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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병은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항상 파악하고 있어야 하고, 이상이 있을 경우 바로 소령에게 보고해야 하는 보직이었다. 샤인과 또 다른 상황병이 교대로 일을 한다고 했다. 출항하고 나서 한참 뒤에 여유가 생기고 나서야 비로소 나와 샤인 일병은 뒤늦게 제대로 된 인사를 나누었다. “재입대한거야?” 반말을 쓰려니 조금 어색했다. “예. 그렇습니다. 그동...
얼마가 지나자 나는 소령과 관련된 기억을 담담하게 지나쳐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 얼마라는 게 사실 생각보다 긴 시간이었지만 말이다. 기억과는 별개로 해군 본부를 다니다가 점심, 저녁 시간에 소령과 마주칠 때면 그에게 멀쩡한 척 서로 인사를 건네느라 아주 죽을 것 같았다. 소령의 성격상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고 혼자 살겠거니 하는 사실이 위안 아닌 위안이 ...
나는 대장을 노려보았다. 그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항상 저 표정이었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 얄미웠다. 본심이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그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해서 다른 표정을 짓는 걸 보고 싶다는 충동마저 들었다. 차오르는 말을 삼키며 나는 주먹을 쥐고 뒤돌아 나왔다. 그도 나를 굳이 말리지 않았다. 며칠 뒤 트랩 대령이 은밀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
나는 휴가 마지막 날을 백수같이 보냈다. 숙소에서 늦잠을 자다가, 도시락을 사와 방 안에서 끼니를 해결했다. 문득 그동안 쓰지 않았던 노트가 생각나서, 일기마냥 노트에 이런 저런 생각을 써내려갔다. 내용은 대체로 과거에 대한 한숨 섞인 부끄러움이었다. 나는 문장을 쓰다가, 중간에 멈추고, 한숨을 푹 쉰 뒤, 쓰던 걸 지우고 다른 생각을 쓰는 것을 여러 번 ...
“…예?” 그는 순순히 답하지 않았다. 차오르는 당황스러움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내가 물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간질간질하지 않아~?” “….” “난 그 감정이 좋다고… 공돌은 안 그래~?” 볼이 화끈거렸다. 그는 난처한 상황에 처해있을 때마다 항상 내 주위에 있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단단한 벽을 세워두고 있었다. 물론 이전부터 막연...
한참 뒤에 천천히 긴장이 풀리자 몸에 힘이 빠지고 주변이 차츰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 넓은 의료동의 사람들이 나를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가서 할 일 하라는 대장의 말에 근처에 있던 의사 두어 명이 머뭇거리며 떠나갔다. 반대로 나를 향해 빠르게 달려오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눈물로 흐려진 시선을 들어 그쪽을 바라보았다. 제대로 보이지는 않아도 정보부장의 ...
또 다른 기억이 느닷없이 떠올랐다. 키자루 대장을 만나고 서류 배달을 마친 뒤 지통실로 돌아가는 길에서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걸음을 멈췄다. 기억 속 나는 과학부대의 내 방 안에서 대장에게 안겨있었다.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왜? 머리를 더 굴려보려고 했지만 본능적으로 두려움이 밀려들어와 생각을 멈췄다. 무엇을 하고 있었더라. 정신을 차려...
다시 며칠이 흐르고 나는 서류배달을 하러 가다 복도에서 브랑 뉴 소령을 마주쳤다. 소령을 만난 김에 해군본부 정원 구석에서 담배를 태우며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주에 아오키지 대장이 저를 불렀습니다.” 그의 고개는 정원의 풍경을 향해있었다. 나는 말을 이어갔다. “지금처럼 살다가는 도구처럼 휘둘리며 살 거라고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소령은 그...
트랩 대령은 첫날 내게 군사지도를 보여주더니 오늘 내로 읽을 수 있도록 공부하라고 말했다. 그 어마어마한 군대부호 종류를 보고 한숨을 쉬며 외우고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대령이 나를 부르더니 물었다. “이제 다 외웠겠지?” “반의반도 못 외웠습니다.” “이거 실망이네. 십 분 줬으면 부호는 대충 다 파악하지 않았어?” “….” 지금 부호가 오십 가지는...
갑작스러운 내 연락에도 브랑 뉴 소령은 별로 놀라지 않고, 만나서 술이나 마시자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날 밤 주점 앞에서 브랑 뉴 소령을 기다렸다. 소령이 나타났을 때 나는 피식 웃어버렸다. 2년 동안 변한 게 하나도 없어보였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영혼이 없는데다가, 패션도 그대로였다. …이마가 조금 벗겨진 것만 빼면 말이지. 어쨌든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었...
이틀을 굶어버리니 몸에 힘이 없어서 머리까지는 어떻게 감아봤지만 샤워는 할 수 없었다. 씻고 나와서 짐을 싸기 시작했다. 내가 씻는 동안 대장은 도시락을 사왔다. 그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방 안에서 도시락을 뜯었다. 대장은 짐을 다 싸면 연구소 밖으로 나오라고 하고는 먼저 방 밖으로 나갔다. 그는 문을 닫고 가려고 했지만 부서진 문은 다시 힘없이 반쯤 열...
그 뒤로 실험 구역에 차마 들어갈 수가 없었다. 42번을 다시 본다면 나는 이전의 '인간적인 특징' 을 다시 마주할 것 같았다. 과학부대에서 적응하기 위하여 그런 것들을 과감하게 버린 나로선 그것들을 다시 들여다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두려웠다. 이미 복제인간 빼고는 실험 대상의 실험을 모두 완료한 상태였기에, 나는 시저에게 복제인간을 알아서 하라고 했다...
연구실에서의 연말은 여전히 바빴다. 사실 1월 1일이 왔는지도 몰랐다. 1월 중순쯤 지나서 컵라면을 사러 연구실 밖을 나갔다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새해가 왔다는 걸 깨달았다. 어쩐지 화장실 가러 밖으로 나갈 때마다 새로운 견습 연구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하도 많이 왔다 갔다 하더라. 노비코프라는 연구원을 알게 된 것도 그때 즈음이었다. 시저와 ...
짧지 않은 침묵이 흘렀다. 대장이 왜 입을 다물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가 무언가를 잘못했다는 직감만큼은 강하게 왔다. 그러나 뭘 잘못했단 말인가? 대장의 얼굴을 볼 수 없었기에 더욱 의문이 들었다. “음….”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공돌은 참… 무덤 파는 데에 재능이 있는 것 같네에.” “…어쨌거나 제가 원해서 지원한 일입니다.” 같은 요지의 말...
얼마 되지 않아 나와 시저는 정식 연구원이 되었다. 같이 쓰게 될 새 연구실을 배정받자 우리는 낄낄거리며 짐을 옮겼다. 이제 우리가 읽고 싶은 논문을 마음껏 읽을 수 있고, 원하는 실험을 계획하고, 생체 실험을 실시할 수 있다…! 하지만 기쁨은 별로 오래 가지 않았다. 대충 짐작했던 액수보다 훨씬 적은 수준의 연구비였다. 그걸 둘이 합쳐봤자 그게 그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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