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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가 목도한 최초의 죽음은 제 손바닥 위에서 이루어졌다. 최초의 죽음, 최초의 조각. E는 조각도가 친애하던 부엉이의 날갯죽지를 가르는 감각을 기억했다. 점점 싸늘해지는 부엉이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이게 끝일 리가 없었다. E의 것이라면 쉬이 죽어버려서는 안 될 일이었다. 누군가 칼을 고쳐 쥐어주었다. 그 아이는 하얀 부엉이었지? 온전한 모습으로 조각해 ...
야, 표정 풀어. 퉁명스러운 일련의 단어가 E의 귓전을 울렸다. E는 목소리의 주인을 알고 있다. 선배. 그저 몇 해 먼저 이 업에 종사했다는 이유만으로 따라붙는 수식이었다. 생기 없는 시선이 제 우측 어깨에 턱 올려진 손을 올려다봤다. 희뿌연 한 쪽 눈알이 따라잡기에 벅찼는지, 미묘하게 어긋났다. E는 본디 무성의로 중무장한 사람이었기에 상대는 어색함을 ...
마법의 분류 모자가 결정적 순간에 4개의 답-그리핀도르, 슬리데린, 래번클로, 후플푸프만 할 수 있는 까닭은 호그와트의 창립자들이 G를 몰랐기 때문임이 분명했다. 이에 한 가지 선택지를 추가할 수 있다면 모자의 주름진 입은 우렁차게 외칠 것이다. G! 병동! 하얀 침대에 가지런히 뉘인 팔이 움찔거렸다. 세상에. G, 가만히 있어라. 간호 선생이 혀를 내두르...
낮게 틀어 둔 텔레비전에서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주말 오후의 연속극은 뻔한 이별을 중개했다. 나를 사랑하긴 했어? 날카로운 어투가 K의 귀에 꽂혔다. K가 리모컨 버튼을 꾹꾹 누르며 채널을 돌렸다. 갑자기 왜. 나란히 어깨를 기대던 T는 의아한 기색이었다. 단둘이 게으른 주말을 보내는 것은 T의 취향이 다분히 반영된 일로, K는 텔레비전을 보는 취미가 없었...
R은 인내하는 법을 아는 사내였다. 격투가 R은 눈앞의 고통을 이겨내고, 다음 공격을 예측한다. 그런 그마저 곤욕을 치를 때가 있었는데, 바로 지금이다. 모처럼 휴양지의 호텔에서 함께 맞이하는 하루, N은 아침부터 옷을 골라달라 성화였다. 벌써 다섯 벌 째다. 짧고, 자극적이고, 화려한 옷들은 지극히 N의 취향이다. 등이 깊게 파인 홀터넥 나시를 내려다보는...
남자는 여자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희게 부르튼 입술이 마찰하는 소리가 났다. 정작 그들은 태연하기만 하다. 남자가 저보다 두 뼘은 작은 이 앞에 기꺼이 무릎 꿇는 것, 연신 손등에 입을 맞추는 것. 일련의 행동은 의식과도 같은 일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여자는 냉막한 시선을 비치더니 손가락 끝부터 손을 거두었다. “입을 천 번 맞춘다 한들 나는 목석처...
할 말이 있어. R이 N의 팔뚝을 붙잡았다. N은 미간을 찌푸리며 팔을 빼내려 했다. 한창 파티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는데, 방해였다. 그러나 할 말이란 게 퍽 진지한 내용인지, 팔을 붙잡는 손아귀가 단단했다. 심상치 않았다. 평소 R은 결코 쓸데없이 힘자랑을 하는 치가 아니었다. 특히 N의 앞에서는 발톱을 감추기 바빴다. N은 투덜거리면서도 순순히 R을 따...
오전 10시. 출근 시간이나 점심시간으로부터 비껴나가 붕 뜬 이 시간에 빌딩숲 한가운데 위치한 세븐일레븐은 한산했다. 매대에 엎드린 알바, N이 꿈틀거렸다. 아, 죽겠다. 아무래도 어제 과음을 한 모양이었다. 이러다가 잘리겠다 싶으면서도 계속 무력하게 엎드려 있었다. 잘리면 뭐 어때. 잘리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알바야 새로 또 구하면 되는 거고. 언젠가...
둥근 유리 탁자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마주앉았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C의 하얀 머리카락이 나부꼈다. S는 그것이 꼭 파도의 포말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한편 C는 S의 검은 머리카락이야말로 북해의 검은 바닷물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서로의 생각을 가지런히 접어 탁자에 올려둘 수 있다면 둘은 서로야말로 꼭 닮았음을 상기했으리라. C의 시선이 차분히 주위...
H는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과 삐그덕거리는 발소리가 하나, 둘. 그는 이 공간에 혼자가 아니었다. 분명 뒤따라오는 사람이 있었다. 이 늦은 밤에 대체 누가. 관리인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H는 뒤를 돌아보았다. 어둠 속에서 익숙한 낯을 확인하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E. 요즘 들어 마주치는 일이 잦다. 7년 간 같은 기숙사에서...
S 가(家)의 가장 깊은 방에는 서시(西施)가 산다. 흑단 같은 머릿결이 폭포수처럼 굽이치며 눈동자와 입술은 포도를 짓이긴 것처럼 검붉으면서도 촉촉한 빛을 띈답니다… 근심으로 얼굴을 찡그리는 모습이 나비가 사뿐히 내려앉는 것과 같으니, 가히 월(越)나라 서시의 모습이라 한다. 그러나 소문은 소문일 뿐이다. S 저택의 담벼락은 드높았다. 소문조차 드나들기 힘...
약학대학 연구실의 일상은 단조로웠다. K는 매일 아침 제일 먼저 출근하여, 불을 키고 새로 들어온 약품을 정리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다. 백인들의 말대로 그가 동양인이기 때문이거나 유난히 성실한 까닭은 아니었다. K는 그저 트레이에 손톱 반달보다도 작은 타블렛 정제를 오와 열을 맞춰 한 알씩 쌓으며 평온을 만끽했다. 신참 시절 떠맡겨진 일을 즐기게 되어 불...
12월 초, 온 동네가 크리스마스 준비로 한창이었다. 크리스마스는 마음을 설레게 하는 힘이 있다. 여느 영미권 국가가 그렇듯, B와 A가 지내는 마을도 색색깔의 장식들로 알록달록했다. 할로윈이 끝나자마자 트리를 내걸은 탓에 벌써 먼지가 쌓여가는 방울 장식도 보였다. B는 부산스러운 풍경을 둘러보며 작게 한숨 쉬었다. 설렘조차 B의 마음은 살짝 빗겨간 듯했다...
B가 죽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 그는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과다출혈이거나, 부러진 목뼈가 기도를 압박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정확한 사인은 불명이었다. 처음 그의 시신을 마주했을 때 A는 애써 부정했다. 거짓말. A는 부부가 한 날 한시에 죽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둘 중 먼저 죽는다면 그건 아마 제가 되리라 막연히 짐작했다. B는 건...
A 가 죽었다. 예상치 못한 죽음이었다. A가 탔던 여객선이 전복되었다고 했다. 얼음 조각에 부식된 선체가 무너져 내린 탓이었다. 시체는 찾지 못했다. 잘린 손목만 돌아왔다. B는 익숙한 손을 붙잡고 오열했다. 부정하고 싶었다. 그러나 골든 타임을 진작에 놓치고, 기약 없는 기다림 끝에 돌아온 것을 외면하기 힘들었다. 단정히 정리된 손톱이 죄다 깨지고 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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