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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라핀을 떠올리며 온실을 찾았던 날, 내가 가져온 차를 보고 네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어. 홍차가 아니네. 가장 좋아하는 차를 가지고 오라고 했지. 그래서 홍차를 가져가지 않았어. 졸업하고 스테이티아로 돌아갈 때 언니가 좋아할 법한 홍차를 선물로 가져가고 싶어서 홍차를 마시기 시작했고, 언니와 마주보면서 티타임을 가져도 긴장한 티 나지 않도록 티타...
제 막사로 가는 길에도, 들어와서도, 저는 그저 너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오브리, 오브리. 아까까지 부르지 못했던 이름을 속으로 삼키면서. 널 끌어안은 손을 놓지 않고 네가 저 추운 밖으로 나갈까 걱정되어 가만히, 그저 가만히. "…미안해, 오브리. 네가 그렇게 날 좋아하는 줄 몰랐어." 그래도 그 애는 가족이고, 나는 친구니까. 그러니까. 그런...
1032-1. 몇몇 귀빈들이 포함된 무도회, 어디선가 꺼림칙한 시선이 따라붙는다. 제 곁에 있는 인물을 바라보는 건가 싶어 자리를 옮겼으나 그 시선은 집요할 정도로 제게 달라붙었다. 왜 이렇게 시선을 주는거지? 귀빈들 중 제가 본 적 있는 사람이 있나 기억을 짚어봤으나 짐작가는 부분은 없었다. 무도회가 이어지는 내내 그 시선이 제게서 떨어지지 않아 대화를 ...
※ 가스라이팅이라고 생각될 수 있는 대사가 있습니다. ※ 심적 압박감을 느끼는 장면이 있습니다. 솔직히 이야기 해볼까. 어린 세라피네는 제 언니 오필리에가 언제부터 절 피하기 시작했는지, 거리를 두기 시작했는지 기억하고 있다. 세라피네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그 날, 짐승의 손톱이 남긴 상처를 들키고 싶지 않아 일부러 스테이티아로 돌아가지 않고 그 근처에...
세라피네 스테이티아는 제네비바샤 랑 캄린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저를 좋아한다고 할 정도로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모습, 시끄럽지 않은 목소리로 그 애정을 전하는 말, 곁에 있으면 불편하지 않다는 것과, 아마 이곳 대다수의 사람들이 널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는 것. 세라피네와 제네비바샤가 함께 있는 것을 본 사람들이 속닥...
아사르가 에세트에게 사랑받는다고. 그래, 세라피네가 한 말을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다. 에세트의 사랑을 받는 아사르. 에세트의 도움을 받아 사람들을 인도하는 아사르. 그렇다면 에세트가 없어진 후엔? 아사르 홀로 남았을 때엔. 에세트에겐 관심 가지지 않고 그저 아사르를 찾기 위해 에세트를 이용하는 것이라면? 그리하여 결국엔 서로에게 상처만...
세라피네 스테이티아에겐 부지불식간에 떠오르는 어느 날의 기억이 있다. 아니, 그 표현은 잘못되었을까. 생각지도 알지도 못한 사이를 부지불식간이라 표현한다면, 그 표현은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 세라피네 스테이티아는 그날 그 순간을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잊은 적도 없었으니까. * 오필리에와 세라피네. 스테이티아에 산다면 그 이름을 들어보지 않은...
세라피네 스테이티아에 대한 이야기는 이 아카데미 내에서 얼마나 퍼져있을까. 지난 2년 동안 대다수의 사람들을 무심하게 내치며 생활한 냉혈한? 차가운 북부 사람? 인정머리 없는 사람? 입을 열면 서리가 나와서 상대가 얼어버릴 거라는 소문? 항상 어울리지 않는 색의 손수건을 손목에 묶고 다니는 걸 보면 저기에 셀레네 문양이 있거나 아니면 흉측한 흉터, 또는 사...
솔직하게 말하자면, 세라피네 스테이티아는 단 한 번도 에세트가 잘못 되었다 생각한 적이 없었다. 혹자는 그런 말을 하더라, 혹자는 그렇게 생각하더라. 그런 것을 그저 사견 없이 말한 것 뿐이었지. 하지만 엘리오르가 고개를 들며 문득 슬픈 표정이 그 얼굴에 스치자, 세라피네는 새삼스럽게 너의 기원을 떠올렸다. 동쪽 하늘의 샛별, 별의 후예. 그러한 기원을 가...
세라피네 스테이티아는 자신에게 불필요한 것을 기억하지 않는다. 제게 도움이 되는 것을 기억하지 않고, 제가 관심 없는 것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티타임을 초대하는 방법에 대한 예절도, 무도회의 식순도, 춤을 추는 방법도, 그에 관한 예법도, 아무튼 간에, 기억할 것만 기억하는 성정이라는 것이다. 머리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리 뛰어나게 좋지도 않다. ...
누군가가 세 번의 노크를 한 시간, 그때는 아마 세라피네가 평소처럼 책상에 앉아 누군가를 향한 편지를 쓰고 있을 때였다. 문밖에서 느껴지는 기척은, 아마도 제게 친숙한 것. 그렇기에 누구냐는 질문을 꺼내지 않고 익숙하게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제가 일어서서 문 근처로 다가가는 순간 멀어지는 발걸음을 느꼈지. 아마 네 용건은 저를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
오브리가 세라피네를 개인실에 데려다주고, 1시간 정도 후에 보자는 말을 남기며 떠나간다. 세라피네는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그 문 너머로 모습을 감춘 오브리의 기척은 아직까지 생생하게 느껴졌다. 환상도 아니고, 꿈도 아닌, 현실이었다. 하지만 세라피네는 그 사실을 바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제게 좋은 일이 있다면 그것은 곧잘 깨어지곤 했다. 주로 누군가로...
[사랑하는 오필리에에게.] [이제 곧 있으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어.] [우리가 다시 만나고 나면, 함께 여행을 떠나는 건 어떨까?] [꼭 둘이 같이 가지 않아도 좋아. 아니, 오필리에 혼자 다녀도 좋아.] [마음 같아서는 함께 다니고 싶지만, 오필리에가 원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 멈칫, 펜을 움직이다 멈추고서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서 어제 ...
이제는 18살이 된 세라피네 스테이티아는 14살의 어렸던 세라피네 스테이티아가 느꼈던 감정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저 그것을 티 내지 않았을 뿐. * 평소처럼 검술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날이었다. 원래라면 더 오래 훈련을 하다 왔겠지만, 갑작스레 들어온 대량 발주 건으로 마을 전체가 인력난에 시달렸기에 제 작은 손이라도 보태야 하는 시기였지. 그런 ...
그 말머리로 시작된 편지를 보낸 것도 벌써 3년이 지났다. 신전에서 생활할 때는 생각이 다 정리되지 않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나에게 쏟아낸 너의 말이 꽤 큰 충격으로 다가왔기에.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나서도 편지는 꾸준히 보냈으나, 제가 예상한 대로 답장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너는 편지를 읽어보기는 했을까, 아니면 받자마자 제 편지를 찢거나 태워버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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