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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고유희 두려워하는 게 있다는 건 지키고 싶은 게 있는 걸지도 모른다. 누가 날더러 겁쟁이라 말하는 때에, 난 고개를 숙인 채 주위의 그림자가 무사한지 살피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랑스런 딸로서, 좋은 친구로서, 성실한 학생으로서 내가 서있는 이곳을 망치지 않기 위해 눈물을 자연스레 바닥에 흘려버리고 있는 것일지도. 만약 그렇다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
마음이 수면 위로 잠겼다. 인간의 이성을 거스르는 그 존재는 눈에 보이지 않아, 어설프게 숨기고 감춰놓다 보면 어느새 커져있는 것이라. 세계의 온갖 상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 놈이라. 나는 되새기며 혀로 입술을 훑는다. 그제 잡아 뜯었던 작은 상처에 침덩이가 스민다. 쓰라리진 않았다. 이제 와 다시 꺼내어 마주한들 별 감흥이 있을 리 만무했다. 친구가 되기로...
글. 고유희 시계 야 너도 시간만 보내며 제자리 도는구나 아이 착해야지 가시돋침 안 되고. 웃어야지 활짝, 사진이 돼야지 이대로 멈춰야지 앞서가지 말아야지 눈부신 과거로 남아야지 이질 차마 고개 들지 못한 채 고해합니다. 흰 바닥에 검은 얼룩 흰 바닥에 거만 얼룩 흰 바닥 의 거만 얼 룩 분해돼 나동그라집니다 그저 머금습니다. 한참을 문대도 지워질 기미는 ...
비가 온다. 건물 한 구석 께 모서리를 타고 주룩 흐른다. 차마 벽을 오를 수는 없다는 듯 아래로, 아래로 향한다. 무언가에 이슬로 맺히거나 땅에 떨어져 스밀 때까지. 그 상태에 머무름에 불안하지 않을 때까지. 나는 저 위에 어울리지 않는다. 차마 창틀에 스밀 수 없다, 며. 제 몸체를 깎고 물기를 남기며 하강한다. 구름서 바로 내리는 비도 마찬가지다. 저...
글. 고유희 친구생각 간극이 드러났다. 세상을 발갛게 하는 것 전부를 어여쁜 사랑이라 불렀건만 알고 보니 추악한 오물이었다 관계의 명칭에 큰 의미는 없다 뱉지 못해 머금고 목구멍 넓혀 쑤셔넣는다 진심은, 참되기에 더 더럽다 거리감이 형태를 잡는다 바랜 감정의 색은 거맣고, 때로는 또 벌겋다 발목 발목을 접질렸다 구름 한 점 없는 밤에 위만 보고 나섰다, 잘...
글. 고유희 #꽃이_시들었어_로_시작하는_글쓰기 꽃이 시들었어. 곧, 새살이 돋아날 여름이 다가오는데도. 힘겹다는 듯 죽어갔어. 원인을 따져볼까. 간단해. 물을 안 줬겠지. 흙이 썩었겠지. 벌레가 물어뜯었겠지. 실은 꽃은 쭉 아팠어. 잎이 바랠 만큼 참고 또 견뎠지만 그런다고 이미 변색된 꽃잎의 붉음이 돌아오진 않았어. 그리고 누구도 물을 주거나, 흙을 갈...
글. 고유희 어머니, 저는 사랑하는 당신의 딸로 태어나 감사합니다. 믿지도 않는 신께 절을 합니다. 제 손발, 심장에 십자가형 못이 박혀도 구멍 뚫린 온몸으로 당신만큼은 지켜내리라 다짐할 만큼. 제게 어머니는 소중하십니다. 그러나 혹시 제 다음 영혼 또한 사람의 몸에 깃들거든, 그때는 당신이 제 어머니가 아니시길 바랍니다. 보다 악하고, 저를 위하지 않는 ...
