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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예상은 했지만…….’ 동거인의 절규를 배경음 삼아 라이브 방송을 마무리하는 테스타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핼은 왜 이렇게 태연해…?” 그거야 수없이 많은 브이틱 콘서트 티켓팅 광탈을 경험해서가 아닐까. 라고는 말할 수 없는 노릇이니 그저 가볍게 어깨나 으쓱여줬다. “나만 진심이었어?” 진심 아닌 티켓팅이 어디 있겠냐만, 인아의 눈에 내가 ...
유난히도 길었던 하루가 끝나고 있었다. 인아는 긴장이 풀린 모양인지, 한결 편안한 표정으로 가벼운 저녁을 먹고는 그대로 잠들었다. 나는 굳이 그 남자와의 일을 캐묻지 않았고 그런 내 모습에 인아는 안도한 것처럼 보였다. 말을 하면 후련해진다고들 하지만, 말을 하면서 떠올리는 그 기억들이 커다란 고통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다. 훌훌 털어놓고 잊어버리란 것도...
내 말에 표정이 잔뜩 일그러진 두 남자의 목소리는 짜기라도 한 것처럼 겹쳤다. “걔를 왜 여기서 찾아?” “야, 너 그 새끼한테 누나 얘기했냐?” 문에 기대고 있던 남자는 나한테 한 말이었고, 안쪽에서 나오던 남자는 내가 아닌 자신의 가족을 향해있었다. 한 명만 볼 때는 잘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 잘 알겠다. 문에 있는 쪽이 동생 1, 안쪽에서 나온 사...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명절 때의 인아는 본가에 가는 것을 꺼렸다. 은연중에 나오던 표정이나 행동들을 종합해 보자면 그랬다. 물론 가족이 없는 날 위해서 대놓고 투덜거리지 못하는 것도 눈에 빤히 보였었다. 작년 추석, 방에서 연신 들리던 한숨 소리가 문득 선명하게 떠올랐다. 가족 문제인 것 같아서 따로 묻지는 않았지만, 난 세상 모든 가족이 이상적이지 않다는 ...
다 큰 성인이니까 굳이 이래라저래라 잔소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지만. 가만히 내버려 뒀더니 내가 굉장히 귀찮아졌다면 잔소리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 요즘 내 일과다. “근데 이걸 왜 찍어?” “커버 영상 말고 다른 것도 있으면 좋을까 싶어서.” “…….” “어차피 만들 거니까 영상 찍는다고 따로 시간 내고 그런 거 아니잖아. 너...
시스템 창이 내게 거지 같은 것을 보여줬지만 실상 내 생활에는 크게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바빴고, 테스타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콕 집어서 말할 거라고는 치킨 수프 W앱 라이브 방송이 있었다는 점이다. 글로 접했을 때도 정신이 없었는데, 영상으로 보니 더 그랬었다. 음식을 구원하는 문대의 모습도 참 보기 좋았더랬다. ‘뭐, ...
나는 선명하게 들리는 신재현의 목소리를 애써 안 들리는 척하며 가만히 뒤로 돌아 인테리어용으로 걸린 그림이나 봤다. 물방울을 머금은 수국과 그 색이 비슷한 나비들이 그려진, 지나가다 발견해서 괜찮겠다 싶어서 걸어뒀던 그것이 이제야 빛을 발하고 있는 순간이었다. /“이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지 않아요?” 취소. 빛을 발하고 있는 거 취소. 오히...
여러분은 집에 들어갔는데 현관에 자신의 아이돌 등신대가 인사를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까? nn번의 인생을 사는 저도 이런 일은 처음인데 말입니다. “라인아 이게 뭐…….” “아, 핼! 들고 들어와!” 내 키보다 더 큰 이 등신대를 들고 들어오라는 룸메이트를 향해 불만의 눈초리를 쏘아봤으나 타격감은 없었다. “얼른, 얼른!” 드물게 인아가 나보다 먼저 퇴근해서...
‘하필이면 그 가요 대전이 14일이라니.’ 스케줄을 전달받고 테스타의 변경된 무대를 들은 나는 어째서인지 요청을 받아 무대의상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의상 후드에 각 멤버들의 동물 상징을 달며 계속 한숨이 터져 나왔다. ‘하긴 앞으로 일주일이니까. 급하긴 하겠지. 원작에서도 의상을 어디서 공수했다, 어떻게 처리했다 말할 필요도 없고 궁금하지도 않은 정보...
대상 수상자가 신인 대기실 문 앞에 있으니 이 얼마나 웃긴 일인가 싶었다. 둘이 마주한 상황으로 보아 지금 눈앞의 장면도 원작의 한 장면일 테지. 하지만 지난번과 다르게 또렷하게 기억났던 것과 다르게 희미한 것을 보니 어차피 보게 될 일이니 내버려 둔 건가 싶었다. 정말 시스템이 나를 쥐락펴락하는 것 같아서 불쾌한 감정이 일었다. 꾸벅꾸벅 인사하는 신인 테...
여전히 집으로 말 못할 택배들이 도착했다. 시간이 이정도로 흐르니 이제는 별난 정성을 이상하게도 쏟아 붓고 있다, 라고 생각하는 초연한 상태까지 다다랐다. 물론 인아는 계속 걱정하면서 내 상태를 살피는 모습을 보였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날 이후 내 기억이 소실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러쿵저러쿵 말해도 나한테 특별한 사람이긴 하지.’ 나는 가만히 메시지 ...
보통 인아는 쉬는 날에도 일어나면 제일 먼저 나를 깨웠다. 이유는 같이 아침을 먹기 위해서, 라고 본인은 말했지만 내 생각에는 맛있는 밥을 먹기 위함이라 생각했다. 그런 인아가 나를 깨우지 않고 집안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모양인지 그 소리는 희미해서 조금 전에 상자를 내려놓는 게 아니었다면 듣지 못할 정도였다. 평소 조심...
왜 기억이 뒤죽박죽인지 이유를 알겠다. 이 하루 루틴이 반복되고 이 현실이 너무나도 싫어서 잊어버린 거다. 예전처럼. ‘그렇다면 이 상태를 인아는 이미 알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내 스마트 폰을 여기 숨겨둔 거겠지.’ 나 때문에 괜히 맘고생 하게한 것 같아서 미안해졌다. 내가 뭐라고. 나는 나를 향한 원색적인 비난을 그저 쏟아내는 글들이 난무하는 곳에서 나...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어째서 상황이 이렇게 된 거지? 늘 닫혀있던 이 문이 이렇게까지 끔찍해 보였던 적이 없었는데. 왜 이렇게 된 거지? “핼, 일어났어?” “…….” “나 이제 출근 해, 잘 쉬고 있어!” 가을의 더위가 식고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의 마음이 연말이라는 단어에 흠뻑 빠져들 시기에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는 테스타가 광고로 ...
흑과 백으로 이루어진 세계에 나는 서 있었다. 코를 자극하는 냄새, 어깨를 짓누르는 분위기, 귀를 괴롭히는 수군거림이 곳곳에서 날 찔러댔다. 아, 저건 어린 시절의 ‘나’였다. 헝클어진 머리, 숙여진 고개, 끊임없이 들썩이는 어깨. 그리고 옆에 선 이의 손을 꽉 쥐고 있었다. 어린 나와 비슷한 또래의 소년의 손을 꽉 쥐고, 소년은 한 번씩 자신의 손을 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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