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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머무는 곳이 곧 집이라는 인간들의 표현이 있다. 아지라파엘은 그 표현을 좋아했다. 인간들은 그들의 한정적인 언어로 멋진 말을 만들어내는 데 재주가 있단 말이지. 그것은 그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였고, 연극을 좋아하는 이유였고, 인간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들은 형언할 수 없을 것만 같던 감정들을 짧고 간결한 언어의 차원으로 끌어내리는 능력이 ...
모든 것의 시작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크롤리는 아직도 그 순간을 기억했다. 그는 어느 순간 존재하기 시작했다. 눈을 떠 보니 깊은 무(無) 속이었다. 그에게는 육신이 없었기에 그 자신이 어디서 시작하고 끝나는지, 무(無)는 어디서 시작하고 끝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모든 것이자 아무 것도 아닌 것과 하나였다. 목소리가 들려 오기 전에는. "—." 그리...
크롤리가 아지라파엘을 다시 만났을 때 가장 먼저 인지한 것은 그의 보라색 눈이었다. 빛에 따라 푸른색, 녹색이, 심지어 회색까지도 아른거리던 아지라파엘의 원래 눈동자와 달리 천사장의 권능을 상징하는 보라색 눈동자는 제 스스로 광원이 되어 번쩍이는 빛을 내뿜을 뿐이었다. 그 빛에 심사가 뒤틀렸다. 그러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안녕, ...
크롤리는 울지 않았다. 울 수가 없었다. 너무 슬프면 눈물도 안 나온다는 인간들의 말은 사실이었나 보다. 그 대신 울어 주는 것은 그의 머리 위에 모여든 구름이었다. 굵은 빗방울이 벤틀리의 지붕을 불규칙적으로 때렸다. 비가 오는 날이면 퀸의 Rain Must Fall을 빗소리보다 크게 불러 대곤 했던 라디오도, 물을 찾아 목을 뻗던 식물들도 오늘은 조용했다...
<장마와 함께 찾아온 악마> "천사야, 나 왔어!" 크롤리의 목소리에 아지라파엘은 기다렸다는 듯 서점 안쪽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평소같으면 음식 냄새로 가득할 소호의 공기 중에 물기를 머금은 흙내가 풍기는 새벽이면 그는 오래된 책의 향이 밴 장롱에서 린넨 침대 시트를 꺼내어 먼지를 털고 2층의 침실에 체크무늬 파자마를 가져다 놓았다. 그만큼...
여름의 끝자락에 접어들어 한산해진 주변 탓에 바닷물과 모래의 속삭임만 쟁쟁 귓가에 울린다. 나는 백사장에 앉아 있었다. 바다를 바라보며. 이마 위로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 넘기자 바람이 몰고 온 습기와 소금기가 나 대신 머리칼을 고정해 준다. 바닷바람은 벌써 시리다. 민트 아이스크림을 한 입 가득 베어 물었을 때처럼 볼 안쪽을 차게 식히는, 그 신선한 가을...
"행운을 빌어요, 로스 요원." 귓가에 울리는 슈리의 목소리에 에버렛은 입꼬리 한쪽을 끌어올려 보였다. "간단한 미션이에요. 운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그를 만나본 적 없잖아요. 아마 10분 안에 당신네들의 신을 찾게 될걸요." 그녀가 말했다. "자, 이제 거의 도착했어요. 다시 한 번, 행운을 빌어요. 이번에는 거절하지 마세요." 에버렛 로스를 ...
3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자화자찬을 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지만 오히려 마음이 따뜻한 편에 속한다고 자신할 수도 있다. 내게 직업 전선에 당장 뛰어들지 않고도 생활을 영위할 수단이 있었다면, 아니, 그 일만 없었더라면, 일이 이렇게 되지만 않았더라면 나는 어떻게든 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을 테고, 한번 시작한 일은 이를 악물고 끝마쳤을 테...
런던의 여름은 더운 축에 속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프가니스탄에 다녀온 군의관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비행기에 연결된 제트브릿지를 건너던 순간 그를 덮쳐 오던 뜨겁고 무거운 공기를 기억했고, 그늘에서 벗어날 때마다 살갗을 찌르던 수만 개의 바늘들을 기억했다. 어떤 날들에는 그 열기가 그리웠던 것도 같다. 살을 에는 습한 바람이 뼈의 마디마디에 달라붙는 겨울...
왼쪽으로 두 발짝. 잠시 멈췄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한 발짝. 녹조로 가득 찬 수조 속에서 희끄무레한 인영이 나의 모든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했다. 이것도 따라하려나? 앞으로 한 걸음 훌쩍 걸어 수조에 바투 붙자 인영은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놀란 듯 조금 물러섰다가 춤을 추듯 유려한 움직임으로 내게 다가왔다. 탁한 물 너머로 얼굴 하나가 떠오른다. 호기심과 경...
어렸을 적 나는 지금보다 더 미숙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에 더 심하게 도취되어 있었다. 내 머릿속에서 나는 거대한 영화의 주인공이었다. 세상 모든 존재가 나를 돕는 것 같을 때면 나는 세상을 구할 영웅이었고, 내가 맞닥뜨리는 모든 어려움은 성장을 위한 시련이었으며, 태양은 나만의 조명이었고, 달은 나의 고뇌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빈번하게는 절망감...
트리거 워닝: 필자의 개인적 의견과는 무관한 우생학적 서술 '왜?'라는 질문 붉은기가 도는 머리카락은 열성 인자에 의해 나타난다. 열성 인자가 반드시 열등함을 불러온다는 오해는 이제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조차도 슬금슬금 자취를 감추는 중이지만 붉은 머리에 관한 수많은 연구는 그와는 상반된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머리카락을 붉은색으로 물들이는 색소인 페오멜라닌은...
비가 오고 있었다. 물먹은 솜이 온 몸을 칭칭 감고 있는 느낌이었다. 팔을 뻗어 휘휘 젓자 새벽녘 벗어 아무렇게나 바닥에 던져 두었던 티셔츠가 손끝에 걸렸다. 셜록 홈즈는 낚시라도 하듯 그것을 끌어올렸다. 회색 면 티셔츠는 뒤집혀 상표를 드러낸 채였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팔을 꿰었다. 옷을 제대로 입지 않은 탓에 우글우글 말려 올라간 천이 침대의 표면과...
(셜존 약간, 사탄프리들은 더 조금) 덜 다물린 커튼 사이로 거리의 빛이 새어 들어왔다. 빛은 일직선을 그리지 않고 천장, 몰딩, 벽을 따라 꺾였다. 실금 같은 빛은 어둠을 몰아내기에 불충분했고, 그것이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방 안 물체들의 희미한 윤곽선을 드러내는 정도뿐이었다. 습기를 머금어 팽창한 나무 가구가 뒤틀리며 총성과도 같은, 갑작스러운 파열음...
2 다음 날 아침, 허드슨 부인은 나를 이끌고 다니며 집의 이곳저곳을 구경시켜 주었다. 그녀의 부산스러운 움직임과는 대비되게 집의 대부분은 침울하게 느껴질 정도로 정적이었다. 저택치고는 조금 작다는 나의 이 집에 대한 첫인상이 무색했다. 머스그레이브는 한 사람이 살기에는 지나치게 거대했기에. 대부분의 방들이 비슷한 상태였지만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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