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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샤 렌슬리어의 인생 모토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식이다. 잔치는 짧고 결과는 영원하다. 후회할 일은 애초에 하질 말아야 좋지만, 저질렀다면 책임을 지면 그만이다. 견디고 살아봐야 별 거 없다. 매일 조금씩 나눠서 행복해라. 너무 애쓸 필요 없지만, 이런 말을 들어야 할 너는 어차피 애쓸테니 잊지 말고 심호흡해라. 지금. 마지막으로: 예쁜 얼굴에 홀라당 넘어...
남작부인, 베아트리체 에스터하지가 물었다. “그래서. 그대의 판결은, 세실?” 세실 리히텐슈타인 백작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빈 술잔을 렌즈 삼아 응접실을 내다보았다. 왜곡된 풍경은 안락의자에 앉은 작은 소녀를 비추고 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소년과 소녀, 단 둘뿐이던 일행은 이제 대여섯명으로 훌쩍 불어나 있었다. 저명한 사교계 인사들과 한참 어울리고...
이 새끼, 이거 뭐지? 프란츠 하이델베르크의 공식적인 첫 인상이다. 따지면 아침의 카페가 첫 만남이니, 첫 인상도 그 순간을 기점으로 따져야 맞겠다. 그러나 사샤는 ‘옘병… 잘생기면 잘생겼다고 미리 말을 해줘야 할 거 아니야, 사람 당황스럽게시리’를 공식적인 첫 인상으로 남기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사샤에게도 지켜야 할 사회적 명예라는 게 있는 법이...
멀리 현악기 소리가 들린다. 마차에서 내린 청년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곡조에 귀를 기울였다. 머지 않아, 그들 중 하나가 확신에 찬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란체티로군.” “아니, 저 전조를 좀 들어봐. 브륀호프의 신곡인 것 같은데.” 다른 청년이 반박했다. 잘 닦아 반질거리는 구두코가 박자를 세듯 규칙적으로 까딱였다. 갓 대학 졸업장을 안은 청년들의 ...
완전히 시간 낭비다. 루퍼트 스타이번이 그 날 스물 아홉 번째로 생각했다. 비단 스타이번 한 사람만의 의견은 아니었다. 좌석을 채우고 앉은 여타 속주 대표들의 얼굴에도 정확히 같은 표정이 떠올라 있었으니까. 억누른 분노와 모욕, 한계에 가까워오는 인내가 의회의 공기를 싸늘하게 식혔다. 냉랭한 관중의 반응을 전면에 둔, 연단 위 재정부 대변인은 잘게 떨리는 ...
에스터하지 남작부인의 사교모임은 5세기 말 카르파티아 귀족문화의 가장 빛나는 보석이다. 몰락해가는 대귀족의 딸로 태어난 베아트리체 에스터하지. 그는 결혼시장에 나서기가 무섭게 비록 그 명성은 보잘것없으나 재산만은 왕족 부럽지 않은 부유한 남작과 결혼했다. 그러나 신혼의 단꿈에 젖어보기도 전에, 오호 통재라. 공적에 눈에 멀어 팔자에도 없는 전쟁에 나간 남편...
“손님, 잼을 좀 더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아가씨, 빵 좀 더 드시겠어요?” “응, 고마워.” 사샤는 아침부터 카페에서 우유를 홀짝이고 있었다. 돈이 썩어나는 대귀족들이야 대궐같은 저택에서 아침식사를 즐기겠지만, 수도의 다른 시민들은 사정이 달랐다. 상인들과 법조인들, 학자들과 하급 장교들, 가진 건 자존심뿐인 소귀족과 자신밖엔 믿을 것이 없는 신흥 ...
