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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을 삼켜.’ 나지막히 속삭이는 목소리. 그것은 불꽃의 일렁임. 나를 향해 손짓하는 푸른 불꽃. 애정을 느낄 무렵부터 언제나 원했다. 그럼에도, 참아냈다. 형이 원하지 않을테니까. 일부러 형과 거리를 두고 애정을 멀리해왔다. 그렇지 않으면 집어삼켜버릴것만 같아서. 나를 억누르고 참아냈다. 내 앞에서 형이 한번 죽었을 때에도, 다른것이 형을 탐냈을 때에도,...
그는, 성현제는 언제나 지루했다. 매번 같은, 몇번이고 반복했을 지 모르는 그의 시간 속에서, 그는 언제나 굶주렸다. 성현제는 인간이라 칭할 수 있을까? 스스로를 세뇌하고 또 다시 쌓아버린다면 가능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언제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인간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렇기에 더욱 인간처럼 행동했다. 매너있고, 욕망도 느끼면서, 아름...
왜 사랑은 이리도 절망적이게 아름다울까요. 사랑을 동경하고, 사람을 동경하고, 육지를 동경합니다. 그렇기에 나를 포기하면서도 사랑을 택한 것이겠지요. 불가능한 사랑에 절망하면서도 이내, 그 빛에 눈이 멀어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사랑을 속삭입니다. 당신의 눈에는 내가 있을까요? 당신의 붉은 머리카락을 더욱 붉게 물들이는 상상을 합니다. 아무도, 그 아무도 없...
기억이, 스스로의 기억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내가 누구인지, 나를 바라보는 저들은 왜 저런 표정을 짓는지. 내가 당신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럼에도, 나는 당신들을 부정한다. 당신들이 원하는 ‘나’는 이미 존재하지 않아서, 무슨 수를 쓰든 돌아갈 수 없어서.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없다면, 잊어버린다. 그뿐이다. 비워진 육체는 가여운 ...
나는 네가 행복하기를 바랐습니다. 그저 나와 길을 걷는 당신이 웃음을 잃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이것은 전부 내가 사명을 외면하지도, 이행하지도 못한 탓이겠죠. 왜 당신이, 왜 네가, 어째서 엘소드 네가. 너만은 너를 위해 존재하기를 바랐는데. 소리없는 비명이 바람을 타고 날아갑니다. 이젠 더는 닿을 수 없겠죠. 나를 기억하나요? 스스로조차 지워버린 당신은 ...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아니, 사실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당신이 나를 반겨줍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일과 준비를 할 때에도 언제나 내 옆을 지켜줍니다. 눈을 떠도, 감아도, 언제나 당신만이 내 곁에 존재하니 이것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으로 정의해야할까요. 그럼에도 나는 당신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내 삶에 당신은 없습니다. 당신을...
그것을 보았다. 검고 어둡지만 빛나는 그것을. 손에 잡히면서도 펼친 손 안에는 존재하지 않고, 나를 보는 그것은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본능이 소리쳤다. 도망가라고. 분명 도망쳐야만 했다, 그래야만 하는데. 뛰어들고 싶다. 저 아득한 공허가 나를 부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것이 손을 내민다면 금방이라고 마주잡고 공허가 되어버릴 것 같다. 다리가 떨리고 ...
푸르른 잔디 위를 걸었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시원하다. 아무도 관리하지 않아 길어진 풀들이 바람을 따라 춤을 췄다. 길을 따라 걸었다. 비석조차 놓이지 못한 흙무덤이 보였다. 신체조차 찾을 수 없어 이름만 돌아온 이들도, 생사조차 알 수 없어 같이 봉해진 이들도 보였다. ‘분명 활기찼던 마을로 기억하는데요.’ 이젠 관리하는 자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그 자...
“오늘 밥 쩌는데~, 얼른 나와!” 거친 소리를 내며 방문이 열렸다. 해맑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자가 그곳에 있었다. 이름도, 나이도, 그 무엇도 모른다. 홀연히 나타난 소년은 언제나 웃으며 나를 바라볼 뿐이다.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주사위를 굴리거나 카드를 가지고 노는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그를 좋아했다. 나와는 다르게 말이다. “너나...
톡, 투둑. 작은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온 세계를 덮기 시작했다. 분명 이리도 추운 겨울인데 겨울비는 서럽게 쏟아진다. 한 방울, 한 방울, 빗방울이 땅에 몸을 던져 부서져간다. 계절을 잘못 찾아온 이 비를, 그 누구도 환영하지 않음을 알까. 결국 이들은 온몸이 산산이 부서져 그 형태를 잃고, 차갑게 얼어붙어 그 목적마저 잃어버리겠지. 생...
“네가 미워.” 목소리가 들렸다. 어둡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난, 나는…….” 떨리는 손길이 느껴졌다. 몸은 이미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지 않는 육체와 대비되는, 생생한 감각.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어쩌다 이런 관계가 되었을까. 기억을 되짚어 보지만, 그 시작을 알 수 없다. 나는 네가 좋았다. 그저 일방적인 사랑. 너를 가지고 싶었다....
더는, 감정을 배우고 싶지 않다. 나는, 이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나는 오만하게도, 이들과 같을 수 있다고, 나는 이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겉모습이 같다고 해서, 본질까지 같을 수 없음을 알았어야 했다. 이곳은 전장, 그렇기에 가장 먼저 배우는 감정은. 이젠, 더는, 더는, 알고 싶지 않다. 나는 인정해야 했다. 난 저들과 같을 수 없음...
당신은 나를 보고 있을까요. 당신은 내가 보일까요? 사실은, 나는 답을 알고 있어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되물어도, 당신은 나를 보고 있지 않아요. 정답을 알고 있었음에도, 나는 아파하네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당신의 모습에 반한 것은 나인데, 지금은 그토록 사랑스럽던 당신의 모습이 원망스럽기만 하네요. 내가 사랑했던 당신의 모습을, 내가 더는 사랑하...
언제인가, 형이 읽어주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기사와 공주, 선역과 악역, 주어진 이야기 안에서 삶을 증명하듯 나열되는 문장들. 누구나 어릴 적, 동화를 동경해봤을 것이다. 나는 그 안에서 용이었고, 기사였고, 때로는 그저 마을 주민 1. 그 안에서 여행하는 나는 즐거웠다. 나는 그 이야기를 알고 있었고, 결말을 바꿔보기도, 그저 결말에 따라 흘러보기도 했...
언제부터인지, 네가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 네가 없다.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 한다. 모두가 그런 사람은 없다고 답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꿈인가? 길고 긴 꿈을 꾼 탓에 현실에 혼란이 온 것일까. 모두가 아니라고 내가 이상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진실일까? 다수가 말하는 것이 진실일까? 그런데, 네가 누구였지? 네가 보이지 않은지 어연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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