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한 기본 포스트
한 컷씩 넘겨보는 카툰 포스트
직접 만든 영상을 올리는 동영상 포스트
소장본, 굿즈 등 실물 상품을 판매하는 스토어
그날도 몸에서 열이 났다. 천둥, 번개가 치는 고약한 날씨였다. 땀에 젖어 축축해진 잠옷의 감촉이 생경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다시 하늘이 고함을 질렀다. 하늘의 눈물이 커다란 창문을 흠뻑 적셨다. 날이 어둡고, 비가 워낙 많이 와서, 창밖을 내다보기가 힘들었다. 창에 바짝 붙어도 보이지 않았다. 잠옷 소매로 창문을 열심히 문지르니 ...
* 2020년 2월 29일 초판본에 수록된 외전입니다. 검은 돌이 흰 돌의 앞을 막아선다. 흰 돌이 달아나듯 옆으로 피한다. 다시 검은 돌이 흰 돌의 앞을 한 발, 두 발, 앞지른다. 하지만, 흰 돌의 한 발자국에 검은 돌은 갇혀버린다. 흰 돌의 안에. “이번에도 제가 이겼네요.” 상쾌한 녹차의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찻잔을 손에 들어 입으로 가져다 대니...
* 슙총웹진 2019년호에 참여한 글입니다. 시간이 새벽 두 시를 지나고 있었다. 뻑뻑한 눈을 몇 번 깜빡이니 눈앞이 흐렸다. 인공눈물이라도 넣을까 생각하다가 관두었다. 그럴 시간에 몇 글자라도 더 써야지. 얼른 끝내고 자리에 눕고 싶었다. 어깨, 허리, 머리, 눈.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오늘이 마지막 과제 제출일이다. 이것만 끝내면 자유다. 곧 방학이 ...
20. 민윤기는 결혼식이라면 지긋지긋하다는 반응이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결혼식을 하겠다고 그 난리를 쳤는데, 식장에 들어가 보기는커녕 구경도 해 보지 못하고 끝났으니까. 그래도 평생을 약속하는 날인데, 증인 한 명 없이 할 수는 없으니… 가까운 사람들만 불러서 식을 치르기로 했다. 민윤기는 아버지와 호랑이 남매들의 이름이 적힌 청첩장을 하나하나 ...
19. 눈을 뜨니 해가 지고 있었다. 몸이 무거워서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시야가 높아진 것을 보고 깨달았다. 인간의 몸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몸을 일으켜 앉으니 머리가 앞으로 쏟아질 것처럼 어지러웠다. 조금씩 움직이는 손가락이 말해 주는 것 같았다. 너는 살아있어. 그래. 나는 살아있다. 사람의 기척도, 온기도 없는 고요한 집. 집안을 훑던 시선이...
* 리네이밍 글입니다. 김남준은 언젠가부터 자기가 쓴 시를 나에게 보여 주기 시작했다. 표현력이나 구성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훌륭했다. 녀석은 시를 쓰기 위해 태어났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시를 잘 쓰는 녀석이었으니까. ‘너는 시를 잘 쓰니까.’ 이렇게 말하면 김남준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잘 쓴다는 건, 도대체 어떤 건데요?’ 나는 그 말에 이렇다 대답...
* 리네이밍 글입니다. "형은 내가 없다면, 없다고 생각하면, 나한테 이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 말을 뱉으면서 눈물을 쏟아내던 김태형이 생각났다. 그때는 몰랐다. 네가 곁에 없을 리가 없잖아. 투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는 헤어졌다. 벌써 네 번이나 가을이 왔고, 나는 우리가 헤어진 계절마다 돌아오는 김태형과 한 계절을 함께한다. 가을이...
18. 차명계좌를 찾아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마치 알아 달라고 기다리는 것처럼 너무 쉽게 드러났다. 석진이 형도, 정국이도, 나도 몰랐던 게 신기할 정도였다. 금액이 이동한 경로는 모두 다르지만, 확실한 건 이 돈이 모두 나의 결혼을 막기 위해 쓰인 돈이라는 거였다. 송금받은 사람들 이름이 전부 익숙한 이름이었다. 나와 결혼하려고 했던 사람들이었으니....
17. 사람들은 각자의 불행을 안고 산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불행하다 믿는다. 그것은 세뇌 같기도 하고, 맹신이기도 하다.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유일하다는 맹신. 인간의 불행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이 맹신에서부터 시작한다. 모든 경계를 풀고 옆에 잠든 이 남자. 내가 자신의 마지막이라 믿는 이 남자. 김남준의 불행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가질 수 없었...
15. 아버지에게 분명 뭔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갑자기 일을 만드실 분이 아니셨다. 결혼하겠다고 할 때 진작 이렇게 해 줬으면 좋았을 것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금산에서 다시 제시한 계약 조건은 파격적이었다. 주식 양도와 사업 파트너로서의 계약. 그리고 집안 대 집안끼리의 약속. 나는 이전에는 듣지 못했었던 계약에 대해서 모두 들을 수 ...
14. 분위기는 순식간에 변했다. 평생을 약속하려 했던 그 날, 민윤기는 손가락에 반지를 끼우는 대신 내 집에서 떠나는 것을 택했다. 서운함도, 아쉬움도 없는 얼굴로 덤덤하게 짐을 정리했다. 민윤기와 결혼하기 위해 그렇게 애를 썼는데, 전부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들어오겠다는 말도, 나가겠다는 말도 참 쉽게 했다, 민윤기는. 노발대발 난리를...
13. 매일 누군가를 꾸준히 만난다는 건, 생각보다 특별한 일이었다. 그녀를 만나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더 그렇게 느꼈다. 마치,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들. 어린 시절을 돌아보게 만드는 그녀의 아들 이야기까지. 하지만, 나는 그녀의 아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아들은커녕 이 궁궐 같은 한옥에서 어린아이의 발자국도 보지 못했다....
12. 해외 지사에 계셨던 아버지께서 귀국하신다. 아들의 결혼이 명분이 된 건지 소식을 전하고 하루 만에 귀국 소식이 전해졌다. 나의 결혼이 가장 달갑지 않을 사람인데, 누가 보면 좋아서 오는 줄 알겠네. 나 역시 이 소식이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후계 구도는 나름 잘 잡혀 있는 상태였다. 금산전자는 현재 사장직에 있는 아버지께서 회장이 되실 거고, 내가...
11. 중앙 호수가 꽁꽁 얼었다. 잉어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얼음 밑으로 희미하게 보였다. 눈이 잔뜩 쌓인 정원을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이 온 뒤로 호숫가에 오래 앉아 있기 힘들어졌다. 중앙 현관과 붙어 있는 로비로 오면, 이 집에 처음 왔던 날이 생각났다. 늑대 조각상들과 화려한 그림들. 한쪽엔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
설정한 기간의 데이터를 파일로 다운로드합니다. 보고서 파일 생성에는 최대 3분이 소요됩니다.
포인트 자동 충전을 해지합니다. 해지하지 않고도 ‘자동 충전 설정 변경하기' 버튼을 눌러 포인트 자동 충전 설정을 변경할 수 있어요. 설정을 변경하고 편리한 자동 충전을 계속 이용해보세요.
중복으로 선택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