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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 시각 카를라는 데드헤드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해가 중천일 적부터 싸웠으니 대략 3시간 여 짓 되었는데도 지친 기색 하나 없어 보였다. 지친 기색을 보이기는커녕 도리어 충분한 숙면 후 일어나 일과를 행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진다고 애꿎게 화풀이 당한 소년은 잊힌 지 오래였다. 둘만의 거주공간에 소년이라는 낯선 ...
드문드문 먹구름 낀 어느 오뉴월. 당장이라도 소나기가 쏟아질 기색인 하늘 아래, 이질적인 존재가 서 있었다. 한시바삐 움직이는 인파에 홀로 미동없이 서 있는 사람 하나. 흐릿한 세계에 홀로 덧칠해진 물감처럼 고고하게 존재감을 뽐내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그를 곁눈질로 쳐다보았지만, 각자의 삶을 연속하느라 바쁜지라 다가가 말을 거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어...
짹짹-. 쿠당탕! 한낮 외곽지 숲의 풍경을 노래하는 새소리와 온갖 식기가 내지르는 비명, 그리고... "데드헤드, 이 자식이!" 지겨울 정도로 익숙한 저음의 욕지거리.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 쥔 채로 소년이 일어나면 날 선 짜증이 소년을 관통한다. 애먼 화풀이야 익숙하지만 이대로 있다간 등이 시큰거리는 상태로 쫓겨날 것이다. 그러기 전에 자진해서 자리를 피...
카를라 빈센테의 삶은 한 편의 느와르 영화 같았다. 지저분하고 평범에서 벗어난 일상이 당연한 하루가 태반인 암울한 세계에서 살다보면 어떤 상황에 놓여도 금세 감흥이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반짝이지만 그곳에 존재하는 빛이지 나를 비추는 빛이 아닐뿐더러, 인조적인 빛에 오랫동안 노출되다보면 본래 그 빛이 모방했던 자연적인 빛을 볼 수 없는 몸이...
어느 여자가 있었다. 어리석은 인간상을 곧 대로 본뜬 듯한 행동을 하는, 가엾은 인간을 비웃던 여자가 있었다. 이 여자는 인간, 더 나아가 한 생명이라면 마땅히 누릴 것을 결핍된 채로 산 결과, 숨 쉬듯 타인을 짓밟고 비웃었다. 타인을 상처입히는 게 무엇보다 쉬웠던 이는 해가 갈수록 존재 자체로 마녀라 불러 마땅할 지경이었다. 불규칙한 걸음은 새 생명을 으...
자신이 경험해보지도 못 한 과거를 기억한다는 건 단순히 보아 편리해 보이지만 실상은 스스로를 구속하는 눈과 다를 바 없었다. 평생을 폭설에 휘말려 살아온 이는 자신의 발목을 감싼 눈이 싫었다. 과거에는 제 목턱까지 오더니 자라날 수록 그 높이는 비교적 낮아져 발목을 감싸는 정도에 이르렀지만 눈이 없는 땅을 밟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자신이 자라더라도 이 ...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태복음 23;33) 어느 여자가 있었다. 그는 지옥에 가는 게 아닌 그곳이 고향 그 자체인 악마 혹은, 더러운 것들을 부리는 마녀라는 소문이 자자할 만큼 평판이 흉흉한 사람이었다.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데 거리낌이 없었으며, 쾌락이 인생의 목표인냥 구는 통에 마을에서 고립된지 오래되었다. 모두가...
아가씨, 무슨 일이 있어도 검은 머리의 사람을 들이지 마세요. 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면 언제든 내칠 수 있도록 거리를 두셔야해요. 아시겠나요? 그러지 않는다면... 탐스럽게 핀 꽃에 벌이 꼬이듯 어릴 적부터 온갖 사람이 접근해온 탓에 그 아가씨에게 내려진 주의문은 수없이 많았으나 핵심은 지겨울 정도로 한결같았다. '사람을 믿지 마세요. 그 중에서도 ...
사랑하는 ■■이 죽었다.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이건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머뭇거리게 되는 일이라 그는 처음으로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보낼 때에는 무력함과 괴로움, 분노에 매몰되어 몇날 며칠을 눈물로 지새웠다. 그럼에도 미래를 바라보고 현재를 살아가야 하는 게 바로 사람인지라 또다른 사랑하는 이들의 목숨을 등에 짊어지고 나아...
일그 일그러지고 흐려져 눈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방금까지 붙잡았던 손도, 말을 삼킨 목도, 눈물이 터져나오는 머리도 전부 뜨거웠다. 아, 두 다리로 올곧게 서있는 것마저 힘이 부친다. 그것은 비단 내가 그래서는 아니 되는 인간일 뿐만이 아니라, 나 역시도 네 잔잔함을 헤치고 말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다분히도 다정하게 살았고, 온기를 나눠주었는데도...
아이린 H. 퍼디난드는 다소 엄격한 구석이 있었지만 그 본질은 무르다 싶을 만큼 타인을 위하는 면이 있었다. 이는 천성이 그러기도 했지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릇된 일을 범하지 않도록 어린 시절부터 철저히 교육받은 영향이었다. 퍼디난드 가문은 대대로 교육기관에 가기 전, 가문의 이념을 숙지하도록 하였다. 가문을 비롯한 에덴의 '평화'를 지킬 것. 그 교육을...
톡, 톡톡. 야심한 밤, 모두가 잠들 무렵 경쾌하게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잦아들어가던 방을 일깨우고 이 시간에야 찾아오는 손님이 물러갔다. 기껏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려 했건만 영 쌩뚱맞은 손님이 찾아와 창문 밖으로 빼꼼 고개를 내미니 손님이되 손님아닌 이가 반갑게 눈꼬리를 접으며 서있었다. 그가 거기 있는 이유는 명료해 구태여 앞뒤 사정을 듣지 않아도...
마녀(魔女: Witch), 위대한 존재로 인해 만들어진 권속. 혹은, 어느 사교단이 만들어 낸 존재. 꿈 속에서 자신에 대한 과거와 미래를 볼 수 있으며 불로불사의 주를 받아 이 부조리하고도 지루한 세계에서 미개한 것들에게 배척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 영원한 불행은 없어 마녀끼리는 서로를 살해하여 끝맺음을 지어주고는 했지만 심장이 없는 주제에 사랑을 노...
사랑하는 나의 친구, 파랑새, 퓨레. 칭하는 이름은 다양하지만 그것이 가리키는 존재는 언제나 하나였다. 까마득한 과거부터 내 곁을 지켜와준 그 사람. 상냥해서라고 말하기에 너무도 무른 그의 성정을 잘 알고 있었기에 쉬이 응석부려 서로의 등을 맞댄 온기에 잠든 밤이 숱하였다. 누군가 제 곁을 지켜주고 있다는 건 생각보다 더 큰 위안이 되었고 위안받은 마음은 ...
안녕하세요, 에티입니다. 오늘 이 편지를 적어내리는 건 평상시와 별 다를 바 없는 버릇때문이기도 하지만 깜짝 놀랄만한 일이 있어 기록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전달보다 기록을 위한 것이니 개인적인 감상은 최대한 뺀 담백한 글이 될 수 있도록 검수하여 보냅니다. 들판에 피어난 무수한 꽃과 같이 세상에는 기이한 일이 많아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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