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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준수와 재유는 둘 다 대학에 붙었다. 그것도 1지망으로. 농구부의 다른 멤버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감독과 코치를 동반해 향한 피시방. 컴퓨터의 하얀 창에 나타난 합격이라는 문자에 재유는 답지 않게 울었고 준수는……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기숙사에 도착할 때까지도. 준수의 이상행동과 재유의 부은 눈에 의문을 품은 1학년들이 추궁하기까지는 그리...
츠미키와 메구미가 들어오고 시간이 지나 젠인가도 많은 것이 변했다. 우선 마키는 청소가 아닌 같이 잡담을 나눌 친구가 생겼다. 그리고 마이는……. 한가한 시간이 많아졌다. 훈련장은 여느 때처럼 귀청이 터질듯한 기합소리와 흙먼지, 땀 냄 내와 호통소리로 가득 차 있다. 마이는 이 더럽고 혼란스러운 장소를 싫어한다. 파랗게 물든 하늘 정중앙 떠있는 해는 강렬한...
“아, 오늘 안 한댔지.” 재유가 평소에 다니던 작은 마트의 문을 보고 처음으로 흘린 말이다. 매주 목요일 휴무.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한 것은 바쁘게 지나가는 매일과 비슷한 루틴 탓이다. 학교에서 잠, 점심 먹고 운동, 운동, 운동 다시 저녁 먹고 운동. 똑같은 하루 일과의 일부인 야간 운동 중 슛이 안 들어 간다는 이유로, 몸이 굳었다는 ...
산속 깊은 곳,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좁은 길을 거치면 커다란 가옥이 나온다. 전통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집은 다만 다른 곳과는 다르게 너른 훈련장이 있다. 그곳은 비는 시간이 거의 없어 넓은 마당에는 항상 여럿의 검을 맞대는 소리, 주먹을 부딪히는 소리, 노성과 기합 소리가 들린다. 어린 인영이 훈련장에서 조금 떨어진 마당을 쓸며 그런 소리들을 듣고 ...
1월 1일.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해가 밝는 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가로 가 가족과 함께 지나는 날. 에리오스 타워 역시 귀성한 사람들로 인해 평소보다 한산하고 조용했다. 물론 이런 날 역시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사람은 있다. 일, 혹은 각자의 사정으로. 렌은 눈을 떴다. 알람 소리가 울린지는 좀 됐지만 드물게 아직 해가 뜨는 중인 시간에 스스로 일어났다...
2년 전, 그러니까 지금보다 더 어릴 때 한 남자를 죽였다. 그 인간은 음침하게 생겨서는 얼굴에 흉터까지 달아 더 험악해 보였다. 물론 쓰는 수법도 그 생김새대로 똑같이 음침했다. 무고한 아이를 죽이는 제 안위밖에 모르는 인간. 다만 그런 놈도 인정이 있는지(혹은 죽고 나서도 귀찮게 할 작정이었는지.) 죽기 전에 말을 하나 남겼다. “한 2, 3년쯤 지나고...
프란시스, 그러니까 지금은 지브릴 블랑쉬로 활동 중인 남자는 골목을 걷고 있었다. 긴장으로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낯익은 경찰들을 따돌리고선 골목을 걷고 있었다. 헉헉 숨을 몰아쉬며 한 손으로 땀을 닦은 프란시스는 생각했다. ‘어디서 잘못된 거지?’ 사건은 몇 시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란시스는 여느 때처럼 싼 여관에 눌러앉아 있었다. 정확히는 아...
고죠 사토루는 지금 중학교의 복도를 걷고 있었다. 평소의 거무칙칙한 옷이 아닌 평범한 와이셔츠와 검은 슬랙스 차림을 한 고죠는 그럼에도 벗지 않은 선글라스 탓인지 아니면 지나치게 큰 키 탓인지 지나가는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연신 흘끔거리는 시선을 받았다. 이따금 지나가는 학생들이 수군대는 소리를 들어보면 “야쿠자야?” 내지 “어떤 미친놈이 도박하다 빚졌다는데...
아, 또다. 젠인 마키, 그러니까 주술사 집안의 쓰레기이자 제 주제도 모르는 멍청이는 그의 식구 중 하나에게 머리를 밟히며 그렇게 생각했다. 누구나가 드나드는 정원 한가운데, 자갈이 깔린 거친 마당 위에 쓰러진 마키의 존재는 자연히 무시된다. 식구 중 누구도 그에 대한 폭력을 보지 못할 것이고 보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나오야는 마키를 내려다보며 조소한다....
드넓은 창공에 작은 비행기 한 대가 떠있다. 비행기는 기체를 부드럽게 움직이며 구름을 드나든다. 프로펠러가 돌아가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시원한 바람이 짙은 청색의 머리카락을 훑고 그렇게 흩날린 머리카락은 다시 뺨을 간질인다. 첼은 그 감촉에 미소를 지었다. 비단 뺨이 간지러워서 만은 아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바람이 시원했고 하늘이 푸르렀고...
미틸은 자신의 형을 좋아했다. 그야 루틸은 항상 다정하고 누구에게나 친절했으니. 사람들도 그런 루틸을 좋아했다. 미틸이 가장 많이 본 루틸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웃고 있는 모습이나 조용히 혼자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었다. 이끼가 낀 돌계단에 쪼그려 앉아 그리거나 널려있는 바위에 앉아 그리거나 아예 땅바닥에 앉아 그리거나. 루틸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은 ...
그랑벨 왕조가 세워지고 얼마 지나지 않은 날, 그날 수많은 군중들 앞에서 푸른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른 불길 속에서 파우스트는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입었다. 레녹스는 높이 세워진 십자가에서 파우스트를 구해냈다. 붉은 불길이 피부를 태우는 것이 느껴졌고 끊어지지 않는 줄에 초조해하다 자신이 마법사라는 것을 기억해 냈다. 다급히 외운 주문의 효력은 그리 세지 않...
사람한명 없는 넓은 광장에 덩그러니 놓여지는 것은 썩 기분좋은 일은 아니었다. 더욱이 그 이유가 테러범의 죄를 대신 갚기 위해서라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자연스레 웃음이 나왔다. 언뜻보면 누군가를 비웃는 듯한 웃음은 저를 향한 것이다. 마치 자신에게는 죄가 없다는 듯한 말투였으니까. 테러범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한 살인마. 비록 못생긴 후드티나 입고있지만...
날이 밝으니 따사로운 햇볕은 창틀 사이로 내리쬐고 선선한 바람이 이따금 창틀을 두드렸다. 고윤은 그 때에 맞춰 일어났다. 하지만 그가 일어난 이유는 귓가에 울리는 창틀 너머의 소음도 눈이 부셔 절로 잠을 달아나게 하는 햇빛도 아니었다. 장경의 걱정과 다급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손길에 겨우 일어나 눈을 뜨자 고윤은 깨달았다. 아, 드디어 눈이 완전히 멀었구나...
효성진은 상화에 의지해 길을 나섰다. 상화를 따라 걷다 보니 작은 산이 나왔다. 그 산에는 입구처럼 보이는 곳에 이어진 길이 있었는데 그 앞에는 마을 이름이라도 되는 듯 석판이 세워져있었다. 설양은 그 이름을 보다가 효성진이 앞장서 입구로 들어가자 아천과 그 뒤를 따랐다. “아천, 그러다 넘어질 수도 있으니 조심하거라.” 첫 야렵에 들뜬 아천은 산 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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