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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위에 작은 발자국이 남았다. 겨울은 별로 늦지 않은 시간이라고 생각했을 때 느닷없이 해를 산등성이 너머로 떨어트려 버리고는 했다. 겨울답게 구름 하나 없는 하늘 위로 쨍한 노을이 비쳤다. 노랗게 물든 눈바닥을 밟고 넘어가지 훈훈한 온기가 돌았다. 고작 유리문 하나를 사이에 두었을 뿐인데, 기온은 천지차이였다.우편함에는 본 적 없는 노란 편지 봉투가 입구...
순간 눈이 절 향한 것 같았다. 선글라스로 가려졌으니, 그렇다곤 하더라도 정말 그런건진 알 수 없었겠지만. 털이 쭈뼛 스는 듯한 느낌이 척추를 타고 기어올랐다. 이제야 막 성인이 되었을까 싶은 어린 외형이었지만, 꺼림칙한 기분은 감출 수 없었다.행동은 단정했고, 예의범절도 완벽하게 지켰다. 장난기섞인 얼굴로 상냥하게 웃는 모습은 쉬이 호감을 살 법 했다. ...
은빛 노래가 울려퍼진다. 럴러바이는 하누만이지, 엔젤 헤일로가 아니었기에 실제로 소리에서 빛이 나지는 않았을 테다. 그 음에는 비단의 광택도, 화려한 분산광도, 순수한 흰빛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노래를 듣는 순간, 모두가 그 노래는 순백이라고, 은빛의 노래라고 귀에 새겼다. 아름답게 퍼지는 비단결. 은사를 넣어 자아낸 레이스. 모든 이를 덮어, 치...
둘이 잡혀갔다. 그 전에도 둘. 또 그 전에는 하나. 욕짓거리가 입 밖으로 나오려 맴돌다 겨우 들어갔다. 그닥 깊은 관계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동료가 잡혀갔다는 사실에 충격이라도 받는 건지, 그들을 조롱하는 UGN의 말에 열이 뻗친건지. 평소답지 않게 낮아진 목소리에 그 자신도 놀랐다. 그제서야 제 기분을 알아차린 그가 폭풍마냥 밀려온 감정에 잠식되기 ...
운명은 반드시 일어난다. 오딘의 자식 호드는, 글레이프니르에 묶여 버려질 것이다. 그것을 인정한 뒤로 호드는 천천히 주변을 정리했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남길 것을 정리하고, 하던 것들에서 손을 떼어, 다른 맡을 사람을 찾았다. 제가 가진 작은 집은, 글레이프니르의 앞으로 옮겼다. 혹시나 무슨 일이 있으면 아이를 부탁한다는 말 역시 전해두었다. 사랑하고, ...
왕이자 아버지시여. 예언을 제게 들려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를 죽이기 위해 이복동생의 손에 칼을 들리신 것처럼, 또다시 예언을 이루기 위해 저를 구렁에 밀어넣으실 셈입니까? 그러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오딘의 예언을 듣기 전부터, 사실은 알고 있었다. 자신은 버려지고, 갇히고, 묶이게 될 것이라고. 사랑하는 이들의 , 친구의 손에. 차마 벗어나지 못하...
북부에는 별다른 수식어 없이, 단순히 정원이라 불리는 숲이 있다. 태양은 일 년 내내 제대로 비추지 않고, 때때로 혹한의 눈보라가 몰아치는 곳을 일컫는 말이 모순적이게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정원인 이유는, 눈에 덮인 은빛 나뭇잎들이 마치 눈으로 빚은 조각상 같아 보였기 때문이었을까. 아무리 차가운 곳을 좋아하는 나무라고 해도 열매조차 맺지 못하고, 검게 죽은...
