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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요. 길을 잃으면 어떻게 해야 해요? 길을 찾아야지. 길을 모르면요? 그러면 물어보고, 발로 뛰어가면서라도 찾아야지. 그렇게 해서도 못 찾으면요? 그러면, 받아들이자. 받아들여요? 그래. 네가 길을 잃은 그 순간마저 하늘의 뜻이겠거니, 운명이겠거니, 결국 그분의 뜻대로 흘러가는 거겠거니, 하고 받아들이자. 그렇게 기다리자. 그렇게 기다리면 찾을 수 있...
끼이익, 탁. 두 번의 마찰음이 울린다. 연준은 질질 끌리는 다리를 겨우 움직여 걸음을 옮겼다. 느리게 걷는 그의 뒤로 발소리가 났다. 운동화 특유의 투박한 소리가 복도를 경박하게 두드린다. 연준은 그 자신을 쫓아오지도, 외면하지도 않는 신발의 애석함을 계속해서 떠올렸다. 연준과 진서담 사이 벌어진 간격은 좁혀지지 않았다. 진서담은 연준의 뒤에 있었고, 연...
사람은 무엇으로 태어나 무엇으로 죽는가? 우리는 모두 별의 아이다. 왜, 그런 말 있지 않나. 별을 이루고 있는 것은 우리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별에서 태어난, 별의 아이라는 말. 연 준은 아주 어릴 때부터 그 차이와 그 간극에 의문을 품었다. 우리가 만약 별과 같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사람은 곧 동물이요 동물은 곧 식물이며 식물은 곧 행...
완벽은 때때로 커다란 흠집이 된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완벽을 추구한다. 누군가는 성공을 위하여, 누군가는 미래를 위하여,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그마한 안온을 위하여. 그들은 하나같이 완벽을 등반하기 위해 딱딱한 시멘트 벽 사이로 뾰족한 갈고리를 박아 넣는 짓을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완벽에 도달할 수는 없다. 너도 알고 그들도 알다시피, 완벽...
중요한 건 당신이 심연을 들여봤다는 것이다. 들어본 적 있지 않나? '당신이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당신을 들여다보리라.' 이제 되돌릴 수 없다. 모든 것은 돈에 의해 맺어지고 돈에 의해 끊어질 것이지만, 그럼에도 네 턱 끝까지 차오른 푸른 물결이 일렁이는 걸 막을 수는 없다. 너울이 너를 삼키고, 황금은 그것을 보며 웃는다. 너는 파랑(波浪) 아래...
추악함과 추잡함 사이에서 에얄은 한평생 춤을 췄다. 그는 광대였다. 사람을 즐겁게 하는 광대였고,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선물이었고, 동시에 사람을 무너트리는 미지의 존재였다. 사람이 사람을 위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을까? 에얄은 흙탕물에 기꺼이 몸을 담굴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수치심을 몰랐다. 그는 자존심을 몰랐다. 그가 멍청했기 때문이 아니며, 그...
거짓은 과연 정말 부덕한가? 에얄은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거짓말은 나빠. 거짓말은 하면 안 돼. 사람이 진실되고 참되어야지. 하지만 에얄은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거짓말을 안 하면, 내가 거짓을 고하지 않으면, 다 싫어할 거잖아? 끔찍한 진실보다는 아름다운 꿈이 나은 법이다. 참혹한 현실보다는 화려한...
안온은 행복이 될 수 없는가? 누군가는 평화를 행복이라 부르기도 하던데. 평온은 행복이 될 수 없는가? 의미가 퇴색된 이상 아무런 가치조차 없는 말이기는 했다. 평화든, 행복이든, 비온 뒤 무지개든. 에얄과는 거리가 있는 단어였기 때문에. 하지만 에얄은 자신이 행복하다고 믿고 싶었다. 완벽한 행복이 아니어도, 다른 사람들과 다른 형태의 행복이어도, 그래도 ...
사람을 믿어본 적 없다. 사람을 사랑해 본 적 없다. 믿은 만큼 아리고, 사랑한 만큼 힘들다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낫기에. 에얄이 믿을 수 있는 것은 물건이 전부였다. 인형은 사라지지 않았다. 세월을 타 때가 타고 헤질지언정 제 옆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눈 하나 없이도 활짝 웃고 있었고 솜뭉치 없이도 활짝 웃고 있었다. 인형에게 아무리 우악스...
텁텁한 공기와 짭조름한 바다 내음이 뒤섞여 욕지기를 유발하는 것만 같다. 바람 한 점 불어올 리 없는 답답한 공연장인 데에도 시린 바닷바람이 뼈를 퉁퉁 두드리는 기분이다. 에얄은 폐부 깊숙이 이산화탄소 가득한 공기를 집어넣었다. 몇 번이고 숨을 들이 마셔도 가슴 께에 박힌 가시는 빠져나갈 생각을 안 했다. 밀려 내려가긴커녕 식도 깊숙한 곳을 찔러오기나 해서...
변한 건 없었다. 아스터와 오르피어스의 관계는 위태롭기 그지없었다. 그들은 사랑하기에 사랑하지 않았고, 사랑하기에 미워했고, 사랑하기에 서로를 놓지 못했으며, 사랑하기에 끝끝내 사랑을 부정했다. 다시, 변한 건 없었다. 정말? 정말 변한 건 없었나? 관계는 변하지 않았다. 사랑하지만 사랑한다 고할 수 없는 그 사연 많은 관계만은 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변...
째깍. 아스터는 머리끝까지 끌어올린 이불을 끝끝내 걷어찬다. 짜증스런 표정으로 몸을 일으킨 그는 답지 않게 한숨을 내쉬었다. 텅 빈 옆자리가 어색해 아스터는 고개를 돌려 허공을 매만진다. 온기 하나 없는 차가운 이불이 따듯하다 못해 뜨거운 손에 의해 데워졌다. 생각해 보면 오르피어스도 그랬다. 그의 체온은 별날 정도로 낮았다. 오르피어스는 때때로 사람 같지...
번쩍이는 불꽃이 집어삼킬 듯 덮쳐와도 나는 두렵지 아니했다. 넘실대는 파도에 머리 끝까지 잠겨도, 숨이 막혀 의식이 멀어져도 나는 두렵지 아니했다. 작은 감각은 곧 작은 고통이 되었고, 고통은 곧 무감이 되어서 나는 어떤 일이 닥쳐도 의연하게 넘겨버리고는 했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오르피어스에게는 공포라는 감각이 없는 것 같아!’ 그러면 나는 작...
오르피어스, 오르피어스. 내게 사랑한다 말해줘. 오르피어스, 오르피어스. 내게 친애한다 말해줘. 오르피어스, 오르피어스. ……. 듣고 있어? 번쩍. 닫혀 있던 시야가 뜨이니 오르피어스는 간신히 숨을 쉴 수 있었다. 깜깜했던 세상이 햇빛의 자애로움에 눈물지으며 기운차게 하루를 시작하면, 오르피어스를 괴롭히는 이 지긋지긋한 꿈도 암흑과 함께 물러가곤 했다. 흘...
하나. https://youtu.be/KeTEsff2uiU 아스터는 문득 떠올린다. 이 모든 것이 얼마나 덧없는 사랑인지에 대해. 아니, 잠깐, 아스터는 나잖아. …다시, 나는 떠올린다. 우리가 얼마나 의미 없는 짓을 반복해 왔는가에 대해. 사실 알고 있었다. 늘 그러했듯, 너와 나는 미쳐있었다. 누구 하나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는 두 번 다시 가족을,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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