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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는 첫마디를 떼지 못한 채 있었다. 말할 수 없는 만큼이나 움직일 수 없었다. 갑작스레 주어진 상황에서 뭔가를 시작할 수 없었다. 그저 끔찍하게 곤두서는 온몸의 감각기관이 모으고 비추는 현실에 괴로워했다. 도플라밍고는 그 반대였다. 그때껏 부렸던 여유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저돌적으로 돌변한 그는 망설임 없이 로를 내팽개치고 `그 사람`에게 덤벼들었다. 그...
“모두들 인사드리오! 쇤네, 태어난 곳은 해저의 나라 용궁 왕국 어인가. 곳곳의 형님과 누님들께 폐를 끼치며 이번에 밀짚모자 두목에게 잔을 받은 신출내기올시다! 사람들이 이르길, ‘바다의 협객’ 징베! 이후 기억해주시길 바라오며, 잘 부탁드리겠소!” 바다의 협객 징베. 보다 악명 높은 자, 현상금이 높은 자, 강하고 호기롭게 상승세를 타는 자들 따로 있어도...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소리였다. 하이다이빙을 심심찮게 즐기는 루피도 그렇게 높은 절벽에서 시도한 건 처음이어서, 모든 감각이 원래 알던 것보다 과격했다. 떨어진 순간 새의 비명 같은 파열음이 터졌고, 수면을 해머로 힘껏 강타한 것처럼 크고 시끄러운 물보라가 일었다. 놀랄 새도 없이 단숨에 머리끝까지 잠기며 옅은 해수면이 훌쩍 멀어지고 고막이 먹먹하게 땡겨...
소금기에 절여지고 자외선에 지져지며 평생에 걸쳐 고르지 못했던 얼굴들만 모여있었다. 그래도 활기가 돌면 제법 근사하게 웃을 줄 알아 마을 처녀들에게 인기가 좋던 젊은 축이 의외로 가장 낙심해왔다. 한창 일하면서 한창 빛나야 할 어린 동생들의 얼굴이 술독 오른 중년처럼 검붉어져 수심으로 굳어지는 양을 보는 것이, 내색하진 않았어도, 징베는 줄곧 괴로웠다. “...
아버지라고 부르라던 말은 단박에 거절했다. 애비 없는 놈이라고 우습게 보냐 쏘아붙이자 호탕한 웃음을 샀다. 그래, 또 한바탕 들이받아야지. 그게 네 방식이지. 노인은 처음부터 에이스를 오랜 친지처럼 대했다. 그런 게 마음을 건드릴 때마다 멋대로 건드려지는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화로 거스를 수 없는 상대였다. 노인과 노인의 자식들은 에이스의 급경사를 능숙하...
경비 용역이란 현대의 용병이고, 사실상 매수자의 사병이 되는 셈이지. 이 경우 당연히 매수자는 자신이 아니지만, 그들 눈엔 비슷한 급으로 보이지 않을까? 어쨌거나 자신을 지키는 것도 그들의 중요 임무일 테니까? 예를 들어, 여기서 갑자기 발을 헛디뎌 넘어지거나 빈혈로 쓰러지기라도 하면, 저치들이 터미네이터처럼 쏜살같이 달려와 이 귀중한 몸이 상하지 않도록 ...
“좀생이.” 다리를, 정확히 말하면 흰 포말을 부서트리며 젖어드는 매끄러운 종아리를 보고 있을 때 그런 소리를 들어 괜히 흠칫했다. 그 옅은 반응이 답답했는지 루피가 볼을 부풀리며 발을 동동 굴렀다. “겁쟁이. 수염쟁이. 문신쟁이!” “...좋을 대로 불러. 무슨 소릴 해도 난 안 들어갈 거니까.” 귀엽긴.. 아니, 귀여운 척하지 마라. 로는 한심하게 이완...
