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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았어요. 몇 번이고 상상했던 말이었다. 매일 밤 잠에 들지 못할 때, 눈을 뜨고도 괴로워 도로 이불을 뒤집어 쓰던 때도. 웃고 떠들며 노래하면서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너의 이름, 얼굴, 목소리... 그 모든 것은 구원이자 족쇄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깊은 바다 속에서 몸 가누지 못하고 휩쓸려가는 하찮은 물고기같은 존재였다. 그러니 내게 있어 족쇄란 나를 이...
. . . 입을 열어 나직히 첫 소절을 뱉는다. 새삼, 누군가에게 노래라니. 얼마만인지도 가물가물한 것이... 묘한 기분이었다. 자연스럽게 손이 움직여 당신의 머리칼을 정리하고 담요를 덮어준다. 어쩌면, 내가 무엇도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순간이 일상이었을 수 있었을까? 세상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모든 게 완벽했다면... 그러나 떠오르는 생각은 모두...
할리 존스는 문득 떠올렸다. 모든 것을 잃고 주어 없는 사과를 내뱉던 시간들을. 그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답답해지곤 했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어쩐지 후련한 기분을 느꼈다. 신에게 빌어도 답을 받아내지 못한 고해가 마침내 제 자리를 찾아간다. 그 답이 감정 과히 담은 위로나 확실한 극복이 아니었음에도, 존스는 그저 이걸로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너...
할리 존스는 표현에 능숙한 사람은 아니었다. 적어도 십여년 전부터는 그랬다. 그러나 다정함은 있는 이였다. 그는 어떠한 질책이나 비난 없이 가만히 당신의 말을 듣는다. 표정을 함부로 찌푸리지도, 숨을 뱉지도 않고 미동 없이 당신을 본다. 생각한다. 기이할 정도로 자신을 태워 빛을 밝히려 드는 당신의 기원이 무엇인지, 그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
멍한 눈으로 허공을 쳐다본다. 오열하다 지쳐 잠들었던 지난밤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 건조하게 자국이 남은 눈이 뻑뻑했다. 그 탓에 다시 눈물이 흘러 나오기에 멋대로 흐르게 두었다. 존스는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밤새 쌓인 먼지와 흙이 투두둑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것을 짓밟으며 그는 마치 망령처럼 집 안을 돌아다녔다. 터덜...
세상이 무너졌고, 모든 것은 부서져내렸다. 많은 생명이 꺼져갔고, 그 모든 것이 미처 묻히지 못한 땅은 처참한 광경만을 담았다. 할리 존스는 그 위를 박차며 달려나갔다. 건물이 무너져 길이 막혀도, 억센 나무가 쓰러져 온몸에 상처를 내도, 흙먼지가 회오리치며 시야를 막아도. 그저 달렸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또 다른 실패가 쌓이려 하고 있었다. 그것만은...
선선히 부는 바람, 달리며 일으켜 아직 미처 가라앉지 못한 모래먼지가 나부끼는데도 마냥 미소를 머금은, 그리고 메달을 목에 건 자신의 모습. 하늘은 파랗고, 얼굴은 빨갛고. 메달은 노랗다. 그리고 미소. 하늘은, 바닥은, 나는... 그리고 메달은... 헉. 하는 들이킴과 함께 눈을 번쩍 뜬다. 언제나와 같은 익숙한, 지긋지긋한 천장. 물씬하게 찌든 알코올 ...
어릴 적의 기억은 그다지 없었다.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길러졌지만, 그렇다고 남부럽지 않은 화목하고 부유한 가정이었냐 물으면 그렇지도 않았으니까. 다만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추억 정도는 공유할 수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은 저녁, 부모의 투박하지만 따듯한 품에 안겨 동화책을 읽던 어린 존스는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이상해. 왜 동화는...
"시문아, 어이쿠. 우리 복덩이~! 어떻게 그렇게 수를 잘 봐? 응? 이야, 다음 노름판에도 데려가야 겠구먼~..." "...그보다, 밤이 늦었어요 아버지. 이제 그만 들어가셔야..." "뭐? ...방금 뭐라고 했냐?" "...아니에요. 아무것도." 지저분한 뒷골목을 제 아비의 뒤를 따라 걸으며, 시문은 말하던 입을 다물었다. 그럼에도 질책은 멈추지 않았다...
월영봉주와 월영봉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불과 10년 전만 해도, 그에게 이리 물었다면 무슨 헛소리냐 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여산에 발을 들이면서, 그의 삶은 이들이 다시 만든 것이나 다름 없었다. 월영, 과연 무엇인가. 여산의 다섯 봉우리 중 무력을 대표하는 집단. 여산의 최정예 수사들이 존재하는 곳. 이곳은 오직 월영봉주의 서신을 받은 이들만이 오를...
공문에 적힌 글자들을 가만히 읽어보았다. 가장 첫 문장이 눈에 띈다. 자신의 법기에 대한 진지한 고찰해보기. 붓을 드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평소 제 손에 들린 것은 오직 검, 장봉, 그리고... 그래. 법기. 그 법기에 대해 고찰해보라 한다면... - 16세. 월영의 법기 보관소에 발을 들인 것은 그 때였다. 여기저기 넝마가 된 몸뚱아리를 이끌고 그 ...
"그래, 시문아. 네 이름은 정하였느냐? 어렵다면 사존에게 청해도 좋으니 편하게 이야기하거라." "...저는." 아이는 느릿하게 숙였던 고개를 들어올렸다. 아는 단어도 몇 개 없고, 무언가의 제 것이란 이름을 붙여본 적도 없는 아이. 그러니 제 이름을 새로이 짓는 것 조차 버거울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한참을 그리 주저하였다. 그러나 고민은 결국 끝이 났고...
그 손을 보지 않고 있어도 신경을 쓰고 있음을 알았다. 그런 다정함이, 세심함이 당신의 또다른 장점이었다. 하지만 가끔은 그것이 발목을 잡을까 봐. 신경쓰지 않는 법을 배우길 원했다. 어찌 말해야 할까. "그렇지. 사람은 그래. 사람은..." 모두가 오직 강인함만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은 의미 없는 것이지만 종종 그의 머리속에서 떠올랐던 ...
어리석은 자여, 어찌하여 눈을 뜨지 못하는가 몸을 움직이면 움직일 수록 더욱 깊은 수렁으로 발을 들인다. 숨은 턱턱 막히고, 머리는 웅웅 울린다. 눈 앞이 핑 돌고 코끝이 시큰거린다. 하지만 무엇 하나 뱉어낼 수 없었다. 그리 하면 정말로 저는,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이란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었으리라. 발버둥 쳐보아도 제가 먼저 뱉어놓은 것이었다. 제가...
쾅쾅, 문을 세차게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야, 범아. 이진범! 너 정말 이대로 다 포기할거냐? 네가 그동안 해온 게 아깝지도 않아?" "그만하고 돌아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 네 잘못 아니라고 했잖아." "너 그렇게 약한 놈 아니잖아, 응?" 문 앞에 선 늙은 남자는 굳게 닫힌 현관문 앞에 서 한참을 그렇게 소리쳤다. 도무지 들려오는 대답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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