사람에 따라 자해, 자살 트리거 요소로 볼 수 있는 표현이 다분합니다. 주의해서 봐주세요 :) 글. 고유희 선생님 선생님, 피가 안 멈추는 상상을 했어요. 벌어진 손목의 선 사이로 온몸의 혈액이 전부 쏟아져 나오는 망상을 했어요. 삶에 미련이 없어 울지 않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눈물이 찔끔 나더군요. 눈가의 물기를 죄다 삼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 수분...
글. 고유희 편지 이번에도 전하진 못했다 다만, 하고픈 말은 담았다 우체통 너무 낡아 곧 사라질 겁니다 아마 빨간 몸통 속 어여쁜 것들이 제 주인을 다 찾아가면. 더는 만나볼 수 없을 텝니다 평생 그 한 몸 바쳐 벌건 심장 희게, 다 전해주고. 시간 지난 이제는 너무 늙어 곧, 잊혀질 겝니다
글. 고유희 마지막 잎새에 숨을 불어넣던 날에. 그는 저가 죽어야만 함을 실감했다. 우연과 우연이 겹쳐 이생에 났고, 생과 생이 만나 사랑을 했으며, 사랑과 사랑이 뭉쳐 병이 되었으니. 결국엔 우연으로써 그의 죽음이란 운명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에 분명했지만. 그는 차마 부정할 생각은 않았다. 다만 사랑의 손을 잡고 쇠약한 눈 끝에 힘을 실어 흩날리는 가을의 ...
글. 고유희 화양연화 하이얀 꽃의 색과 향기, 그 자그마한 형체로 일순을 빛나려 평생을 살며 실은 죽어가는. 국화 그는 그저 꽃임에 한탄했다 그가 그토록 총명한 인간이었다면 세상의 것들 모두, 성실히 진실만을 이야기하거나 짝 없는 사랑을 하다 품안 가득 실망을 안고서도 시들지 않기 위해 스스로 비를 맞고 서도록 베풀고 또 나누었을 텐데.
글. 고유희 밤은 그저 서러웠단다. 기댈 줄도 모르고 마냥 지새워대며. 그는 지나는 달빛 한 칸에 속절없이 몸을 맡긴 채로 흔들리는 영혼의 것들을 적어내겠지. 그러곤 어둠이 깃든 창틀을 잡고 서, 온 동네 주민들에게 겁 없이도 외칠 것이다. 저는, 이 밤 동안 죽어가고 있다고. 위태로운 바람이 부는 날에. 얼음장 같은 창문에 몸을 맡기고. 용기 내어 떨어지...
글. 고유희 손이 희도록 떨려왔다. 깍지낀 가락 사이사이로 아픈 염원의 것들이 스며들었다. 찔린 상처, 혹은 그 이전의 흉터와 거뭇한 자욱들. 나는 그이들의 슬픔에는 공감할 수 없다. 얇은 목을 죄어, 벽 가에 던져놓고. 부끄럼 따윈 느끼지 못하는. 이 흰 손등은, 원체 허울뿐인 몸뚱인지라. 껍데기 하나둘 젖혀가며 드러낸 속살은 무방비하다. 그러니, 분명 ...
글. 고유희 그날, 나는 너를 찾아 헤매는 꿈을 꾸었다. 어둑한 모래사장과 쌉쌀한 바다 내음. 시각과 청각의 맹공격 속에서. 발걸음을 옮길 줄도 모른 채, 나는 너를 외쳤다. 생김새, 성격, 믿는 종교와 좋아하는 음식, 주로 뿌리는 향수의 원료, 자주 되뇌는 글귀나 함께 읽었던 책들의 제목, 그리고 그때의 감정. 우리가 함께였던 그 시절의 전부를. 나는 속...
글. 고유희 습관처럼 목을 매만질 줄은 아나요. 어깨너머 날개 죽지에 떨리는 감정과 뭉툭한 손톱을 박아, 새벽을 숨 가쁘게 지내는 법은. 하찮은 시선으로써 또 무언갈 망치고 전부 무너뜨릴까 봐 두 눈을 가린 채로 어리석은 망상가의 바닥에 웅크려 앉는. 저린 발을 쪼물대며 혹여 있지도 않은 늪에라도 빠질까, 양 다리를 굽혀. 차라리 이 몽상의 달콤함에 취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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