들었어? 트라팔가 오늘... 피나는 노력 끝에 입게 된 의사 가운이니 다들 꿋꿋이 버텨낼 것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 매년 새로 수혈되는 인턴 중 한두 명은 꼭 쥐죽은 듯 조용히, 혹은 사춘기 청소년보다 더 호들갑스럽게 대열에서 낙오되었다. 힘들게 다다른 자리인 만큼 실제로 적성에 맞지 않았다는 사실을 더 수용하기 쉽지 않았을 테다. “올해는 트라팔가였...
심야 한 시가 좀 넘었을 때 루피는 오랜만에 날씨가 쌀쌀하다고 느꼈고, 곧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나는 거였다. 이럴 때 들으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소리였다. 허기진 배를 슥슥 문지르고 있자니 한숨이 나왔다. 아까 조로와 헤어지기 전에 식당에서 저녁밥을 챙겨 먹었는데, 역시 집밥이 아니면 어디든 양이 적어 문제였다. 늦게까지 안 자고 ...
*동맹 해소 직후 한때 스스로를 소개하길 해적왕이 될 남자라고 빠짐없이 말하고 다녔던 남자는 성급하고 과장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정말 해적왕이라고 불리게 되었을 무렵엔 이미 조금 변해, 그것을 아직이라고 정정하다가 차차 그마저도 않게 되었다. 루피도 철이 들었지. 레일리가 처음 만났을 때보다 눈빛이나 행동거지에 약간의 무게감이 더해진 모습을 두고 언젠가 ...
“롤로노아. 넌 어떻지?” 숫돌 가루 주머니와 무명천으로 검을 손질하다가 그 방식을 가르쳐줬던 상대에게 물었다. 귀곡은 애도라기보다는 수술수술 열매 능력의 보조 도구이기에 스스로를 검사라 생각하지 않는 로였지만, 한창 동맹으로 행동을 함께할 무렵 검을 사랑하다 못해 세 자루나 차고 다니는 삼도류의 남자에게 배운 뒤로 긴 여행이나 큰 싸움을 앞두고 검을 손질...
별다른 이유 없이 눈이 뜨인 새벽이란 그 무렵 로에겐 지치도록 빈번했다. 노인 같은 체질이 배었음을 자각하면서도 과민함을 통제하지 못한 채 있었다. 앞날이 짧다는 반증인가. 확실하게 명줄을 갉아온 근 몇 년간의 행적을 고려하면 있을 법한 증상이긴 했다. 잠들기 전까지 땀에 젖어있던 몸은 타인의 것과 뒤섞인 체취가 강하게 풍겼고, 군데군데 끈적임과 이물이 남...
선원들의 직책에 특화된 여러 별실이 갖춰진 써니호였으나 유일하게 선장 루피를 위한 별실은 없었다. 개인적이고 은밀한 혼자만의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 루피였기에 그것이 문제 된 적은 없었지만, 하트 해적단과 동맹을 맺어 선장들끼리 주기적으로 왕래하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루피에게도 프라이버시가 필요해졌다. 선원들은 루피가 본격적으로 곤혹을 느끼기 전에 눈치...
부둣가에 걸터앉아 바닷바람에 눅눅해진 성냥으로 어렵사리 담뱃불을 붙인 상디는 멀리서 노를 저으며 다가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뱃사람이 된 후로 육지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입장이 된 적이 손에 꼽힐 정도다. 항구의 여인이 아닌 항구의 사내렷다. 그럴듯한 곡조를 흥얼거리며 감상에 젖어 들고 싶어도, 다가오는 손님의 윤곽이 뚜렷해질수록 산통이...
*현대 AU. 원작 시점과 교차 진행 예정입니다. 사람들은 그곳을 쓰레기 처리장이라고 불렀다. 한때 온갖 종류의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 늘 악취와 매연이 끊이지 않던 정부 공인 폐기물 종합 처리장이었다. 동네 주민들은 그 지역 땅값이 오르지 않는 건 다 멀리서 온 유해한 쓰레기가 그곳에 블랙홀처럼 모여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었다. 공장이 가동될 때마다 화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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