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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는 민석의 제안으로 부서를 옮겼다. 특출난 재능도, 받아온 훈련도 없던 경수였기에 보안팀의 업무 역시 버거울 테지만, 최대한 총과 발포음을 마주할 일이 없도록 한 배려였다. 하나, 아무리 그러한들 그 흔적과 근접해있는 이 본부에 적응하기에는 꽤 많은 힘이 들 거다. 버틴다고, 감당해본다고 했는데 어쩌면 버티지 못할 지도 몰랐다. 파편에 아스러지는 뇌중은...
나를 사랑한다면, 나를 구원해 “변백현!!!!!!” 폭파음에 무참히 짓밟힌 도청기는 소리를 단절 시켜 버렸다. 경수가 목청의 한계를 넘어선 부름을 간절히 외쳤다. 그마저도 그 한마디가 다여서. 고작 변백현 석 자가 다여서. 목이 멘 울음이 낭랑하고, 상실을 부정하는 육체가 떨리고, 허탈에 잠식되는 의식이 점멸되어 겨우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백현의 이름을 불...
철컹-, 신경을 자극하는 쇳소리가 반동이 일은 몸과 마찰을 일으켰다. 의식을 되찾자마자 곧추선 몸은 더 나아가질 못하여 바닥을 기었고, 차가운 감촉이 감싼 손목은 아렸다. 씨발. 백현이 욕을 짓씹으며 저를 얽맨 장애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철봉과 나누어 낀 수갑 하나가 백현의 움직임을 따라 부산스러운 소음을 내고 있었다. 백현은 그제야 저를 가둔 옥이 취...
조직원이 에이전트의 존재는 배제한 채, 경수가 조직원의 신분으로 잠입을 했다며 거짓 진술을 했다. 하물며 경수가 잠입한 이유가 삼 년 전부터 시작된 증오라는 것이 들통났다. 준면이 미뤄놓았던 진술이 강행된 거다. 결정 권한이 대게 제게 있기에 조금의 시간이라도 벌어놓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늘, 이 정도로 속행된 거 보면 상부의 압력이 넣어진 게 분명했다....
걷는 디딤의 울림소리는 외롭지 않았다. 늘 제 지표를 따라, 고독하게 맞물리던 마찰 소리가 나란한 걸음으로 어울리고 있었다. 당연해서 단 한 번도 신경 써 본 적 없던 발걸음 소리가 오늘은 그렇게 귀를 자극했다. 하물며 피부에 닿는 이 공기도, 거칠었던 살결을 부드럽게 감싸오는 이 온기도 유난히 자극적이어서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 백현과 손을 맞잡고 나란...
“윽….” 굳게 다문 입술 사이를 비집어 신음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경수를 끌어안았던 너른 품이 쓰러졌다. 제게 온전히 몸을 실어 오는 백현에 당황한 경수가 황급히 백현의 양 어깨를 붙들었다. 좁혀졌던 거리를 벌려보니 힘없는 고개가 휘청였다. 불안하게 감긴 눈, 메마른 살갗을 적신 식은 땀과 핏기 하나 돌지 않는 피부. 여태 인내하던 고통을 더는 견디지 ...
그냥 네 욕심인 거 아니야? 으레 단언하기를, 부정했어야 했다. 그럴 수 없다고, 지극히 역설적인 문장에 비웃음이라도 뱉어줬어야 했다. 그래야 입안 가득 비린 맛이 돌더라도 삼켰던 온화한 단어들을, 기도가 긁혀 쓰라린 통증에도 꾹꾹 감춰냈던 애달픈 심정을, 결코 전해서는 안될, 닿아서도 안되며 들춰낼 수도 없는 고백의 감정을 고작 미련이라 치부하며 보낸 것...
살고 싶었다. 이 추운 겨울을 너머 피어난 봄꽃의 향기와 점차 농익어 우거진 녹음, 건조한 바람에 스치는 낙엽과 그를 포근히 덮어준 순백의 눈꽃을 보며 살아가고 싶었다. 큰 욕심 하나 없이, 그저 그렇게, 평범하게. 고작 그거 하나 허락되지 않는 운명은, 왜 이렇게 비참해야만 했을까. 가히 친절하게도 저격수가 누군지 알려준 탓에 아는 것이라곤 이름 석 자와...
