, 우리 사이엔 귀찮음이 쌓여갔다. 그러나 나는 너를 쉽사리 놓을 수 없었다. ...
설정한 기간의 데이터를 파일로 다운로드합니다. 보고서 파일 생성에는 최대 3분이 소요됩니다.
포인트 자동 충전을 해지합니다. 해지하지 않고도 ‘자동 충전 설정 변경하기' 버튼을 눌러 포인트 자동 충전 설정을 변경할 수 있어요. 설정을 변경하고 편리한 자동 충전을 계속 이용해보세요.
중복으로 선택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