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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말은 덧붙이지 않았지만, 너도 나도 모를 수 없었지. 그 여상한 인사가 우리의 마지막 순간이었다는 것쯤. 네가 사라진 자리, 뚫린 구멍만 덩그러니. 건조한 겨울바람 드나들면 그저 사그락이는 소리. 갑자기 생긴 굴다리같은 공허를 마주하고 있자면 아프지도 않아 헛웃음만 짓는다. 아마 덧없이 그리워하겠지. 되찾지 못할 너여도, 내게 초여름을 몰아왔던 사람....
유야, 누가 하늘에서 색을 앗아갔니? 부산스럽게 사랑스럽게 반짝이던 해를 달을 별을 누가 다 꺼서는 치우고 허공에 갱지를 깔고 그 세상에 햇살이 가득할 때는 온 곳에 넘치던 늦봄에 누가 지평선도 잘 뵈지 않는 설원을 데려온 거니. 멈춰도 멈추지 못한 채 내가 네게서 멀어져도 너는 어김없이 나까지 끌어안겠다 달려오지 않았었니. 민들레 꿀 같은 포슬한 웃음으로...
다들 반쯤 이상은 미쳤겠지. 셀 수 없이 상처받아도 지켜내야 하니 사랑은 대단한 각오가 필요한 일이 된다. 즐거울 수만은 없는 즐거움이어야만 하는 돈이 쉽게 하고 의무들이 엄격해야 하는 어떤 깊은 말과 영향을 받게 되어도 치기를 넘어서서는 아니 되는 사랑은 당연히 이상한 일이 된다. 눈 앞에 있어도 꿈보다 먼 곳에야 모두에게 잡힐 수 없는 당신은 계시고 당...
우리 집 근처의 벚꽃나무 길, 놀이터의 외줄 그네. 텔레비전 속 어린 영웅들과 산타 할아버지의 편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는 나만이 제대로 알겠지. 모든 순간을 남기지 못했으니 많은 부분이 사라지고 남은 것마저 그대로는 아닐지 모르지만 숨을 들이쉬면 빠진 잇새로 스미던 산바람까지 다 놀랍고 즐겁지 않은 것이 없었던 날과 날. 넓었던가 방하늘에는 작은 별빛이 ...
아, 이 애매한 시간. 창문 너머로만 만날 서늘해진 세상의 숨과 가장 뜨거운 이 시간의 열정은 결국 전부 사라져. 모두 태양 앞에서는 타버려야 하니까. 현실에서 꾸는 것이라도 꿈은 꿈이니까. 아니었대도 영원히 탐닉하지는 못했겠지. 웃고 울다 웃으며 쓰러졌다고 해서 몰두가 아닌 중독이라는 게 달라지지는 않을 테니까.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야 경계를 풀...
내가 귀한가? 그렇다면 그렇겠지. 내가 아름답나? 그렇다면 그렇겠지. 내가 추하다 해도 그렇다면 그런 것이고 아무것도 아니라 해도 그렇다면 그렇겠지. 나를 어떤 이름으로 부르고 어떻게 대한다고 네가 틀릴 수는 없으니 좋을 대로 하던가 해. 욕하며 걷어차려 들든, 웃으며 입을 맞추든 어차피 내겐 좋을 것도 나쁠 것도 못 되는데. 아니, 우습지도 고맙지도 않아...
누구도 모를, 어디에도 없을. 우리는 대체 왜 마음 아픔만 남을 사랑을 했을까. 알아주지 못한 너의 이름, 서로가 지웠을 나의 이름 네게 했던 말, 들었던 말, 급하게 잡던 손 같은 것도 첫 순간부터 사랑한 네 모습과 함께 빠르게 잊히는데 우리, 아니 나는 왜 당연하다는 듯 그런 사랑을 했을까. 끝과 시작 모두를 한 밤에 담아 넣기 위해 많은 순간이 뭉텅뭉...
이렇게나 해가 밝고 평범한 오늘, 참으로 한 번 빛나 보기 좋은 날이 아닙니까. 정말 나에게는 아름다운 것이 있을 수 없다면 세상과 이별하는 순간만이라도 빛나기를 바랐으니 삶의 어둠 밖으로 산책을 나서기 좋은 날이 아닙니까. 며칠 전부터 눈여겨보았던 자리에 올라 따스한 공기에 한 발을 디뎌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순간이란 매번 이렇습니다. 나의 사라짐으로 ...
마음이 비는 날엔 온 세상이 흐릿하게 번져서 어떤 풍경도 스스로 만든 정적에 먹혀 버리네요 내 이름도 어떤 즐거운 말도 들리지가 않다가 짧게나마 손끝이 닿을 때서야 돌아보게 되네요 마음이 비는만큼 내 하늘에만 구멍이 뚫려서 간질이듯 스치는 봄바람도 꼭 장맛비만 같네요 기분도 생각도 눅눅하게 가라앉고만 있다가 웃는 눈동자 속 먹장구름을 지워내지 못했군요 추위...
너와 내가 모두 익히 아는 이야기다. 하나하나가 빛났던 나의 어린 세상이 가라앉은 자리에는 희망이 없는 아침들만이 가득히 들어찼다. 따사로웠던, 또 누군가에게는 따사로웠을 매일의 볕이 모든 계절에 뜨겁고 따가워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속에 끓어넘치는 말들을 감당하기가 점점 더 어려웠지만 무엇이 두려웠는지 나는 그 모두를 누르고 잠그기만 했다. 사실 그들에게 ...
이 짧은 생의 시간을 겪어내면서 끝끝내 내가 알게 된 것은 단 하나뿐이었나니 그것은 세상에 대한 나의 무지함이었다. 당장 내일에 어떤 것들을 잃고 얻을지 무엇으로 산다 느끼고 어찌 스러져 갈지 그 무엇도 계산할 수 없었고 대비할 수도 없었다. 때로 내가 느끼는 나는 누구보다도 불행했고 때로는 행복보다도 행복하다 여겼기에 후회하지 않는다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
운은 이 행성의 부속물로 태어났다. 신은 아니었지만 영원을 살았고 신들의 일을 보기도 했다. 원한다면 운의 기억을 지닌 채 지상의 어떤 존재로도 태어날 수 있었지만 오랜 시간 선택하기를 거부했다. 단지 그가 원했던 것은 세상을 자유로이 관망하는 것, 그리고 살아 있는 존재들의 인연을 보는 것뿐이었다. 언제인지도 잊은 그날 해가 돌아올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봄이다. 지난 자리마다 바람이 일고 꽃비가 내린다. 엊그제 모진 비에 몇 남지도 않은 꽃잎이어늘 그마저도 지나는 바람에 저리 쉬이 떨어진다. 이리 겉으로만 보면 물론 아름답다지만 저토록 짧고 덧없는 아름다움을 위하여 지낸 꽃나무의 시간을 생각하고 있노라면 머금은 것은 먼지에 텁텁한 공기뿐임에도 반나절 우린 녹차를 마시는 듯 입안이 쓰다. 꼭 저 나무의 쓸쓸...
도네아 마을이 사랑하던 로지, 로잘린 윈프레드의 시계가 멈췄다. 이제 고작 열두 살이 된 그 아이가 설마하니 마을에서 가장 오래 산 지냐 할멈보다 먼저 세상을 뜰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항상 발그레한 빛을 띄었던 얼굴이 백랍분을 바른 것처럼 창백해진 채로, 로잘린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온하게 누워 있었다. 평소라면 절대 입지 않을 새하얀 원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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