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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시면 심박이 뛰고, 호흡이 가빠온다. 기분이 좋아지고, 얼굴이 발그레해진다. 진심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며 위와아래가 서로 뒤바뀐다. 나는 그런 상태를 썩 좋아하지 않는데,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감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내가 술을 좀 마셨다. 시험 전날, 술을 먹었다. 어차피 매일 시험인 인생인지라, 시험이 있어서 술을 먹을 ...
아프지만 그렇게 사는 거야. 시간이 달리는 걸 느끼면서. 1분 1초가 수액처럼 링거팩 안에서 뚝뚝 떨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그것을 빠안히 바라보는 일. 그것이 내 하루의 유일한 일이 되는 것을 나는 우울증이라 생각한다. 하루를 나는 온전치 못하게 보내어도, 그래도 괜찮은거야. 이번달까지만 조금. 남들보다 느리게. 그래도 하루하루 매일매일 조금씩 할 일을 하...
엄마는 조급한 위로를 건네고, 나는 나른하게 일상을 고하며 우리는 그 무더운 여름을, 얼음을 동동 띄운, 채 풀어지지 못한 미숫가루 덩어리를 씹어삼키듯, 달큰하면서도 끈적하게 넘기어냈다. 매앰 - 울어대는 매미소리에 이어폰을 끼려다가도 그 소리가, 풍경이, 더위가 아쉬워 그냥 두게되는. 2020의 여름.
그것이 우리를 갉아먹을 때 분명 있었지. 그때의 우리는 그깟 것에 겁을 지레 먹고,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기 바빴다. 하지만 그때 흘린 땀방울마저도 아름다웠었는데. 돌아보면 다시는 돌아보지 못할 그 순간들이 기억으로 남아 지금 여기 내가 있어. 그때 죽지 않았다면, 이라고 가정해보아도 나는 지금이 좋아. 그러니 울지마라. 친구들아. 미안하리만치 무감해진 내 ...
내가 가진 유일한 재주는 글이였다. 글은 나의 값싼 10개의 손가락 아래에서 쓰여 그보다 비싼 값에 팔려나갔다. 돈이 없을 때 용돈벌이에 도움이 되었던 웹소설에 불과했던 글쓰기를 다시금 제대로 도전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년간 내게 주어진 유예기간 동안. 20대 청춘에게는 사형선고와도 같은 안식년 동안. 닥치는 대로 글을 썼다. 비가 올때는 스릴러를,...
잦은 시험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그리고 나는 정말 미쳐버렸다. 그래프의 수치가 짱구 캐릭터로 보인다면, 그건 우울증 중기의 증상이다. 우울을 자극제삼아 공부하라는 말은 소화되지 못하고 쌓여버려 급하게 먹은 밥처럼 가슴에 얹혀 체기를 강하게 만들었다. 모든 것이 부정한 세상에서 시간만은 왜이리도 정직하게 흘러가는지. 그 사이 어딘가에서 웅웅 대는 소음과 함...
잠을 자지 않겠노라 마음 먹으면 그 밤이 온통 내 것이 되었다. 뜻밖의 용돈을 받은 아이처럼 시간은 많았으나, 쓰는 방법을 몰랐다. 내가 가진 것은 핸드폰과 손가락 뿐인데. 이 흔하디 흔한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나비의 날갯짓처럼 손가락을 휘둘러 바람을 일으키기로 했다. 너의 마음에. 내가 오늘 밤 자지 않은 대신, 너에게 남기는 편지. 그러니...
어두운 방, 우두커니 앉아 허공을 응시하는데 핸드폰이 번쩍였다. "사랑해. 화이팅하고" 나의 생을 빈틈없이 조여왔던 말. 사랑한다는 말. 엄마의 사랑이 나를 죽인다는 걸 당신은 모르리 그런데 엄마, 더이상 사랑만으로는 안돼. 그 가벼운 몇마디로 내 목을 졸라서는 안돼.
두 모녀가 바닷가를 향해 앉아있다. 딸: 엄마, 나 우울증이야. 그래서 병원다녔어. 한달동안. 엄마: (바다를 응시하며) ... 딸: 자꾸 죽으려고 해서. 살고 싶어서 병원에서 약 받아 먹고 다녔어. 엄마: 그걸 왜 말하는 거야..? 딸: 근본적 해결책을 한번 찾아본거야. 약은 잘 듣질 않아서.. 그렇게 계속 바다를 바라보는 모녀. 집에 가는 차 안에서 멋...
“우리는 살아있는 날마다 최선을 다해야 해.” 아침해와 함께 찾아오는 희망이니, 기회니 하는 것들이 잔인해서 나는 청춘이란 말이 싫었다. 어느 평일 한가로운 오후에 치킨을 뜯으며 바라본 한강의 색도 파란색. 강의를 듣고 나오는 길에 올려다본 하늘의 색도 파란색. 우리가 흘린 땀과 눈물의 색도 파란색. 파란 것이 다 청춘이면, 지금 내려다보이는 밤의 한강은 ...
나는 꼭 그 값이란 것을 치뤄야만 했다. 비용이 내 몸집보다 커서 댓가를 받기도 전에 죽어버릴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비루한 노동자가 값진 신분을 탐한 탓일까. 그로서도 이건 너무 과한 처사라고 생각했다. 뛰는 심장이 잠 못 들게 하고, 죽음의 단말마로 깨는 아침. 오늘의 값이 내일은 배가 되어 돌아왔다. 나는 갈수록 야위어갔고, 더이상은 도망칠 곳도 없...
너가 잘자라고 말해주는 날까지 살아볼게 그 날이 오면 하루 더 살고 싶어지겠지. 그렇게 우리 영생을 살자. 너와 나의 평행선 사이에 놓인 두 글자. 평생 겹치지 않을 두 선 사이에 위치한 고작 그 두 글자가 참 커다래보여. 잘 자. 그 말 하나 듣는 날, 나는 미련없이 눈 감을 수 있겠다. 우리의 평행선이 겹쳐 점이 되는 날, 정말이지 나는 잘 잘 수 있겠...
친구야 오늘 나는 그저 죽고만 싶다. 눈을 감아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 사이에 영원한 공백을 그리고 싶어. 사랑과 사람이 남아 오래달리기를 하면 누가 이길까. 다들 사랑이라 답하겠지만, 나는 사람이라 말하고 싶어. 푹 익힌 사랑을 꺼내 갈라 너에게 먹일래. 나는 빈 가슴을 쥐고 죽어가며 너에게 말할거야. 거봐 사랑은 남았잖아. 그게 나는, 낭만이라고 생각해...
집에 아주 큰 모기가 들어왔다. 제법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들어온 녀석은 에프킬라의 안개와 함께 모습을 잠시 감추었다. 내가 무덤하게 뿌려대는 에프킬라에 휘청휘청. 방이 잠시 뿌얘졌다. 모기는 자신에게만 무정한 세상을 나름의 방식으로 버텨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내가 모기를 잊어갈 동안 모기는 이 잔인한 세상에서 발버둥치느라 1분이 억겁과 같았으리라. ...
추운 겨울 버텨 한철 움트던 싹을 끝끝내 피워낸 꽃이 빠르게 낙화할 때 꽃은 무슨 생각을 할까 허물없이 비워낸 아름다움이 만개했으니 욕심 없다 탄식하며 떨어질까 이대로는 갈수없다 비명 내지르며 목놓아 호소할까 그렇게 빠르게 낙화하는 어느 계절 속에서 나 또한 빠르게 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어쩌면 지난 해 혹은 지지난해에 만개했을 나의 꽃 그러니 지금은 서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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