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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이 시릴 정도로 추운 겨울날이었다. 스케줄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치아키는 눈앞의 광경에 입 다물 줄 모르고 뒷걸음질쳤다. 굳게 닫힌 집 문 앞에 익숙한 얼굴이 있어. 오늘로부터 일 년쯤 잠적을 감췄던 신카이 카나타였다. 졸업식 이후 제 마음을 고백하고 이어져, 행복한 미래를 그리던 중에 느닷없이 '모든 걸 잠시 내려놓고 제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간...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는, 언제나와 같은 저녁이었어요. 저는 치아키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아침 스케줄이 끝나고, 잠시 어디에 들러야 한다던 그 애가 시곗바늘이 일곱 시를 가리킬 때까지도 오지 않았어요. 평소에는 언제 도착할 거다, 라고 문자를 해주지만 오늘은 달랐어요. 치아키가 없으면, 저는 어쩐지 숨이 막혀와요. 이 지상에는 이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 웹 가독성을 위해 문단 간 띄어쓰기가 되어있습니다. *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일기로 구성되었습니다. n년차 부부 카나타와 치아키. 신카이 아이코. 애칭 아이쨩. 머리색도 눈 색도 치아키를 꼭 빼닮았다. 치아키는 카나타의 색이 하나도 섞이지 않아 조금 슬퍼했지만, 카나타는 울며 기뻐했다. 신카이 가문의 피가 섞여, 혹여나 다음 대의 현신으로 ...
봄이라 그런가. 곧 여름이 오는 후덥지근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어서 인가. 카나타는 좀처럼 맥을 못 추고 늘어져 있었다. 치아키가 덥석덥석 끌어안거나, 무언가 하자고 말해도 시큰둥, 이래도 시큰둥. 둘이서 이 집에서 지낸 지도 어언 삼 년 째. 이렇게나 기운이 없는 카나타를 본 건 처음이다. 어제는 같이 물놀이를 하자고 했는데 거절당해버렸지. 그게 제일 충격...
제가 언제까지 속아줄 거라고 생각했나요. 카나타는 그렇게 말하며 치아키의 어깨를 우악스럽게 붙잡아 제 쪽으로 서게 했다. 힘든 일이 있으면, 이제 둘이니 함께 헤쳐나가자고 했으면서. … 속이 곪아 터져버릴 정도로 우울해져 있다니. 그는 화난 얼굴이었다. 치아키는 붙잡힌 어깨를 추욱 늘어뜨린 채로, 카나타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쥐죽은 듯 있었다. 모두가 나...
"앞으로 열흘 동안은 스킨십 금지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수영복 광고가 있어." 라고 말하면, 카나타는 추욱 늘어져서 울망울망한 눈이 되었지만 나는 지지 않았다. 수영복 광고를 찍으려면 그 외에는 모두 벗어야 하는데, 카나타랑 몸을 맞대면 모르는 새에 이곳저곳 자국이 남아 큰일 날 게 분명했거든. 한참 부루퉁해있던 카나타가 '뭐예요, 그럼 수영복으로 가려지...
푹푹 찌는 초여름 날의 휴일. 카나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 어디에 가느냐고 묻는 치아키에게 '옥상이요!' 라 소리치며 발 바쁘게 계단을 오르는 아이. 치아키는 별수 없이 그 뒤를 쪼르르 따라 올랐다. 푸른색의 굵직한 호스를 들고, 수도꼭지를 끝까지 돌려 왈칵 쏟아지는 물줄기를 옥상 전체에 촤악, 촤악 뿌리더니만 얌전히 접어두었...
유성대의 해외 공연을 위해 올라탄 비행기 안. 이륙 때부터 '귀가 멍멍해요.' '숨이 막혀요.' '떨어질 것 같아요.' 상태가 영 나빠 보이던 카나타가 한순간 손을 뻗어 옆자리의 치아키를 답삭 붙잡았다. 위에서 아래로 수직 낙하하는 놀이기구는 눈 한 번 깜짝 않고 잘만 타던 녀석이, 비행기 안에서는 어딘가 붙잡지 않으면! 이란 표정으로 다급하게 손을 파닥거...
수천 년 동안 당신이 태어날 그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잠들어버린 밤에도 저는 당신을 바라며 하늘에게, 별님에게, 바다에게 열심히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신님이나, 당신을 지금 당장 곁으로 불러낼 만큼 대단한 힘 따위가 없었기에 이렇게 손바닥이 따가울 정도로 비비적대며 빌고 있는 거랍니다. 저는 영생을 가진 신님. 인간을 좋아해 ...
* 웹 가독성을 위해 문단 간 띄어쓰기가 되어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카나타입니다. 요즈음은 작은 고민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제 연인인 『모리사와 치아키』 에 대한 거예요. 이슬비가 내리던 일주일 전의 하굣길, 치아키는 노을처럼 빨간 얼굴을 하곤 제게 ‘좋아한다’ 고 고백했습니다. 오래전부터 저를 좋아했지만, 자기 마음이 정말인지 고민할 시간이 필요해서 미...
"카오루,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무얼 하면 좋은가요?" "응? 러브 레터 같은 걸 쓰면 되지 않으려나." "『러브 레터』 … 사랑을 담은 편지인가요?" "응. 카나타 군,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거야?" "네, 그래요. 하지만 좋아해요, 라고 몇 번이나 말해도 전해지지 않아서요." "하하, 카나타 군의 '좋아요' 라면 뻔하지. 초밥이 좋아요, 물고기가 좋아요,...
카나타는 환한 햇살이 쏟아져 내리는 창가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노오란 레몬 장식이 꼽힌 유리잔. 푸른색의 음료. 빨대를 빙글빙글 돌리며 장난치고 있는 모습. 치아키는 입구에서부터 시선을 잡아끄는 푸른 머리의 제 연인의 이름을 크게 부르려다 멈췄다. 잠시 제자리에 서서 그를 바라본다. 어느새 카나타는 턱을 괸 채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네가 보고 ...
열도 없고, 기침도 나지 않고, 잠이 오는 것도 아닌데 몸도 눈꺼풀도 무거운 날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날을 『바다에 빠진 날』 이라 부르곤 해요. 그리고 오늘은 바다에 빠진 날이랍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침대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았어요. 네? 어제의 일이 피곤해서 그런 게 아니냐구요? 매주 월요일이면 모두가 겪는 일과 비슷하다구요? 으응. 제게 있...
카나타는 내게 '치아키가 저의 햇님이에요.' 라며 웃었지만, 그 말을 해주고 싶은 건 이쪽이었다. 카나타를 만난 후로 내 삶의 꽤 많은 부분이 바뀌었으니까. 세상에는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는 것.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세상에 사는 ― 평생을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과 닿아 교류할 수 있다는 것. 나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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