구대륙으로 향하는 배의 갑판에서, 사샤 렌슬리어가 생각한다. 그립다. 영구치가 빠진 것처럼 지독하게 시리고 그립다. 델타, 루프트한자, 에어프랑스와 대한항공이. 물론, 사샤는 이 배가 동시대에서 가장 쾌적한 여객선임을 똑똑히 알았다. 돈을 아끼지 않은 루퍼트나 해리엇에게 불평할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허나 역사가 증언하기를, 인류사의 모든 혁명과 반동은 앎...
가을. 의원저의 주말 저녁은 평화로웠다. 그 날은 달에 한 번 저택을 찾는 스타이번 의원의 동생이 방문한 날이었다. 해리엇 스타이번은 이웃한 속주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독신여성이었다. 해리엇에겐 외출을 보고해야 할 이가 없는 만큼이나 돈을 나누어 쓸 이 또한 없었기에, 사샤가 어릴 적 읽었던 수많은 책의 절반은 그의 선물이었다. 해리엇이 옆동네의 시시콜콜한 ...
“애들은 너무 빨리 커.” 이불보를 널다말고 니콜라가 한탄했다. 셔츠를 개던 넬리도 덩달아 한숨을 쉬었다. “누가 아니래요. 전 아직도 말예요, 우리 애기씨가 조-만치서 아장-아장 걸어오셔선,” 넬리가 아련하게 회상했다. “딱 요, 요기 요 풀잎만한 손으로 저한테 이름 좀 써달라고 조르시던 기억이 생생한데요!” 그날 넬리가 ‘이름을 써준’ 서류는 의원저 사...
식민지는 잃을 것이 없는 자들의 땅이다. 한번이라도 식민지에 가 보았느냐 물으면, 카르파티아의 귀족들은 악취라도 맡은마냥 코를 찡그렸다. 식민지? 아, 속주 말이오? 범죄자들의 소굴이잖소. 온갖 빈민들이 득시글댄다던데. 그리 품위없는 동네에 무엇하러 직접 발을 들이겠소? 상인들이나 보내면 그만이지. 아, 그건 그렇고. 이 담뱃잎 피워보셨소? 스타이번 속주에...
알렉산드라 사샤 렌슬리어는 비범한 아이였다. 스타이번 의원저의 사용인들이 내린 결론이다. 사샤가 키우기 어려운 아이였다는 뜻은 아니다. 정반대지. 사샤 렌슬리어는 공식적으로 ‘스타이번 의원저 일동이 길러내기에 가장 수월했던 아이’였다. 정말이다. 증명서도 있거든? (다섯살의 사샤는 문제의 증명서를 들고 저택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사용인들의 서명을 받아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평생 영국 요리만 먹고 살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그게 알렉산드라 ‘사샤’ 렌슬리어의 첫번째 생각이었다. 글쎄, 따지고 보면 식중독으로 죽었던 건 브르타뉴에서였지만…. 잿빛 눈을 깜빡이며, 사샤가 이어 생각했다. 적어도 그 삶에서의 마지막 음식은 제대로 양념해 익힌 라뇨 프레살레였다. 최후의 만찬으로 제법 괜찮은 메뉴였단 말이지. ...
친애하는 독자 여러분, 한국은 어느덧 입추가 지나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들었습니다. 가내 두루 평안하신지요? 요청해주신 독자님이 계셔서 창작 작품인 <죽은 왕녀를 위한 행진곡>을 공개로 전환하였습니다. 연재 지속을 약속드릴 수는 없지만, 이미 공개했었던 작품이니만큼 홀로 품고 있는 것보다야 한 분께라도 더 기쁨을 드릴 수 있다면 좋은...
안녕하세요, 1. 본 작품은 미 동부시(EST) 기준 7월 31일에서 8월 1일로 넘어가는 자정에 연재처에서 습작 처리됩니다. 한국 표준시(KST)로는 8월 1일 오후 1시인 점 참고 부탁드립니다. 다음 공개일은 아직 예정된 바 없습니다. 2. 본작 외에 연재하던 창작 작품 <죽은 왕녀...>의 경우, 일신상의 사유로 중단하였습니다. 프리마베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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