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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와서 한량처럼 지내니 눈 흰자위가 많이 깨끗해졌다. 핏줄이 선명하게 올라왔던 부위도 많이 옅어졌고. 이따 아빠가 병문안을 올 텐데, 별 말 안하고 조용히 다녀가주길 바라는 것 외엔 특별한 걱정이 없다. 비가 와서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은 창밖을 보면서 앉아있어야지. 아침약 때문인가, 앉아있는데 자꾸 졸려. 어제 그 일 이후로 기분이 조금 미묘하다. ...
아침약이 나왔다. 모양을 보아하니 렉사프로 10mg만큼 아침에 추가한 것 같다. 아침약을 먹고 샤워하고 나오니 너무 졸려서 2시간 가까이 잤다. 자고 일어나니 아무 생각도 없다. 그러니 다시 책이 읽힌다. 주치의 선생님은 입원해있는 동안 바깥의 문제를 가능한 해결해두고 나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했다. 여기 평생 있을 수는 없으니 그렇게 해야겠지만, 생각...
돌이켜보면, 쭉 환상을 보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무지개가 환상이 아니라 실재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나는 무지개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무지개는 실재하지 않고, 그것을 보았던 것조차 나 혼자 뿐이었다고, 그 사실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다. 글을 쓰거나 책을 엮어내는 일은 나름의 즐거움과 의미를 가지겠지만, 그걸로 돈을 벌기 시작하는 순간부...
비가 우박처럼 쏟아지더니 금방 그쳐버렸다. 빗소리가 좋았는데... 창가에 앉아 책을 읽다가 한기가 들어 병실로 돌아왔다. 심리검사를 몇 시간 한 것이지 나는... 심리상담 선생님의 괴로운 표정을 나는 보았소. 퇴근하고 싶은 여러분들의 야근에 내가 일조했소... 검사를 끝내고 돌아와 보니 밥상이 차려져 있었고 빛의 속도로 식사를 해치움. 전화사용, 외출 모두...
그날 전화가 오지 않았다면
개인의 잘못이 아닌 수많은 것을 우리는 개인에게 전가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분노를 쏟아낸다. 분노해야 할 대상은 그 사람이 아닌데도. 타인의 잘못과 세상의 잘못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내 잘못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갈 곳을 잃은 분노가 나 자신에게 돌아오는 날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나는 평생 나를 학대해왔다. 그러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고...
나는 도망치고 싶다. 사라지고 싶다. 아무도 만나지 않을 수 있는 어딘가로. 무엇에도 시달리지 않을 수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어딘가로.
씻기울수록 추하게 드러나는 것과 머금을수록 아름답게 짙어지는 것.
우리가 조금 더 과감하게 이 세상을 뒤집어버리거나, 과감하게 사라져버리기라도 했다면 세상이 지금과는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너무 작고, 연약하고, 무지하고, 불완전하니까. 행복했던 순간들이 있었고, 그 시간들이 좋았다.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버텼던 거라고 생각한다. 나를 행복하게 했던...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여기는 몇 겹의 차원으로 연결되어 있는 걸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몇 겹의 우주로 둘러싸여 있을까, 몇 겹의 우주를 품고 있을까. 잠겨 있던 생각이 조금씩 깨어난다. 어디로도 연결되지 못할지 모르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삶은 드라마같기도 하고, 또 드라마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무언가이기도 하다는 그런. 살면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같은 악역들은 봤는데, 드라마처럼 정의구현하는 주인공은 어디서도 보질 못했네. 드라마처럼 세상이 깨어지는 순간들은 종종 찾아오지만, 드라마처럼 세상을 되찾는 순간은 한번도 만나지 못한 것처럼. 잃어버린 것들은 이미 죽어버린...
나는 아주 많이 울었다. 너무 울어서 어깨 위로 달린 모든 것이 터질듯이 아팠다. 울다 지쳐서 눈물이 그치고,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아서 침대에서 계속 뒹굴었다. 언제 잠들었는지 정신을 차려 보니 날이 밝아 있었다. 오늘 중으로 픽업해와야 할 것이 있어서,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 세수를 하고 거울을 봤더니 눈이 퉁퉁 부어서 반토막이 되어 있었다. 도저히 그 꼴...
진실과 거짓의 구분은 어떤 경우엔 별 의미를 갖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온전한 진실도, 온전한 거짓도 아닌 수많은 의미들이 존재하니까.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실뿐인지도 모른다. 판단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사실. 그조차도 모호해지는 순간들이 존재하지만.
믿고 의지했던 사람들이 보여준 모습들이, 정확히 말하면 내가 믿었던 모습들이 다 거짓이었고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프다. 난 대체 뭘 했던걸까.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사실은 나를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있었던 것인지 깨달은 순간부터 마지막 한 줌 남은 최후의 인류애마저 부스러져버렸다. 전혀 다른 관계란 걸 알면서도 다른 친구들과의...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내 스무살, 내 청춘. 끝났다. 이젠 정말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 나는 이제 조금 나이들었고, 이전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고, 조금 다른 시간을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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