“내 말 듣고 있어?” 준면의 말에 반응한 경수가 임무의 정보를 훑어 내려가던 시선을 들었다. 그러나 준면은 경수를 향해 한 말이 아닌 듯, 가늘게 뜬 눈으로 백현을 보고 있었다. 짙은 흑색 머릿결이 중력에 이끌려 낙하할 듯 흔들리고, 반쯤 감긴 눈꺼풀에 덮인 눈동자는 계속해서 서류에 박혀 있는 것이, 집중을 한 탓인지 잡념에 잠긴 탓인지 잘 분간되지 않았...
우윽-! 몇번째인지 모를 구토는 이제 식도를 타고 위염만을 내보낼 뿐이었다. 타들어 가는 목을 부여잡고 변기통에 고개를 박던 경수가 잔뜩 떨리는 팔을 들어 물을 내려보냈다. 몸을 지탱할 힘도 다 빠져나간 터라 몸을 일으켜 세면대를 붙잡는 것조차 쥐어짜 낸 여력이었다. 거세게 쏟아지는 물줄기를 담아 헐어버린 입 안을 몇 번 헹구기를, 신맛과 쓴맛이 다 씻겨나...
그날은 아침부터 찝찝했다. 평소와 같던 잠자리가 유독 가시 박힌 듯했고, 유난히 건조한 목은 잔기침을 계속해서 뱉었다. 물의 목 넘김조차 부드럽지 못해 감기인 듯싶었지만 아니었다. 어쩌면 감기 핑계를 대고 싶었는지 모른다. 손의 떨림과 집중력에 있어 감기가 치명적인 저격수에게 감기가 절실했던 건지도 모른다. 하거늘, 얼마 지나지 않아 도로 가벼워지는 몸에 ...
씨발. 씨발. 씨발! 몇번이고 삼킨 욕이 기도를 도려내는 듯하다. 이 통증은 그대로 타고 올라와 머리를 계속해서 쑤셨다. 경수가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들어찬 생각도, 그에 동반된 이질적인 이 감정도 모두 떨쳐내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뇌리에 박혀버린 생각은 좀처럼 떨쳐지지 않았다. 남아버린 잔해가 엿 같은 온도를 양분 삼아 퍼지고 또 퍼져 결코 지워지지...
“닥치라고 개자식아!!” 본부 내에 아스러지는 파장을 동반한 목소리가 들어찼다. 그에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한 준면이 제 관자놀이를 짚었다. 한껏 격양된 목소리의 근원지는 분명 먼 발치에 있거늘, 어째 머릿속까지 웅웅- 울리는 기분이었다. 폐부 깊숙한 곳까지 가득찬 숨은 답답함을 못 이겨 기도를 비집고 나왔다. 금방이라도 살의를 담을 것만 같은 저...
“도경수가 온다고?” 제 총을 정리하던 백현이 뒤를 돌아 준면을 응시했다. 작금의 준면의 말이 신뢰가 가지 않는 다는 눈빛이었다. 되묻는 와중에도 제가 잘 못 듣지는 않았을까 하는 의문까지 들었다. 그런 백현의 반응에 준면이 가볍게 어깨를 들썩였다. 새벽에 와 있던 문자에 준면도 의아할 참이었다. 모르는 번호가 찍혀있건만, 제 번호는 철저히 조직 내에서만 ...
경수가 떠난 지도 한참이거늘, 백현은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었다. 나직하게 감았다 뜨는 눈꺼풀 사이로 드러난 것은 흔들림 없는 눈동자이지만, 어느 빛도 받지 못한 채 시들어 있었다. 찬 바람도 아무런 저항 없이 맞으며 피부를 뚫는 고통을 감내하는 백현이 잇새를 물었다. 공포를 직시한 눈빛, 무력함에 조인 숨통을 안고 저를 보던 경수가 머릿속에서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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