“사랑한다. 휘령아. 내 딸.” 산산조각난 조각상이, 베일을 덮은 채 무너져 내린 신상이 푸른 꽃이 넘실대던 바닥으로 추락했다. 사람의 살결과 같던 부드러운 조각들이 한낱 돌덩이가 되어 흩어지고, 마법사의 소멸에 따르는 차례대로, 천천히 그의 존재가 세상에서 지워지기 시작했다. “…바보같았다, 비연. 바보같았어.” 천천히 입을 뗀 이, 그리고 입조차 떼지 ...
“샬롯 선배님.” 가벼운 걸음걸이 뒤로 붉은 자락이 나풀거렸다. 찜찜한 표정으로 발끝까지 닿는 붉은 치마를 바라보던 다나가 입을 열었다. 다나의 인사에 베일 아래로 감추어진 눈이 힐끗 돌려졌다. 이내 상냥한 웃음이 베일에 미처 가려지지 않은 입매에 맺힌다. 아, 다나! 나긋한 목소리로, 어쩌면 반갑다는 듯이 말하고는. “무슨 일이에요?” 무슨 일이냐니. 스...
무슨 임무를. 말마따나 저는 형편없는 마법사로 소문이 나 있었고, 굳이 내통의 의심이 아니라도 제게 임무를 맡길 만한 이들은 없었다. 연신 내리쳐진 뺨을 손으로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눈을 몇 번 깜빡인 예한은 흐린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것이 상대의 마음에 들었는지 - 아니면 역으로 상대를 체념하게 했는지는 몰라도 상대는 더 이상의 폭력을 행사하지 않은...
과거로 돌아가자. 시렌 페어웨어는 10년 전의 어느 순간 부서진 세계를 느꼈다. 산산조각나고, 흩어진 거대한 존재의 감각을 느꼈다. 온갖 책들이 풀려나와,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건 마법사라면 무시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후에 불리기를, 대파괴라 할 재앙의 순간이었다. 글쎄. 그게 뭐 크게 중요한 일이었을까? 대법전 소속도, 마법 재액...
옛날 옛적 어느 왕국에, 사랑에 빠진 연인이. 일그러져버린 이형과, 제멋대로 이야기를 덧씌우는 재봉사의 한 쌍이. 무너지고 덧붙여졌음에도 그 끝은 사랑이었던 연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아이러니컬 메르헨 RPG 모노톤 뮤지엄 "티티, 저 왔어요." 익숙한 미소로 다가선 걸음. 오두막의 문을 열고, 날아드는 꽃병과 이형의 ...
대파괴 직후 엽귀에 소속된 일원 중 하나. 어둡고 음침한 성격으로 보인다. 자기관리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듯 하며, 주변에서의 평판은 최악에 가깝다. 엽귀임에도 서적경, 특히 구세계 질서 소속의 서적경을 뻔히 놓아주면서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협상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일상다반사이며, 임무의 수행과 동료들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찾아다니기도 한다. ...
비연은 부스러지기 시작하는 발목을 간신히 그러모았다. 계속된 가혹행위며 고문으로 망가진 몸은 서서히 바닥난 마력과 마찬가지로 모양을 잃었다. 대법전의 원탁이라는 이름은, 대법전이 무너지기 전이었다면 위대한 사명을 진 이들의 무게, 누구에게나 존중받는 호칭이었다지만, 지금은 쉽고, 당연한 고문 대상일 뿐이었다. 본래 고통에 취약한 몸이었다. 피와 살을 버리고...
코넬리아는 인조 슈발리에 제작팀의 연구원이었다. 기실 몇백년 전 최초의 슈발리에라는 종자들의 유래는 인조 생명체, 혹은 개조 인간이긴 했지만- 이 포트리스의, 인조 슈발리에 제작팀은 조금 달랐다. 근해의 해변에서 살아가고 있던 해양 생명체, 흔히 말하길 수룡 종족들을 잡아 슈발리에로 개조하는것이 그들의 업무였으니까. 인간의 슈발리에 시술 성공률은 해봐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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