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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급한 결정이었다. 인스타 팔로워가 1만 명은 커녕 1천 명도, 아니 지금은 겨우 넘긴 400명도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메일링 서비스를 기획했다.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는 프로젝트니까, 주변의 다른 작가님들도 한 번씩은 해보는 것 같아서 어렵지 않게 느껴졌던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재밌어 보이거나 심심하다는 생각으로만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나는 ...
이 글을 나의 반려자이자 모국어가 한국어가 아닌 R이 읽으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번역기 없이 이걸 읽고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테니 당분간 걱정할 일은 아니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늘 다루려는 주제가 바로 이 문제이기도 하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나이에 비해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구한 언어 실력. 그 간극이 주는 묘한 ...
“너는 장점이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거잖아. 그게 참 부럽다.” 나의 첫 책인 <지워지는 나를 지키는 일> 예약 구매자를 모집할 때, 내가 용기 내어 동아리 단톡방에 올린 홍보글을 보고 한 선배가 전해준 말이었다. 때로는 타인의 시선에 비친 나를 보며 나도 모르던 뜻밖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시작을 잘한다’는 것이 나의 특징, 그것도 ...
금기와도 같은 질문이었다.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해 주는 사람의 가족이라면 나 역시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어야 하니까. 하지만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아무런 말도 걸지 않고, 둘만 남겨질 때면 게임기에 빨려 들어갈 듯 열중하는 사람에게 일주일 만에 마음을 여는 건 솔직히 말해 쉽지 않았다. 서운함을 느끼거나 보챌 수 있을 정도로 친하지도 않았다. 이런 ...
반려자인 R의 동생을 처음 만난 건 작년 여름이었다. 그는 열다섯 살, 수줍음은 많고 말수는 적은 성격이라고 했다. R은 끔찍이 아끼는 동생을 오랜만에 만날 생각에 비행기표를 끊은 날부터 노래를 부르고 다녔고, 나는 수시로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R의 나머지 가족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동생은 나에게 있어 R의 가족을 대표하는 외교관과 같았으니까. 그를 ...
***2022년 12월 말에 적은 글입니다. 매년 이맘때 광화문 교보문고를 가면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빼곡하다. 이들의 방문 이유는 둘 중 하나다. 크리스마스 선물과 카드를 사기 위해, 혹은 내년을 준비할 달력과 플래너를 사기 위해. 이 글이 발송될 날짜는 새해 첫날을 이틀 앞둔 날짜니까 후자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나도 한때 연말이면 꼭 핫트랙스에...
D-112. 이 글을 쓰기 전 핸드폰을 보다가 바탕화면에 띄워둔 디데이앱이 알려준, 나의 결혼식까지 남은 날짜다. 결혼을 준비하는 다른 커플들은 이 시기에 뭘 하는지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결혼식을 네 달 가까이 남겨놓고 벌써부터 청첩장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는 거다. 아, 물론 나만 빼고! 상황인즉슨, 12월 말에 배우자인 R의 본국인 영국을 갑자...
사실 이 글은 발송되지 못할 위기에 처했었다. 존재하지 않을 뻔했으니까. 방금까지 난 공황 발작을 겪었다. 최근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처리해야 할 일들이 몰렸는데, 원래는 알바 임시 휴일인 어제와 오늘 대부분 끝낼 예정이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컨디션이 나빠서 세 시간 이상 앉아있지 못하는 바람에 계획이 많이 틀어졌다. 오늘도 겨우 청첩장 초안을 수정했을 뿐...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은 접은 지 오래.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조차 나를 항상 응원할 수는 없다는 사실은 지난 몇 년에 걸쳐 조금씩 받아들이는 중. 그렇게 나름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멋대로 사는 멋진 어른이 된 것 같아 뿌듯했다. 물론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날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아빠의 전화를 받은 순간, 난 아...
나는 내가 태생적으로 상냥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무례한 사람 앞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을 부러워했다. 가시 돋친 말도 웃으며 쓱 치워버리는 그 여유란. 상처를 주고 뒤흔들겠다는 상대방의 의도를 속절없이 무력하게 만드는 그들의 힘을 갖고 싶었다. 난 그 힘이 없었기에, 머리로는 말려들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이 글의 원문은 11월 초에 작성되었습니다. ***10.29 참사(이태원 압사 참사) 및 성추행 사건을 다룹니다. 관련 트라우마가 있으신 분들은 주의해주세요. 10.29 참사가 일어난 지 이제 겨우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의 삶이 무너진 상황에서 나의 일상과 생각을 기록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
오늘부로 여러분들께 나의 취향에 대해 고백할 게 하나 있다. 나는 ‘풍덕’이다. 두둥탁! 이런 니치한 개념이 무엇인지 모르는 건 지극히 정상이니 안심해도 좋다. 그런 머글분들을 위해 설명드리자면, 풍덕이란 ‘풍물덕후’의 준말로 쇠, 징, 장구, 북, 소고 등을 연주하는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을 뜻한다. 풍덕에게 “아, 저도 사물놀이 알아요!”라고 말하면...
어느덧 처음 일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넘었다. 말이 일주일이지 휴일을 빼면 일에 익숙해지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회사 신입사원이었을 때에도 그랬듯, 스킬이 부족한 저연차는 그 대신 노력과 열정을 부으면 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분무기로 알콜을 한 번이라도 더 뿌리며 부지런히 움직였고, 운동화가 다 젖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걸레를 팍팍 밟아 ...
내게 주어진 임무는 얼핏 들었을 때 단순하게 느껴졌다. 학생들이 밥을 먹고 나가면 자리를 행주로 닦고, 분무기로 알콜을 뿌려주면 끝. 빈자리가 생길 때까지는 학생들이 스스로 배식하는 반찬 옆에 서서 조금 도와주는 게 전부였다. 마침 그 주에는 일부 학년이 수학여행을 가서 평소보다 학생들이 훨씬 적다고 했다. 나의 어설픈 행주질로도 쉽게 일을 끝냈고, 예상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최고의 탁월함을 지향해야 할까? 미라클 모닝을 수십 일동안 실천하거나 바디 프로필 찍는 사람들 보면 뭔가 자신만의 최고가 아닌,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최고를 쫓는 것처럼 보인다. 개개인마다 쉽거나 어렵다고 느껴지는 과제가 모두 다를 텐데. 누군가에게는 새벽 네시 반이 아니라 아침 열한 시에 일어나는 일도 ‘미라클’ 일 수도 있고, 체지방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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